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과 테슬라의 기술 전략으로부터
내가 태어나기 이전에도 비슷한 일들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근 기능적 관점에서 서로 유사한 두 개의 기술이 사업화 또는 실용화의 관점에서 극명하게 갈리게 되는 사건들이 발생하며 시사하는 바가 있는 것 같다.
우선, 2000년대 후반 피처폰이라고 불리던 일반 휴대폰에서 다양한 기능들이 한 디바이스에 통합된 스마트폰이 탄생한 초기 시점의 가장 대표적인 경쟁은 스마트폰의 인터페이스가 되는 터치가 가능한 디스플레이의 작동방식에 대한 기술적 경쟁이었다.
애플이 아이폰이 등장하기 이전에도 PDA라고 불리던 스마트폰과 유사한 기능을 하는 디바이스가 소개된 적은 있으나 (스티브잡스의 프리젠테이션으로 유명한 아이폰 최초 소개에서 강조한 것 처럼) 전화/인터넷/MP3 기능을 통합하여 새로운 제품 카타고리를 제시한 것은 아이폰이 최초라고 할 수 있다. 그 이후 전세계 휴대폰 기업들은 저마다 스마트폰을 출시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2010년대 초반까지 여러 진영(iOS, 안드로이드, 블랙베리 등)의 치열한 경쟁이 이루어지다가 중국의 화웨이, ZTE 등이 진출하기 이전까지 iOS의 애플과 안드로이드 진영을 대표하는 삼성의 양강 체제가 한 동안 유지되었다.
아이폰의 등장은 2007년 1월이었고 삼성에서 본격적으로 스마트폰을 내놓기 시작한건 2008년 경으로 2009년 11월에 KT를 통해 아이폰이 국내에 수입되기 전까지는 스마트폰에 대한 선택지는 삼성의 옴니아 외에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 당시 삼성에서 옴니아에 대한 광고에서 애플의 아이폰과 자주 비교하곤 했는데, 아이폰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궁금하긴 했지만 광고에서 삼성의 옴니아가 아이폰과 비교하여 모든 면에서 우수하다는 분석을 보면서 '역시 전자제품은 삼성이지'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2010년에 아이폰을 경험하게 되면서 정보의 단절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한 체험과 함께 '삼성의 홍보팀은 현타가 왔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있다.
이 때 대표적으로 비교되었던 기능이 디스플레이의 터치 방식으로, 아이폰은 정전식, 옴니아는 감압식 방식을 사용하고 있었다. 삼성을 포함한 안드로이드 진영에서는 열심히, 그리고 진심으로 보일만큼 감압식의 우수성을 강조하면서 정전식은 곧 사라질 기술처럼 얘기를 했었다. 지금 그 당시의 국내 인터넷 기사들을 검색해도 감압식의 우수성을 다루는 기사들을 다수 찾아볼 수 있다.
그 이후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전세계 스마트폰 뿐만 아니라 스마트디바이스의 모든 디스플레이는 정전식으로 통일되었다. 당장 삼성전자부터가 옴니아 시리즈가 국내를 제외한 글로벌 시장에서 참패하면서 다음 시리즈로 내놓은 갤럭시부터 정전식을 적용했고, 비단 삼성전자뿐만 아니라 감압식을 도입했던 여러 스마트폰 제조사들도 모두 정전식으로 돌아섰다.
스티브잡스의 선경지명이 어떻게 탄생했는지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한 기사에서 아이폰 개발의 방향성에 대한 한 가지 단초를 찾아볼 수 있다.
스캇 포스톨 전 애플 소프트웨어 사업 총괄 부사장은 “스티브 잡스는 스타일러스와 태블릿 자랑을 일삼는 MS 간부를 견딜 수 없어했다”고 말했다. 스티브 잡스가 전자펜의 일종인 스타일러스를 극도로 싫어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스타일러스 얘기를 한 MS 간부에게 격분한 잡스는 곧바로 태블릿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이 일화는 월터 아이작슨이 쓴 스티브 잡스 공식 전기에도 나온다. 잡스는 아이작슨에게 이렇게 털어놨다.
“그날 저녁 그 간부가 내게 열번 쯤 얘기했던 것 같다. 난 그 얘기가 얼마나 지겨웠던지 집에 오자마자 태블릿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그에게 보여주고 말겠다고 다짐했다.”
스티브잡스는 스마트디바이스를 개발하면서 무엇보다도 스타일러스나 키보드와 같은 외부 디바이스가 없어야 한다는데 천착하면서 터치형 디스플레이에 대한 최적의 도구는 사람의 손가락이 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그에 가장 적합한 터치형 디스플레이 기술로 정전식을 선택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 당시 시점의 정전식 기술과 감압식 기술의 실질적인 차이는 지금보다 적었을 수도 있고, 그 이후 애플이 정전식 디스플레이와 관련하여 개발한 다양한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기술들로 인해 정전식 방식이 우위를 가지게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기술을 바라보는 관점이 단순히 경제성(감압식이 정전식보다 40%가량 저렴)이나 기능적(감압식이 정전식보다 세밀한 터치에 유리) 요소가 아니라, '스타일러스가 필요없는 손가락만으로 컨트롤 할 수 있는 터치형 화면'이라는 기존의 경쟁자들(대표적으로 MS는 스타일러스를 기술의 혁신으로 보았음)과는 전혀 다른 접근으로부터 연결되었다는 점에 의미있는 통찰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최근 전세계 수 많은 테크 기업들이 경쟁하고 있는 자율운행 기술 분야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자율주행 자동차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사물과 주변환경 인식인데, 이 부분에 대한 테크 기업들의 기술 전략에 차이가 있다.
보통 완성차 업체들은 자율주행에 Lidar·Radar·카메라를 중심으로 고정밀지도(High-definition map)을 활용한다. 라이다로 초당 수백만번의 주파수 신호를 쏜 뒤, 되돌아 오는 시간을 계산해 전방 거리 등 주변 환경을 파악하고, HD맵을 이용하는 방식이다.
반면 테슬라는 '완전 비전중심 방식(Heavily Vision-based Approach)'을 활용한다. 테슬라는 개당 1000만원이 넘는 라이다는 물론 실시간 도로 환경 변화에 즉각 대응이 어렵다는 이유로 HD맵도 사용하지 않는다. 테슬라는 여러 대의 내장 카메라와 초음파 센서, 레이더를 활용해 처음 접하는 환경에서 차선, 신호등, 주변 차량 등을 인식해 주행하는 방식을 쓰고 있다. 전 세계에 흩어진 100만대가 넘는 차량으로 확보한 도로환경 영상 데이터 기반의 딥러닝 기술이 핵심이다. 카메라로는 불가능한 실물의 폭(깊이·Depth)도 라이다의 70%까지 측정할 수 있도록 개발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기존 자동차 업체들과 테슬라의 사물인식 기술 경쟁은 현재 진행중이다. 교통 인프라와의 유기적인 연계가 필요한 라이더 등 고성능 센서 기반의 기술과 사람처럼 시각정보만으로 판단하는 기술의 승자가 누가 될 것 인지, 아니면 이러한 판도를 뒤엎을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지 섣불리 예단하기는 어렵다.
다만, 시장의 선택은 결국 사용자 경험 수준과 만족도가 더 높은 기술이 살아남게 될 것이고, 당분간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