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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기환 Aug 11. 2020

슬럼가, 키베라

 https://brunch.co.kr/@jugiiii/124





  청회색의 개울은 모든 더러움을 안고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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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르는 액체와 비슷한 것을 굳이 꼽자면 비닐봉지, 담배, 유리조각, 배설물, 신문지, 각종 플라스틱, 녹슨 철, 동물의 사체를 넣고 일주일 동안 푹 고아낸 수프밖에 없을 것이다. 오물들의 진액이 흐르는 광경은 바라보기만 해도 속이 뒤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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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어떤 것도 진득한 개울물과 대치하지 못한다. 더러움에 기생하는 것을 평생의 업으로 여기는 날파리조차 개울을 외면한다. 질식하는 대지를 목격한다면 지구 위 그 어떤 유토피아를 꿈꾸던 사람도 패배감을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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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울물은 사시사철 흘러간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가뭄이면 가뭄 인대로 성실하게 흘러간다. 흐르는 와중에 갖가지 더러운 액체가 첨가된다. 공장의 진액, 인간의 오줌, 동물의 피... 개울은 오염시킬 무언가를 계속하여 찾아간다. 허나 개울을 책임질 대상은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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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나 역겨운 개울이지만 이 장소를 평생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는 그들의 삶을 비극이라고 칭하고 누군가는 연명이라고 단정 내린다. 하지만 그들의 삶에는 엄연한 이름이 있다. 바로 키베라KIB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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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베라는 아프리카는 물론 세계에서 가장 큰 슬럼가로 손꼽힌다. 총면적은 2.5km 제곱에 이르며 계속 확장되는 추세이다. 100만 명 이상의 인구가 이곳에 있을 것이라 추산할 뿐 그 누구도 키베라의 정확한 인구를 파악치 못한다. 새로운 죽음만큼 새로운 탄생이 이어져 키베라의 근간을 이루기 때문이다.

  키베라는 동북아프리카의 누비아 종족에게서 그 시작을 발견할 수 있다. 키베라라는 명칭 역시 정글을 뜻하는 누비아어에서 유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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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00년대의 끝무렵, 영국은 아프리카에 식민지를 확장하려 대신 피를 흘려줄 용병을 모집했다. 대륙에서 나비처럼 돌아다니던 누비안들은 그들의 용맹함을 시험해보기 위해 하나 둘 케냐로 모여들었고, 흘린 피와 목숨에 대한 보상으로 나이로비 한 켠의 지대를 보상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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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베라를 가로지르는 맑은 개울 옆, 제일 처음 기둥을 박은 청년 역시 누비아 용병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새로운 땅에서 안정적인 삶을 꾸릴 것이라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용병들과는 달리 그는 영롱하게 반짝이는 눈을 가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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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케냐는 냉정하게도 청년의 눈을 외면했다. 의도치 않았으나 그의 삶은 근대적 국가가 낳은 수백 개의 모순 한가운데 위치했다. 때문에 청년은 케냐에 융화되지 못한 채 표류할 수밖에 없었다. 청년이 원한 삶은 아니었으나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기에 청년은 오로지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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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인으로서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삶은 단 두 가지였다. 다시 떠나거나 버티거나. 그러나 누비안의 용맹이 유전자처럼 남은 탓에... 청년은 키베라에서 진득하니 버티며 삼등 인간의 삶을 이어나갔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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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은 흘러 흘러 청년은 같은 핏줄을 가진 여인과 결혼을 하게 되었고 그의 눈을 닮지 않은 자식을 낳았다. 그보다 곱절의 시간이 흐르고... 청년은 어느새 등 굽은 노인으로 변했지만 이방인으로서의 울분은 시간 저편으로 사라지기는커녕 밤마다 가슴에 열이 올라 삭힐 수가 없었다. 그래서 노인은 매일 밤, 달빛을 등지고선 차별받는 삼등 인간의 마음을 개울에다 흘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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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울의 색깔이 달라진 건 그때부터였다. 누비안 노인이 흘려보낸 눈물의 냄새를 맡고 온갖 인간 군상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피부색도 달랐으며 동기도 달랐다. 