김수영은 1954년에 탈고한 「나의 가족」에서 개인과 민족 사이의 갈등을 제시한다. 화자는 “고색(古色)이 창연”한 우리 집에도 변화의 “물결과 바람”이 “신선한 기운”을 가지고 쏟아져 들어왔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이유가 “이렇게 많은 식구들”이 현실 생활에서 직업을 가지고 아침에 나가서 일하다 저녁에 들어올 때마다 “먼지”처럼 작지만 그래도 돈을 벌어오기 때문임을 암시한다.
그는 개인적인 가족을 장구한 세월 동안 “파도”처럼 옆으로 흘러가고, “세대” 간에 이어지는 오랜 역사를 지닌 “억세고도 아름다운 색깔”이라고 긍정한다. 그리고 “가족의 입김이 합치어진 것” 즉, 가족의 사랑이 “겨울바람”도 자신의 눈을 밝게 한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그는 가족들이 떠드는 소리도 귀에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 그들에게 자신의 “전령(全靈)”을 맡겼다고 밝힌다.
물론 그가 「너를 잃고」에서 제시한 것처럼 인류적 차원의 “위대”한 사랑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지금도 “위대한 고대조각의 사진”을 보면서 초월적 정신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런 “성스러운 향수와 우주의 위대감”도 “가족들의 기미 많은 얼굴”에 비교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것은 그가 “가족과 달리 서책에 푹 빠져 있는 상황”이 아니라, “조용하고 늠름한 불빛”이 비추는 밤에는 위대감을 추구하더라도 “아침”에는 “눈을 부비고 나가서” 다른 가족들과 마찬가지로 현실적 생활을 추구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제각각 자기 생각에 빠져 있으면서 부자연스러운 곳이 없는 가족의 “조화와 통일”을 무엇보다 강조한다. 그리고 “유순(柔順)한 가족”들이 모여서 “죄 없는 말”을 주고받는 생활공간인 “방”에서 차라리 “위대한 것”, “위대의 소재”를 생각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란다. 전쟁 직후에 인간적 생존이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는 초월적인 사랑이 아니라 현실적인 생활난을 해결해 나가는 개인적인 가족의 사랑이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 연에서도 그는 “거칠기 짝이 없는” 우리 집안의 “한없이 순하고 아득한 바람과 물결”이 “사랑이냐”, “낡아도 좋은 것은 사랑뿐이냐”라고 묻는다. 이것은 가족에 대한 사랑은 이기적인 것이므로 근대 민족이나 인류에 대한 초월적 사랑에 비해 낡은 것이지만, 인간으로서 부정할 수 없는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는 개인적인 가족에 대한 사랑을 민족이나 인류에 대한 초월적인 사랑보다 더 중요시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여기서 “가족이 이루는 조화와 통일에 그가 평화롭게 머물지 못할 것”을 암시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시대 생활의 구속으로부터 개인의 자유를 추구하고, 낡아도 좋은 가족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자유주의적 의식을 제시한다고 볼 수 있다.
「나의 가족」(1954)
고색이 창연한 우리 집에도
어느덧 물결과 바람이
신선한 기운을 가지고 쏟아져 들어왔다
이렇게 많은 식구들이
아침이면 눈을 부비고 나가서
저녁에 들어올 때마다
먼지처럼 인색하게 묻혀가지고 들어온 것
얼마나 장구한 세월이 흘러갔던가
파도처럼 옆으로
혹은 세대를 가리키는 지층의 단면처럼 억세고도 아름다운 색깔―
누구 한 사람의 입김이 아니라
모든 가족의 입김이 합치어진 것
그것은 저 넓은 문창호의 수많은
틈 사이로 흘러들어오는 겨울바람보다도 나의 눈을 밝게 한다
조용하고 늠름한 불빛 아래
가족들이 저마다 떠드는 소리도
귀에 거슬리지 않는 것은
내가 그들에게 전령(全靈)을 맡긴 탓인가
내가 지금 순한 고개를 숙이고
온 마음을 다하여 즐기고 있는 서책은
위대한 고대조각의 사진
그렇지만
구차한 나의 머리에
성스러운 향수(鄕愁)와 우주의 위대감을 담아주는 삽시간의 자극을
나의 가족들의 기미 많은 얼굴에 비하여 보아서는 아니 될 것이다
제각각 자기 생각에 빠져 있으면서
그래도 조금이나 부자연한 곳이 없는
이 가족의 조화와 통일을
나는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냐
차라리 위대한 것을 바라지 말았으면
유순한 가족들이 모여서
죄 없는 말을 주고받는
좁아도 좋고 넓어도 좋은 방 안에서
나의 위대의 소재(所在)를 생각하고 더듬어보고 짚어보지 않았으면
거칠기 짝이 없는 우리 집안의
한없이 순하고 아득한 바람과 물결―
이것이 사랑이냐
낡아도 좋은 것은 사랑뿐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