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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주 Apr 28. 2023

제3지대 신당과 다원주의

1.


제3지대는 새로움과 새로움이 만나는 자리다. 오른쪽 벽에 달라붙어서 안보, 경제, 교육만 외치다가 제3지대에 와서 노동, 인권, 환경을 생각할 때의 새로움과 왼쪽 벽에 달라서 붙어서 노동, 인권, 환경만 외치다가 제3지대에 와서 안보, 경제, 교육을 생각할 때의 새로움이 만나서 또다른 새로움을 창조하는 열린 광장이다.


현재처럼 보수 대 진보, 영남 대 호남의 양자택일식 적대적 양당 체제에서는 미래를 위한 창의와 혁신을 기대하기 어렵다. 보수 대 진보의 시대착오적인 이념주의와 영남 대 호남의 케케묵은 지역주의를 타파하는 다원주의가 시대정신이다.


제3지대는 진보와 보수를 넘나드는 중용적 다원주의자들의 정치 공간이다. 김용옥 교수는『중용한글역주』에서 중용의 핵심으로 시중(時中)을 제시하면서, 이를 시간적 상황에 알맞게 행위하는 것으로 풀이한다. 


“시간에는 본시 절대적 시(始)도 없고 절대적 종(終)도 없는 것이다. “중(中)”이란 이러한 시간적 존재의 앎의 방식의 가장 근원적인 양태이다. 따라서 그 “중(中)”은 기하학적 미들(middle)이 될 수 없으며, 어떻게 시공적 상황에 알맞게 그 중(中)을 발현하느냐, 하는 “시중(時中)”의 문제로 귀착될 수밖에 없다. “중(中)” 그 자체가 “시(時)”의 문제인 것이다.”


중용은 평균적 중간 지대에 그냥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적 상황에 따라 가장 적절한 해법을 찾아가는 것이다. 김수영 시인이 「반시론」에서 양극 사이의 긴장과 균형을 제시한 것도 중용적 다원주의로 이해할 수 있다.


“귀납과 연역, 내포와 외연, 비호(庇護)와 무비호, 유심론과 유물론, 과거와 미래, 남과 북, 시와 반시의 대극의 긴장. 무한한 순환. 원주(圓周)의 확대, 곡예와 곡예의 혈투. 뮤리얼 스파크와 스푸트니크의 싸움. 릴케와 브레히트의 싸움. 앨비와 보즈네센스키의 싸움. 더 큰 싸움, 더 큰 싸움, 더, 더, 더, 큰 싸움…… 반시론의 반어.”


김수영 시인이 일과 휴식, 낮과 밤, 여름과 겨울, 과거와 미래 등 시간적 상황에 따라서 전통과 문명, 물질과 정신, 생활과 예술 사이에서 무한히 순환하면서 원주를 확대해 나가려 했던 시적 모험도 중용적 다원주의의 실천으로 이해된다.


중용적 다원주의자는 기회주의자나 회색분자가 아니다. 다원주의자는 진보와 보수를 모두 부정하면서 기계적 중립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진보와 보수의 합리적 핵심을 모두 긍정하고, 시간적 상황에 따라 양극 사이를 무한히 횡단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합리적 실용주의자이다. 따라서 중용적 다원주의자의 적(敵)은 시간적 상황과 무관하게 언제나 한 극단만 고집하면서 이분법적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진영주의자이다.


현대 다원주의 시대 한국 사회에는 종북 빨갱이 타령만 하는 극우나, 반미 토착왜구 타령만 하는 극좌와 손절하는 상식적인 중도, 합리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 사이를 시간적 상황에 따라 오가는 실용적인 중도 국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제는 시대착오적인 이념과 지역을 앞세워 국민들을 분열시키고, 극렬 훌리건과 스피커들을 앞세워 자기 진영은 무조건 지지만 하고, 적대 진영은 무조건 반대만 하는 비합리적인 양당 체제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선악 이분법적인 진영전쟁을 벌이면서 내부의 비판조차 '내부 총질'이라고 비난하면서 배신자로 몰아가는 비민주적인 정당 정치를 끝내고, 다양한 의견이 공존하는 민주적인 정치를 기대할 때도 되었다.