누군가는 돈을 벌기 위해, 누군가는 그들 공동체에서 쫓겨나서 이곳으로 도망쳐 왔다. 허나 땅은 어머니같이 모두를 받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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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인들의 모임이 사회 형태로 변모하는 것은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이로비 안에서 잉태된 비혈통 집단은 수많은 떠돌이들이 안식을 얻는 장소로 탈바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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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각기 다른 삶들은 결국 갈등으로 이어졌고... 이내 키베라는 범죄와 살인 등 흉흉한 분위기로 가득해졌다. 갈등이 켜켜이 쌓인 결과, 현재 키베라에서 죽음은 일상이 되었으며 마약들이 버젓이 거래되는 것은 물론 인신매매까지 이루어지고 있다. 관리해야 할 케냐 정부는 지원금을 받을 명목으로 범죄를 방치하고 탈세를 일삼는다. 제약회사들이 마루타로 쓰기 위해 사람들을 싼 값에 사는 것을 정부가 용인하고 있다는 흉흉한 소문마저 돈다.


  닉 역시 키베라에서 예외가 되지 못했다. 닉은 6년 전 봉사를 위해 키베라를 왕래하다 핸드폰과 금품이 든 가방을 통째로 털렸었다. 훔쳐간 게 아니라 4명의 도둑이 닉을 제압하고 완벽하게 털어간 것이다. 다행히 키베라 내의 규율과 목격자 덕분에 며칠 뒤에 가방을 찾을 수 있었지만 문제는 그 도둑들이다. 사람들이 내부 규칙을 지키지 않은 그 도둑들을 본보기로 죽여서 내정을 다졌다고 한다. 키베라는 이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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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젓이 일어나는 비극 중 키베라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플라잉 토일렛이다. 키베라는 거대한 크기에도 불구하고 내부에 하수처리시설이 없다. 그렇다고 인간 본연의 배설 행위를 멈출 수는 없기에 사람들은 비닐봉지에 오물을 해결하고 그걸 최대한 멀리 던지는 것으로 위생을 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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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던져진 비닐봉지가 쌓이고 쌓여 거대한 산을 이루고... 사람들은 그 위를 걸어 다니며 다지고 쌓이고를 무수히 반복, 도시는 이제 거대한 갈색 덩어리로 보일 지경이다. 그렇게 형성된 도시에선 어딜 가나 악취가 코끝을 때린다. 다시 말하지만 키베라는 이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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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키베라 현실을 맞대어 본다면, 마을의 한 켠에서 유유히 흐르는 청회색 개울이 키베라 전체를 대표하는 상징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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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변화를 목격한 개울은 여전히 담담하게 흐르고 있다. 허나 사람들은 청회색 이전 맑게 흐르던 개울물의 색깔을 기억하지도, 알지도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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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그 누구의 눈도 반짝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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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방송이 끝난 날부터 매일 이곳을 들락거렸다. 탐험이라는 이름의 허영심이 아닌, 키베라 안에 위치한 학교를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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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는 놀랍게도 닉이 6년 전에 직접 구상하여 설립한 곳이다. 닉은 이전에 아프리카 봉사를 위해 왔을 때 봉사가 단발성으로만 행해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지속 가능하며 진정 키베라를 위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한 끝에서 미국인 친구 두 명과 함께 돈을 투자하여 키베라 안에 자그마한 학교를 만들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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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개월을 닉과 함께 했지만 나는 이 같은 사실을 전혀 몰랐다. 천성에 가까운 닉의 겸손함도 한몫했겠지만, 학교에 대해 알게 된다면 내가 키베라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닉은 내가 키베라로 동행하는 것을 무척이나 조심스러워했고 나는 그런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괜히 다른 색의 피부를 가진 인종을 끌고 갔다가 사고가 난다면 그 아무도 수습할 수 없었다. 맹목적인 신뢰는 비단 여행뿐만 아니라 언제든지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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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닉은 홀로 키베라를 몇 번 방문하며 진단한 결과, 내부의 상황이 예전보다는 많이 안정되었다고 판단했다. 그렇다고 해도 무턱대고 방심할 수는 없다. 보통 키베라를 방송, 취재, 봉사로 오는 경우에는 키베라 거주민을 가이드 겸 보디가드로 붙여 움직인다. 하지만 우리는 여행자이기에 어떠한 지원도 받을 수 없었다.



