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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주 Feb 10. 2023

다원주의자 김수영 : 시골 선물

김수영은 1954년에 탈고한 「시골 선물」에서 자본주의 문명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초월적 정신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화자는 “종로 네거리”에서 행길에 가까운 떠들썩한 찻집을 “일부러” 택해서 앉아 있으면서, 그 이유가 “어디보다도 조용한 곳이라고 생각”하는 자신의 “반역성” 때문이라고 밝힌다. 자본주의 문명의 폐해를 극복하고 변혁하기 위해서 일부러 자본주의 한복판을 찾아갔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자신의 반역성이 도시의 자본주의 문명 속에서 욕망을 충족하며 살아가고 있는 “노는 계집애”와 “학생복을 입은 청년”들에 의해 거부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친구조차 “신(神)이라든지 하느님이라든지가 어디 있느냐”라며 자신을 자신을 “고루하다”고 비웃는다. 자본주의 물질문명이 지배하는 도시를 정신적인 공간으로 바꾸려는 그의 반역이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먹고사는 개인적 풍요로움만 추구하고 있는 도시 문명을 비판하면서 어느 외딴 “광산촌”에 두고 온 “갈색 낙타모자”를 떠올린다. 그 모자는 현대의 유행에서도 훨씬 뒤떨어져서 “서울”의 화려한 거리에서는 도저히 쓰고 다니기 부끄러운 것이라는 점에서 사라지고 있는 초월적 정신을 상징한다. 그는 “부처님을 모신 법당 뒷산에 묻혀있는 검은 바위”처럼 자신의 큰 머리에는 작은 것이지만 “시골”이라서 쓰고 갔다가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그는 서울에 돌아와서도 “도회의 소음과 광증(狂症)과 속도와 허위”가 “미웁고 서글프게” 느껴질 때마다 잃어버린 모자 생각이 난다고 밝힌다. 그리고 잃어버린 모자 속에 “설운 마음의 한 모퉁이”를 놓고 왔기 때문에 시골 여행 전과 달리 도시 사람들을 “다른 각도와 높이”에서 보게 되었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이것은 “신”, “하느님”, “부처님” 등의 초월적 정신이 도시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설운 마음”을 모자와 함께 잃어버리고 오면서 자신감이라는 “시골 선물”을 받아 왔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여행 전에는 도시 자본주의 문명의 폐해를 극복하려는 자신의 반역이 실패하고 있다는 “설운 마음”에 빠져 있었다면, 이제는 “시골 선물”의 힘으로 도시의 자본주의 문명에 대한 반역을 “다른 각도와 높이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1954년 11월 30일의 일기로 뒷받침된다. 그는 여기서 “결론은 적극적인 정신이 필요한 것이다. 설움과 고뇌와 노여움과 증오를 넘어서 적극적인 정신을 가짐으로(차라리 획득함으로) 봉사가 가능하고, 창조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산다는 것 전체가 봉사가 아닌가 생각한다. 여기에서 비로소 생활이 발견되고 사랑이 완성된다.”(681)라고 쓰고 있다. 그는 시골 여행을 통해 과거의 소극적인 “설움” 대신에 자본주의 문명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보다 “적극적인 정신”을 갖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도시 자본주의 문명에서 잃어버린 초월적 정신, “원초성”을 되살려야 한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는 것이다.


김수영은 한편으로 물질적 생활을 위해 자본주의 문명을 긍정하고 있는 자본주의자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주의 문명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초월적이고 전통적인 정신을 강조하는 민족주의자이기도 하다. 그는 자본주의 문명을 부정하는 사회주의의 길이 아니라, 서양의 자본주의 문명을 긍정하면서 민족의 전통적인 정신을 통해 그 폐해를 극복하려는 다원주의의 길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시골 선물」(1954)          


종로 네거리도 행길에 가까운 일부러 떠들썩한 찻집을 택하여 나는 앉아 있다

이것이 도회 안에 사는 나로서는 어디보다도 조용한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나의 반역성을 조소하는 듯이 스무 살도 넘을까 말까 한 노는 계집애와 머리가 고슴도치처럼 부슷스하게 일어난 쓰메에리의 학생복을 입은 청년이 들어와서 커피니 오트밀이니 사과니 어수선하게 벌여놓고 계통 없이 처먹고 있다

신이라든지 하느님이라든지가 어디 있느냐고 나를 고루하다고 비웃은 어제저녁의 술친구의 천박한 머리를 생각한다

그다음에는 나는 중앙선 어느 협곡에 있는 역에서 백여 리나 떨어진 광산촌에 두고 온 잃어버린 겨울 모자를 생각한다

그것은 갈색 낙타 모자

그리고 유행에서도 훨씬 뒤떨어진 서울의 화려한 거리에서는 도저히 쓰고 다니기 부끄러운 모자이다

거기다가 나의 부처님을 모신 법당 뒷산에 묻혀 있는 검은 바위같이 큰 머리에는 둘레가 작아서 맞지 않아서 그 모자를 쓴 기분이란 쳇바퀴를 쓴 것처럼 딱딱하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시골이라고 무관하게 생각하고 쓰고 간 것인데 결국은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것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서울에 돌아온 지 일주일도 못 되는 나에게는 도회의 소음과 광증(狂症)과 속도와 허위가 새삼스럽게 미웁고 서글프게 느껴지고 

그러할 때마다 잃어버려서 아깝지 않은 잃어버리고 온 모자 생각이 불현듯이 난다

저기 나의 맞은편 의자에 앉아 먹고 떠들고 웃고 있는 여자와 젊은 학생을 내가 시골을 여행하기 전에 그들을 보았더라면 대하였을 감정과는 다른 각도와 높이에서 보게 되는 나는 내 자신의 감정이 보다 더 거만하여지고 순화되어진 탓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구태여 생각하여 본다

그리고 비교하여 본다

나는 모자와 함께 나의 마음의 한 모퉁이를 모자 속에 놓고 온 것이라고

설운 마음의 한 모퉁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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