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개 말단 직원의 의견이므로 회사의 큰 뜻(?)과는 무관합니다.
얼마 전, 회사에 큰 조직 개편이 이뤄졌다.
또 개편이군
연례행사다. 워낙 잦은 탓에, 별 감흥도 없었다. 1년에 많게는 서너 번이기 때문에, 이번에도 남의 일처럼 그러려니 하고 있었다. 사실, 조직개편이라는 것이 임원의 자리를 새로 마련하거나, 자기 사람 위주의 물갈이, 또는 조직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으려는 목적으로 단행된다. 즉, 높으신 으르신 이름만 바뀌거나 팀 이름만 변경되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러나 이번에는 뭔가 다른 느낌이다.
서비스 중심의 목적 조직에서 기능 중심의 조직으로 전면 개편되었다. 이전에는 A 서비스 조직의 디자인 팀과 B 서비스 조직의 디자인 팀이었다면, 개편 후 하나의 디자인 팀으로 통합되었다. 처음에는 분명, 조직구조와 무관하게 업무 방식은 달라질 것 없다 말했고,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지금껏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전과는 뭔가 달랐다. 단순히 껍데기만 바뀐 것이 아니라 일의 성격 자체가 뒤틀린 느낌이었다.
우선 똑같은 회의가 두 배로 늘어났다. 서비스 조직에서 하던 회의를 개편된 기능 조직에서도 앵무새처럼 반복해서 말했다. 실무 팀장에게 일이 집중되었고, 불필요한 중관 관리자만 늘어났다. 무엇보다 서비스 전담 책임자가 사라진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표면적으로는 모든 조직이 서비스 중심으로 효율적으로 운영될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 각 조직은 내부 목표를 우선하는 방향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앱(Application) 개발 본부라는 조직이 있다 가정하자. 이 조직은 A/B/C 서비스의 앱을 만드는 게 표면적 목적이다. 하지만, 앱 개발 본부장 입장에서는, 서비스 성공을 위해 모든 열정을 쏟을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서비스가 성공하더라도 그 공이 자신에게 고스란히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A 서비스는 앱 개발 본부뿐 아니라 기획, 디자인, 서버 등 다양한 조직이 참여한다. 그래서, 한 서비스의 실패가 본부장의 책임으로 전가되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각 조직은 다른 본부와 차별화하는 데 집중한다. 최고의 개발자 문화를 만든다거나, 활발한 기술 공유, 팀 개발 블로그 같은 서비스 외적인 부업 같은 것 말이다.
실무자는 혼란스럽다.
서비스 개발이라는 본업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가장 많은 시간을 본업에 할애한다. 하지만, 본업에 열을 올려도 좋은 평가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은 수동적인 자세로 일하게 만든다. 게다가 심적으로는 부업의 압박에 시달린다. 서비스와 무관하게 부업에 열을 올리는 본부장 때문이다. 평가를 잘 받으려면 본부장의 의도에 맞춰야 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본업도 부업도 잘하고 싶은 마음에, 쉴 새 없이 일에만 집중한다.
사실, 회사의 조직 개편은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 피해를 보는 사람이 있는 반면, 긍정적 변화에 환호하는 사람도 있다. 꼴 보기 싫은 팀장이 사라져 기분 좋은 사람이 있고, 자신의 권한이 축소된 누군가는 화가 난다. 아무리 회사 전체적으로 플러스라도, 반드시 누군가는 희생양에 당첨된다.
조직 개편뿐 아니라, 어떠한 변화도 마찬가지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결정, 정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회사가 커지면 커질수록 더욱 심하다. 예상치 못한 불만이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각자의 입장과 실리가 서로 다르니 어쩔 수 없다. 게다가 10명 안팎의 작은 조직에서는 충분히 설명하고 설득할 수 있지만, 1000명에 가까운 조직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몇몇이 논의하고, 결정하고, 일방적으로 통보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변화에 따르는 후폭풍이다. 갑작스러운 팀의 이동으로 평가에서 불이익이 발생한다. 생전 처음 보는 조직장이 조직문화를 망가뜨린다. 진행하던 일이 엎어지는가 하면, 심한 곳은 아예 부서가 사라져 버린다. 누군가는 피해를 보지만, 그게 내가 되면 화가 난다. 나는 아무 잘못 없는데 왜 내가 피해를 봐야 하나 싶다. 갑자기 회사가 싫어진다. 조직장도, 인사팀도, 대표도 원망스럽다. 내가 뭐하러 이 회사에 그리 많은 열정을 쏟았나 괜한 후회가 밀려온다.
우리는 회사를 인격체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내가 노력한 만큼 보상이 따르길 바라고, 늘 인간적이고 합리적으로 의사 결정할 것을 기대한다. 하지만, 회사는 인격체가 아니다. 이익을 좇는 집단에 불과하다. 다양한 이기심이 모여 임시로 굴러간다. 이익이 많으면 모두 환호하지만, 조금이라도 어려워지면 서로의 자리를 빼앗고 이익을 독점하려 안달이다. 작은 이익의 충돌이나 갈등만으로도 손쉽게 부서지는 모래성 같은 곳이, 바로 회사라는 조직의 본모습이다.
작고 큰 회사의 변화에 마음을 휘둘리고, 작은 갈등과 이익에 온 에너지를 쏟는 것은 미련한 짓이다. 감투는 영원하지 않고, 작은 이익이 인생을 크게 바꾸지 못한다. 회사라는 울타리는 생각보다 부실하다. 언제든 부서질 수 있고, 언제라도 당신을 내보낼 준비가 되어 있다. 그렇기에 회사의 울타리가 영원히 존재할 거라 믿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우리는 회사라는 울타리에서 한 발짝 떨어져 언제든 자기 길을 갈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