  닉은 내게 신신당부를 했다. 자신에게서 떨어지지 말 것, 그들을 존중하고 무턱대고 핸드폰을 들이대지 말 것, 빨리 걸을 것.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최소한의 짐을 챙겨 그를 따라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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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심스럽게 키베라의 내부로 걸어 들어갔다. 사회적 통념 안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거리가 한아름 눈에 들어왔다. 양철집 사이로 온갖 쓰레기들이 산더미같이 버려져있었으나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 위를 밟으며 지나다녔다. 거리 전체가 부패한 것 같았다. 내가 여행을 하며 방문한 지역 중에서도 손꼽히게 더러운 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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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레기에 맨발을 찔리는 것도 고역이었지만 더욱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기괴한 악취였다. 쓰레기와 오물 냄새가 직선적으로 후각을 파고들었다. 전진할 때마다 혹시나 더욱 역겨운 냄새를 맡게 될까 마음을 졸이게 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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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민과 흑인, 한센인, 빈민 등 ‘거주구역’이라는 단어와 어울리는 집단은 타의적으로 사회성이 도려내진 사람들이다. 그들의 삶의 반경이 한정된 이유, 사회에서 약자로서 고립된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주류와 다르다는 이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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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차별받으며 사는 사람들에게 역으로 다름을 내보인다는 것은 위험하다. 그러나 우리는 최대한 조심했음에도 불구하고 하얗고 노란 피부를 가진 탓에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우리는 맨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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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베라 사람들이 던지는 시선이 등에 박혀 고슴도치가 될 지경이었다. 호기심과 경계심이 가득 담긴 시선이 뒷목을 타고 흘러 목이 빳빳하게 굳었다. 안녕하세요habarigani, 환영합니다karibu와 같은 언어 사용은 전혀 들려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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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당황함을 들키지 않으려 쏟아지는 시선을 일부러 대적했다. 장소가 익숙하다는 듯 고개를 당당하게 들었고 사람들의 눈을 보며 애써 인사도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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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일방적인 인사가 수십 번이나 반복되면서 나는 키베라의 사람들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미세한 차이점을 알아차렸다. 깜빡이기만 하는 하이얀 눈동자에 키베라 특유의 분위기가 서려있다는 사실. 그래서 그들은 어디서도 보지 못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묘한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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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선은 가치관의 자화상이다. 만약 시선에 보는 이가 담겨있지 않다면 그 사람은 분명히 인간으로서 치명적인 결격사유가 있을 것이다. 동일한 맥락으로 시선은 지역마다, 나라마다 다르다. 더 세부적으로는 국가체제와 공간, 환경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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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선을 극명하게 느낄 수 있는 공간은 역설적으로 시선을 빼앗길 만한 대상이 없는 공간이다. 한결같은 일상의 반복이 저주처럼 존재하는 곳에 가장 강력한 시선이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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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자의 특권은 여기서 발생한다. 운 좋은 여행자가 위와 같은 무대상無對象의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그는 순식간에 먹잇감으로 전락하여 무자비할 정도의 시선을 마주하게 된다. 사람들은 딱히 눈동자에 고인 에너지를 배출할 대상이 없는 처지라... 젖 먹던 힘까지 끌어서 이방인을 쳐다본다. 그리고 그 순간, 그 순간만큼 사람들의 솔직한 면모를 읽어낼 수 있는 기회는 드물다. 그곳의 사람들과 나 사이 존재하는 간극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몇 안되는 귀한 순간이다.