21세기는 시대착오적인 이념주의가 아니라,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다원적 실용주의가 시대정신이다. 현대 다원주의 시대에는 교육, 경제, 안보, 노동, 인권, 환경 등 산적한 문제들을 두고도 권력 장악을 위한 정쟁만 일삼는 무능한 적대적 진영 정치가 아니라, 당면한 문제들에 대한 합리적인 해결책을 마련하고 추진할 수 있는 유능한 정치가 요구된다.


나는 인간이 자유와 평등을 모두 요구하는 다원적 존재이기 때문에 보수의 자유와 진보의 평등 사이에서 긴장과 균형을 추구하면서 온몸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제3지대 다원주의야 말로 가장 자연적이고 본질적인 정치형태라고 생각한다.


2.


지금의 한국 정치를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생체제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거대 양당 체제에서 극단적이고 비합리적인 진영주의는 필연다. 민주당 정부에서 국민의힘이 사사건건 비판과 반대의 목소리를 냈던 것처럼 국민의힘 정부에서 민주당이 사사건건 비판과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역학 구도상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다.


적대적인 양당 체제에서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입장을 갖는 것 자체가 불가능다. 멀쩡했던 사람들이 양당에 들어가기만 하면 이상해지는 이유도 적대적 양당 구조 때문다. 대표적인 양당 체제인 미국과 마찬가지로 한국도 이미 사실상 내전 상태에 돌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계에 도달한 양당 체제는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


거대 양당 체제를 그대로 두고서는 아무리 극단적이고 비합리적인 진영주의를 비판해도 소용이 없다. 양당 구조에서는 일베, 태극기부대나 대깨문, 개딸들처럼 가짜 뉴스와 음모론, 천박한 네거티브를 일삼는 정치 훌리건들이 과대 대표될 수밖에 없다. 양당 지도부 입장에서는 적대 진영과 내부 배신자들을 무조건 공격하고 자신들을 무조건 옹호해주는 강성 지지자들을 이용하거나 묵인하면 했지 굳이 손절할 이유가 없다.


극단적인 진영주의를 넘어 합리적인 통합의 정치를 이루기 위해서는 양당 정치 구조를 타파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다. 국민의힘 내의 합리적 보수나 민주당 내의 합리적 진보의 설 자리가 너무도 좁은 주된 이유도 양당 구조 때문다. 


그가 서 있는 자리가 그 사람을 만다. 극단적이고 비합리적인 진영주의를 거부하는 사람들의 자리는 다원주의적 중도인 제3지대이다. 양극단으로 갈라져 있는 양당의 내부에서 합리적인 소수자가 되는 것보다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입장을 견지할 수 있는 중도 제3지대로 나오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다. 일부 극좌와 극우를 제외하면, 대다수 조심성 있는 진보주의자와 대담한 보수주의자들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제3지대에서 만날 수 있다.


3.


지금 한국의 정치 공간은 일반적으로 진보와 보수로 구분된다. 진보는 다시 중도 진보와 더 왼쪽을 자처하는 사회주의 극좌로, 보수는 다시 중도 보수와 더 오른쪽을 자처하는 신자유주의 극우로 나눌 수 있다. 문재인 정부 이후 민주당이 평등과 분배만을 주장하는 극좌로 기울면서 지금 중도 진보 정당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편 국민의힘은 이준석 대표 당선 이후 중도 보수 정당으로 변모했지만, 정권을 잡은 이후 다시 자유와 경쟁만을 주장하는 극우 정당으로 돌아가면서 지금 중도 보수 정당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칭 보수 정당은 종북 빨갱이 박멸만 외치는 영남의 극우세력들과 손절하지 못하고 끌려다니고 있으며, 자칭 진보 정당은 반미 토착왜구 박멸만 외치는 호남의 극좌세력들과 손절하지 못하고 끌려다니고 있다. 이제는 현대 다원주의 시대에 걸맞게 종북 빨갱이 타령만 하는 극우나, 반미 토착왜구 타령만 하는 극좌와 손절하는 상식적인 중도 신당, 합리적인 보수와 합리적인 진보 사이를 시간적 상황에 따라 무한히 횡단하는 실용적인 중도 신당을 바라는 국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최근 여론조사 결과 한국의 정치 공간은 국민의힘을 악마 집단이라고 생각하면서 무조건 민주당을 지지하는 30%와 민주당을 악마 집단이라고 생각하면서 무조건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30% 그리고 양당 모두 문제라고 생각하면서 합리적인 정치세력을 찾는 중도 30% 정도로 갈라져 있다.


