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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주 Feb 23. 2023

자유주의자 김수영 : 나비의 무덤


김수영은 1955년에 탈고한「나비의 무덤」에서 개인적 자유와 민족적 사랑 사이의 갈등을 제시한다. 화자는 나비의 “몸”은 제철이 가면 금방 죽지만, 그의 몸에 붙은 “지분”은 겨울의 어느 차디찬 등잔 밑에서 죽어 없어진다고 말한다. 


이것은 개인적인 육체를 상징하는 “몸”보다 민족적 사랑을 상징하는 “지분”이 더욱 가치가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개인적 육체는 유한하지만, 민족적 사랑은 영원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고독한 사람의 죽음은 이러하지는 않다”라고 단언한다. 이것은 개인적 자유를 추구하는 고독한 사람의 죽음은 민족적 사랑 못지않게 가치가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는 “고운 지분”, 즉 아름다운 민족적 사랑만을 강조하는 편협한 민족주의자들과 달리 생활의 구속으로부터 개인적 자유를 추구하는 고독한 자유주의자가 되겠다는 것이다.       


그는 “나는 운명을 거역할 수 있는 / 큰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노염으로 사무친 정”에 밀려 내려간다고 말한다. 이것은 그가 먹어야 살 수 있는 육체적 인간의 운명을 거역하면서 개인적 생활을 부정하고 민족적 사랑을 추구할 수 있지만, 가장으로서 가족을 부양하지 않으면 “노염”을 받을 수밖에 없는 “정”, “낡아도 좋은 것은 사랑”(「나의 가족」)  때문에 개인적 생활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가 나비의 무덤 앞에서 “나는 나의 할 일을 생각한다”라고 말하는 것도 지금은 그가 할 일은 나비의 지분처럼 고운 민족적 사랑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으로서 가족들의 생활난을 해결하기 위해 고독하게 돈을 버는 것이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그는 “나비가 죽어 누운 무덤” 앞에서 민족적 사랑을 상징하는 “바다”가 아니라, 개인적 생활을 의미하는 “나의 할 일”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민족적 사랑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개인적 생활에 몰두하다가 “나이”가 들어서 “무서운 인생의 공백을 가르쳐주려 할 때”, 즉 민족적 사랑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나이에 다시 나비의 무덤을 찾아오겠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는 “모자의 정”이나 “부부의 의리”같이 개인적인 가족을 사랑하는 “고독한 정신”을 “물소리 새소리 낯선 바람 소리”처럼 자연적이고, 나비의 지분처럼 곱고 “뜨거운” 민족적 사랑에 녹이면서 울겠다고 다짐한다. 지금은 당면한 개인적 생활난 해결을 위해 집중할 수밖에 없지만, 생활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때가 오면 민족적 사랑을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오늘이 있듯이 그날이 있는 / 두 겹 절벽 가운데”에 자신이 서 있다고 하면서, “오늘은 오늘을 담당하지 못하니 / 너의 가슴 위에서는 / 나 대신 값없는 낙엽이라도 울어 줄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그가 개인적 자유와 민족적 사랑을 “두 겹 절벽”, 즉 두 가지 역사적 과제로서 긍정하고 있지만, “오늘”은 개인적 생활난 해결이라는 과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으니 ‘너=나비=민족’을 위해 울어 줄 수가 없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지금은 가족의 생활난을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이기 때문에 민족적 사랑을 추구할 수 있는 “그날”을 기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 연에서 그는 “내가 죽은 뒤에는 고독의 명맥을 남기지 않으려고 / 나는 이다지도 주야를 무릅쓰고 애를 쓰고 있단다”라는 말로 시를 마무리한다. 이것은 그가 지금 개인적인 생활난을 해결하기 위해 밤낮으로 뛰어다니는 것은 “고독”할 필요가 없이 민족적 사랑을 추구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기 위해서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가 개인적 자유를 추구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민족적 사랑을 추구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가 자신의 죽음을 “네가 죽어서 지분을 남기듯이”라며 나비의 죽음과 동일시하는 것도 자신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민족적 사랑이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여기서 그가 “나비야 나비야 더러운 나비야”라고 하면서 ‘나비=민족’을 더럽다고 말하는 것은 에서 “더러운 향로”(「더러운 향로」), “더러운 전통”(「거대한 뿌리」)과 마찬가지로 민족의 전통과 역사 자체를 절대시하는 편협한 민족주의를 경계하는 의미로 볼 수 있다. 그가 민족의 전통과 사랑을 강조하는 이유는 아름다운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추억이 있는 한 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거대한 뿌리」)라는 말처럼 유한한 인간에게 영원성을 부여해 주기 때문이다. 


김수영은 생활의 구속으로부터 개인적 자유를 추구하는 자유주의자일뿐만 아니라, 민족적 사랑을 추구하는 민족주의도 함께 긍정하면서 그 사이에서 긴장과 균형을 유지하려는 다원주의자라고 볼 수 있다. 


「나비의 무덤」(1955)        

  

나비의 몸이야 제철이 가면 죽지마는

그의 몸에 붙은 고운 지분은

겨울의 어느 차디찬 등잔 밑에서 죽어 없어지리라

그러나

고독한 사람의 죽음은 이러하지는 않다     


나는 노염으로 사무친 정의 소재를 밝히지 아니하고

운명에 거역할 수 있는

큰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여기에 밀려 내려간다     


등잔은 바다를 보고

살아 있는 듯이 나비가 죽어 누운

무덤 앞에서

나는 나의 할 일을 생각한다     


나비의 지분이

그리고 나의 나이가

무서운 인생의 공백을 가르쳐주려 할 때

나비의 지분에

나의 나이가 덮이려 할 때

나비야

나는 긴 숲속을 헤치고

너의 무덤을 다시 찾아오마     


물소리 새소리 낯선 바람 소리 다시 듣고

모자의 정보다 부부의 의리보다

더욱 뜨거운 너의 입김에

나의 고독한 정신을 녹이면서 우마  

   

오늘이 있듯이 그날이 있는

두 겹 절벽 가운데에서

오늘은 오늘을 담당하지 못하니

너의 가슴 위에서는

나 대신 값없는 낙엽이라도 울어 줄 것이다     


나비야 나비야 더러운 나비야

네가 죽어서 지분을 남기듯이

내가 죽은 뒤에는 고독의 명맥을 남기지 않으려고

나는 이다지도 주야를 무릅쓰고 애를 쓰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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