  중동의 나라들에서는 양극의 시선을 쉽게 마주할 수 있다. 기름이 껴있을 정도로 시선이 탐욕스럽거나 놀라울 만큼 건조한 두 가지의 시선. 그러나 역설적으로 양극단의 시선에 공통적으로 무지에 가까운 순수가 발견된다. 종교에 대한 맹신과 국가가 보장하는 기본적인 의식주 유지가 그러한 시선을 가능케 만드는 것이다. 허나 한편으로는 종교와 부가 시선마저 양극으로 갈라놓았다는 현상이 꽤나 씁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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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과 같은 공산국가에서의 시선은 절단이 확실하게 느껴진다. 정부가 제시한 성배만을 좇으며 살아가는 그들의 시선은 조기 교육된 연기에 가깝다. 금강산을 오를 때 우연이라도 그들 내면을 목격할 수 있지 않을까 기습적인 마음을 담아 힐끔 쳐다보아도 언제나 적정량의 친절과 적정량의 호기심이 비율 좋게 담겨있다. 나머지 빈 공간을 채우는 것은 규범이다. 인간을 강력히 통제하는 규범. 내재된 그들 나름의 자율성이 눈동자에 서려있으나 그것에 상위하는 통제력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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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리카는 얽매이지 않는 시선을 보유한 사람들이 가득하다. 아나키와는 다른 느낌의 눈동자. 물론 워낙 넓은 땅에 퍼져 살며 발전 양상도 천차만별이고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여행하는 통에 목격한 눈동자에 담긴 관념의 편차가 컸지만 공통적으로 그들은 시선에서 자신들이 인간의 원형임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었다. 익혀먹기도 아까운 생고기 같은 시선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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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기꾼들과 호객꾼들도 마찬가지였다. 여자를 권하고 돈을 원하는 그들의 시선 역시 어떠한 2차적 요소 없이 오로지 자신이 입에 담고 있는 것만을 욕망하는 '인간성'이 담겨있었다. 그것은 나 같은 도시인들이 떠벌리는 인간의 양상과는 여러 차원의 괴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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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키베라에 마주친 시선의 인상은 다른 슬럼가와도 달랐고 키베라 바로 바깥의 나이로비 사람들과도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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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와 남아공, 이집트와 요르단에서 방문한 슬럼가와 난민촌의 경험을 빗대어 볼 때, 슬럼가는 정치체계나 하이어라키가 뚜렷하지 않기에 정신적으로 치외법권에 가깝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슬럼지역에선 저항이라기보다는 어떠한 분노가 그들 눈동자에 촘촘하게 박혀있다. 무엇을 대상을 한 직접적 분노가 아니다. 그런 곳에선 분노라는 감정이 삶을 지속시킬 수 있는 유일한 동력원인 경우가 많다. 살아있음을 표현하기 위해, 살아있는 걸 느끼기 위해 행하는 분노. 그들에게 분노란 마치 피와 같이 인간을 움직이게 만드는 연료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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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나 키베라는 이상하리만큼 사람들의 시선이 경직되어있었다. 저항도 없었고 분노 또한 읽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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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사람들의 눈동자가 상투적이라고 생각했다. 쳐다보다가 다시 아무렇지 않은 듯 할일을 하는 사람들. 어떤 위화감이 눈동자에 언뜻언뜻 비쳤다. 그것에 대한 증명으로 볼 수 있는 것이 그들의 행동이다. 눈동자들이 마주치는 순간 의식적으로 시선을 꺾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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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의 경우 얼굴에 가득 미소를 지어 보이거나 동그란 눈으로 상대방의 존재의 크기를 재며 눈싸움을 하는 것이 아프리카의 일반이다. 대부분의 아프리카 사람들은 자신의 생명력에 대해 넘치는 자신감을 가지고 살기 때문이다. 그러나 키베라 안의 눈동자들은 사람의 것이라기보다는 너무나도 무감했으며 몇몇은 겁 많은 개의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재고해볼 만한 시선이었다. 이유가 궁금하여 지나가는 이를 몇 번이나 돌려세우고 싶을 지경이었다.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이후 여러 사람에게 물어 알아본 결과 키베라는 나이로비와는 또 다른 독립적인 정치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여러 구역이 존재했고 그 구역마다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치프chief가 존재했다. 구역 내에서 방송을 하고 행사도 있는 등 일정한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어 키베라는 나이로비 안에 위치한 독립국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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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후 매일 키베라를 왕래하다가 우연히 치프를 만나 볼 기회가 있었는데 카우보이 모자에 쇠 목걸이, 수염에다가 가죽조끼를 입은 마초적인 폼새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키베라의 정치 체계와 방향성을 온몸으로 대변해주는 남자를 보며 슬럼지역의 우두머리로서는 이만한 사람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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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베라는 닉이 방문한 6년 전과도 확실히 달라져있었다. 