물론 지금까지 제3지대에서 성공한 적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지난 대선에서도 중도층은 대변할 수 있는 정당이나 후보자가 없어서 결국 거대 양당의 후보자 가운데 덜 혐오스러운 사람을 어쩔 수 없이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 대선에서도 중도층을 대변할 수 있는 정당이나 후보자가 없다면, 거대 양당 후보자 가운데 그나마 덜 나쁜 사람을 선택하는 비극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여론 지형에서는 제3지대가 성공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 현재 한국의 정치 공간에서는 자유와 경쟁만 외치는 극우적 보수와 평등과 분배만 주장하는 극좌적 진보가 사생결단으로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을 뿐 다원주의적인 중도 진보와 중도 보수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자유와 평등, 경쟁과 분배, 국가와 시장 사이에서 다원주의적인 균형을 추구하는 제3지대 중도 신당이 필요한 이유이다.


더구나 지금은 부정부패를 손절하지 못하고 있는 민주당과 민주주의를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국민의힘이 서로 남탓만 하고 있는 네거티브 정치에 대한 국민적 실망과 분노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대통령의 지지 기반을 강화하려다 갈수록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는 여당 국민의힘이나, 당대표 사법 리스크와 전 당대표 돈봉투 사건, 김남국 국회의원 코인 사건 등으로 인해 민주당 모두 지지율 상승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것이 민주적이고 믿을 만한 제3지대 중도 신당이 성공할 수 있는 현실적인 조건이다.


4.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추구했던 김대중대통령 시절 민주당은 합리적인 중도 정당이라고 볼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도 진보진영의 기대나 요구와 달리 합리적 중도의 입장을 견지했던 것은 마찬가지였다.


사실 노무현은 진보진영의 대통령이 아니라 진보진영이 버린 대통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진보진영에서는 한미 FTA, 이라크 파병, 대연정 등을 이유로 노무현 대통령을 극렬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지금은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진보진영의 비판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올바른 방향을 제시했었다고 평가하는 국민들이 더 많을 것이다. 누구보다 먼저 노무현을 버리고서는 이제 와서 노무현의 계승자를 자처하고 있으니 국민들이 진보진영의 진정성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역 구도를 타파하기 위해 영남과 호남, 진보와 보수의 대연정을 제시하는 등 국민의 대통령이 되려고 노력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할 수 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지역구도 등 정치구조 개혁을 위한 제안'이라는 제목의 편지글에서 한나라당이 주도하고 열린우리당이 참여하는 연정을 제안했다. 그리고 역사성과 정통성에 대한 두 당의 인식 차이는 대타협의 결단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 주장했다.


하지만 최초 연정 대상으로 지목된 민주노동당이나 민주당 그리고 대연정의 대상으로 지목된 한나라당은 물론이고 심지어 열린우리당 내에서 조차도 별다른 호응을 받지 못했었다. 결국 지금까지도 한국의 정치 공간은 지역주의와 진영주의가 얽히고설켜서 내전 상태에 가까운 극단적인 진영대결만 벌이고 있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을 영남 대 호남의 지역 구도를 타파하고, 진보와 보수 사이에서 조화와 균형을 추구했던 다원주의적 정치인으로 기억하고 추모한다. 노무현의 대연정 정신은 아직도 현재형이다. 이것도 내가 제3지대 중도 신당에 기대를 걸고 있는 이유이다.


이제는 시대착오적인 이념을 앞세워 국민들을 분열시키고, 극렬 훌리건과 스피커들을 앞세워 자기 진영은 무조건 지지만 하고, 적대 진영은 무조건 반대만 하는 비합리적인 양당 체제를 끝낼 때가 되었다. 선악 이분법적인 진영전쟁을 이유로 내부 비판을 내부 총질이라고 비난하면서 배신자로 몰아가는 비민주적인 정당 정치를 끝내고 다양한 의견이 공존하는 민주적인 정당을 기대할 때도 되었다.


제3지대 중도 신당이 21세기가 요구하는 다원주의 정당, 자유와 평등 사이에서 조화와 균형을 추구하는 다원주의 정당이 되기를 바란다. 중도 신당이 이념을 앞세워 적대적 공생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거대 양당의 기득권을 타파하고, 국민을 위한 실용주의적인 정당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중도 신당이 국민들이 신뢰할 수 있을 정도로 공정한 정당, 무엇보다 부정부패를 저지르지 않는 깨끗한 정당이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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