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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노 May 29. 2022

회사에서 솔직하면 안 되나요?

“너는 행간이 없어”

언젠가 친구 녀석 하나가 뜬금없이 내게 말했다.

“그래서 편하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해”

“…”




행간? 무슨 뜻이지?


당시에는 행간의 의미를 잘 몰랐다. 그래서 검색해봤던 기억이 난다.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대사로 유명해져 이제는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겠지만, 행간은 분명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다. 간단히 말해, 글과 글 사이의 숨겨진 의미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친구가 말한 ‘너는 행간이 없어’는 어떤 의미였을까? 당시 의도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너는 지나치게 솔직해’ 정도 아니었을까?


오랫동안 나는 솔직함을 미덕이라 믿고 살았다. 어렸을 적엔 어땠는지 잘 모르겠다. 기억의 파편을 이리저리 조합해봐도 내가 솔직한 아이였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엄마한테 전화해볼까? 엄마는 어린 시절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글쎄. 딱히 궁금하지 않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니까. 아마 머리가 굵어지고 사람들을 만나고 나름의 주관이 세워진 후, 가식 없는 솔직함에 매료되지 않았을까?


그러나 사실, 우리 사회는 솔직함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다. 질문하고, 나서고, 불만을 표출하는 사람을 자기주장 강한 미성숙한 투덜이로 취급한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꾹 참고 묵묵히 자기 일 하는 것이 성숙한 사회인의 모습이라 생각한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주로 뒤에서만 열심히 싸워댄다. A는 어떻고 B는 어떻다 말하며 언제든 그만둘 수 있다는 각오로 열심히 씹어댄다. 그러나 앞에 서면 모두 순한 양으로 돌변한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뱉으며 하하호호 떠들어댄다.




언젠가, 예전 회사에서 어떤 임원과 면담할 기회가 있었다. 그 당시 누구나 꺼려하는 중간관리자 A가 있었다. 그 사람으로 인해 퇴사자가 속출하고, 분위기는 나빠질 만큼 나빠진 상태였다. 모두 A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막상 누구 하나 나서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뒷담화 할 뿐, 어느 누구도 A 앞에서 어떤 말도 꺼내지 않았다. 아마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괜한 불이익을 받고 싶지 않았을 테니. 입이 막 근질거려 참을 수 없었다. 이때다 싶었다. 언제나 솔직함을 미덕이라 생각했던 내가 말하지 않고 버틸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그 임원 앞에서 A에 대한 이야기를 한바탕 쏟아내었다.


변화가 있으리란 기대는 시간이 지나며 뭔가 잘못되었다는 불안으로 변해갔다. 그날 이후 A의 행동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모두의 안줏거리가 될만한 행동을 서슴없이 이어나갔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화살은 나를 향해 되돌아왔다. 아마 둘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고 갔으리라. 경솔했다. 둘의 관계도 잘 모른 채 A를 지적하는 말을 쏟아냈으니. 나는 하루아침에 험담을 일삼는 사람으로 전락했다. 내 편이라 믿었던 동료들도 나를 모른 척했다. 나는 무인도에 난파된 사람처럼 고립되었다. 어이없고 억울했지만, 이윽고 깨달았다. 살아남으려면 마음껏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솔직함은 확실히 효율적이다. 친구가 말한 것처럼 행간이 없기 때문에 의사 전달이 명확하다. 젊은 시절의 솔직함은 쿨하고 뒤끝 없으며 감정에 충실한 일종의 ‘멋’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으면 ‘말하는 그대로’는 위협이 된다. 우리는 오랜 시간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견고한 성벽을 쌓는데, 누군가의 솔직한 표현이 내 벽을 무너뜨리려는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는 즉각적인 방어기제를 발동시킨다. A처럼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어떻게든 상대방을 깎아내리고 자신의 권력으로 상대를 찍어 누른다.


직설적 솔직함이 답이 아니라면, 약간 우회할 줄도 알아야 한다. ‘내가 맞음’을 아무리 고집해봤자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니라면 끝엔 언제나 갈등뿐이다. 오히려 약간의 가식으로 솔직함에 양념을 칠 수 있다면 충분히 충돌 없이 의견 전달이 가능하다. ‘에라 모르겠다’라는 심정으로 앞뒤 가리지 않고 말을 마구 던져봤자 칼날은 언제나 나를 향할 뿐이다. 약간의 가식과 우회적인 표현을 곁들여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면, 돌고 도는 관계 속에서 혼자 고립되는 상황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행간이 없다 해서 쓰인 부분이 날것 그대로일 필요는 없다. 불편함을 주지 않는 완곡한 표현과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말로 문장을 채워도, 충분히 자신의 마음을  전달할  음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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