키베라는 무단 거주지이지만 아프리카 최대 규모라는 상징성 때문에 정부가 정치적으로 현상유지를 목표로 하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부는 안정화되었고 얼떨결에 키베라는 나이로비 중심부에 위치하면서 가장 집값이 저렴한 장소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돈을 벌기 위해 시골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비싼 집값보다는 키베라의 양철집을 선택했고(봉사단체가 와서 안타깝다고 눈물을 흘리는 양철집은 아프리카의 평범한 집이다) 그곳에서 출퇴근하는 이도 많다고 들었다. 앞서 말한 치프도 마찬가지로 돈이 많은 부자이지만 키베라에서 권력을 휘두르며 사는 것을 택했다. 저항감 없이 경직된 몇몇의 눈들이 이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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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무감한 눈동자는? 도대체 무엇이 그것을 가능케 만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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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같은 의문은 키베라에서 몇 주를 보내며 자연스레 풀리게 되었다. 키베라는 가장 큰 슬럼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봉사와 지원, 선교라는 미명 하에 수많은 외국인이 들락거렸다. 나 역시도 머무르는 기간 동안 수많은 단체를 목격했다. 킬리만자로에 사람이 몰리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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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나 봉사가 이루어지는 지점이란 나의 행복과 남의 필요가 맞닿는 부분이다. 봉사는 기본적으로 봉사의 대상이 원하는 것에 기반하여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당사자의 입장이 없는 일방적인 봉사는 자위自慰와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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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베라 주민들은 많은 외부인들이 봉사를 위해 방문하는 것을 수 천 차례 목격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사진을 찍을 때만 그들이 친절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외부인들이 흘리는 눈물의 무게가 가볍다는 사실 역시 경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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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외부인의 발걸음으로 달라지는 것이 크게 없다는 것을 키베라 주민들은 점차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물성을 가진 결과물로만 봉사의 질을 계산하는 외부인들을, 사진만 남기고선 쌩 떠나버리는 외부인들은 키베라의 희망을 점점 신기루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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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나 외부인들은 지치지 않았다. 전세계에서, 글로벌 국제 네트워크라는 이름의 거대한 조직망을 통해 그들이 설정해놓은 성지를 순례하고 그들이 찍고 싶은 모습을 찍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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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키베라의 사람들도 그들의 공간을 좋게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다. 허나 외부인들이 행하는 방식은 아니었다. 그런 식으로 ‘좋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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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조적으로 철저하게 지탱되는 허상을 믿는 것과 그것의 대상이 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깨지기 시작한 환상과 반복된 배반은 키베라 사람들 마음속에 켜켜이 축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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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투적인 눈... 영역에 들어선 외국인을 무감하게 바라보는 것은 어쩌면 키베라 주민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저항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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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베라를 가로지르던 청회색의 개울은 어느새 그들 마음속에도 흐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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