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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제 이준서 Jan 04. 2020

JTBC 신년토론 한국 언론, 어디에 서 있나

선택과 집중

TV를 보다가 나오는 용어 중 레거시 미디어(legacy media)가 무엇을 이야기하는 지를 알기 위해 검색을 하였다.  


※ 오래된 대중매체(TV, 라디오, 신문처럼 비교적 오래된 미디어 경로를 의미). 전통적인 언론, 신문, 지상파 방송 등의 전통 미디어를 뜻합니다

                                                                                                   

다음 팁에 나온 레거시 미디어에 대한 정의이다. 보다시피 본인도 기본적인 언론 정의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일반인이다. 토론 내용 중에도 나온 말이지만 뉴스에 나오는 어려운 법률용어와 같은 전문용어에 대한 미디어의 이해는 사후적으로 찾아볼 수밖에 없는 것이 대중의 현실이며 그러한 대중에 대한, 대중에 의한 보도이기에 -사전적으로는- 매스 mass(대중의) 미디어라 하나 본인과 같이 이해도가 낮은 사람은 레거시 미디어가 아닌 대안 미디어를 이용하거나 인터넷 뉴스를 통하여 법률용어와 같은 당시 이해하지 못한 부분을 이해할 수밖에 없다.


공급과 수요라는 경제원칙에 빗대어 볼 때 기존의 미디어는 공급자 중심이요 현재의 대안 미디어는 수요의 증가에 따른 사회현상이다. 공급이 우선이냐 수요가 우선이냐는 경제학에서 고전 경제학파, 케인즈학파 등에서 항상 이슈를 다투는 내용이다. 같은 학파도 신고전학파, 신케인즈학파 등 수정 자본주의론이 대두되므로 정체적인 학설은 없다. 미디어 또한 그들의 운용주체가 거대 자본가들에 의해 유지되므로 결코 자본에서 독립적일 수 없으며 아쉽게도 용어는 대중 미디어이나 그 운용주체는 거대 재단이 배후에 자리 잡고 있다. 그 미디어보다 더 큰 국제기구들조차 자본의 이익에 부합할 수밖에 없는데 예를 들어 철강왕 카네기와 더불어 세기의 재벌인 석유왕 록펠러가 세운 록펠러 재단의 예를 들어 보겠다.

석유왕 록펠러

록펠러 재단에 대한 언론의 보도는 이렇다. 카네기와 더불어 천문학적인 부를 쌓은 두 가문은 이후 경쟁적으로 자선사업에 손을 대기 시작한다. 그래서 언론은 미국 재벌들의 자발적인 증세같은 노블레스 오블리쥬를 부각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벌어들이는 기하급수적인 수익에 비해 기부는 산술급수적이며 정작 월스트리트의 금권 카르텔 세력은 미디어에 의해 가려 있다. 참고로 재단은 세금폭탄을 피하기 위한 좋은 방편이다. 이후 록펠러재단은 교육시스템을 손에 넣고 몬산토를 통해 식량산업을 손에 넣고 에너지(엑손모빌), 군산복합체(록히드 마틴) 등등등... 그리고 언론까지 장악한다. 그래서 언론에서는 진짜 금권 세력인 이들에 대한 언급이 없다. 빌 게이츠가 발도 못 비빌 자산가들이 세상에 많으나 주류 미디어들에 대한 자본의 잠식이 실질적인 정보의 접근을 막고 있다. 막말로 IMF가 터지기 전 왜 언론은 침묵했나? 모든 언론이 말 그대로 대중 미디어라면 왜 대중은 죽이고 재벌들은 살리는가? 간단히 말해 공급자의 공급 독점에 대한 문제가 있으니 다수 소비자의 미디어 수요에 대한 욕구를 유튜브와 같은 대안 매체들이 충족시켜 주는 간단한 수요공급의 경제원리이다.


토론에서 한 토론자의 대안미디어의 대한 편향의 문제는 대안 미디어이기에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공급이 많아지면 공급단가가 낮아지고 그만큼 미디어에 대한 접근이 용이해지고, 따라서 보도는 소위 급진적인 진보에서부터 극단적인 보수에까지 채널이 다양해질 수 있으며 그 다양한 채널에 대한 선택과 집중에 대한 문제는 소비자의 문제이지 공급자의 문제가 아니다. 공급자에 대한 편향의 문제는 소위 레거시 미디어에 국한되는 문제이지 대안미디어의 문제가 아니다. 심지어 레거시 미디어조차 은 것은 아니나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편중될 수 있다. 그러하건대 대안미디어가 편향적이니 잘못되었다는 것은 그 대안조차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대안에 대한 대한조차 허용하지 못한다. 대안미디어의 다양한 다극화를 통해 레거시 미디어의 양극화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지 대안미디어의 음모론이니 편향을 문제 삼는다면 언론의 기능에 대한 인식의 부재랄 수밖에 없다.

한 때 싸이의 군대 문제가 부각되어 결국 2번 군대를 가는? 웃지 못할 상황이 있었다. 참고로 본인은 그때의 상황을 보며 국방부의 행태를 이해하지 못했다. 모든 국가기관은 한 개인에 대해 기본적으로 어떠한 불이익적인 입장을 취하면 안 된다. 왜? 권력기관이기 때문이다. 설령 국가기관의 결정이 옳다 하더라도 국가기관은 한 개인에 대해 강압적인 불이익적인 태도를 취해서는 안 되고 문제시되는 부분은 사후 법적으로 처리해야 한다. 군복무라는 작위행위를 현재의 입법으로 소급하여 부작위로 처리해선 안된다. 더구나 연예인=공인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대중은 정작 국가의 세금을 받는 진짜 공인인 공무원에 대한 비리를 조그맣게 다루고 언론은 국가권력기관의 입맛에 빗대어 공인이라는 정의를 확대 해석한다. 그래서 공인이라는 의미를 희석시킨다. 조국사태에 대한 언론보도 또한 싸이 때와 마찬가지로 한 개인을 보호하지 못하였다. 다만 조국 사태는 법무장관 자체가 하나의 국가기관이라는 특수한 경우로 언론이 다룰 수는 있으나 레거시 미디어로서의 중립성을 견지하였느냐의 문제에 있어서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언론 공급자들이 작태가 쌓여서 나온 것이 대안미디어이며 이것은 당연한 공급과 수요라는 경제원리에 입각한 사회현상이다. 인터넷에 의해 한계비용(재화나 서비스를 1단위 더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추가적인 비용을 말한다) 제로의 사회가 오면서 앵커와 기자라는 기존 직업에 대한 공급비용이 낮아지면서 다수의 미디어 앵커와 기자가 나오면서 다소 질 낮은 뉴스가 나오는 과도기적 측면은 굳이 역사를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스쳐가는 생채기와 같은 것이다. 문제는 그 생채기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극우와 극좌가 만나 충돌하는 장이 대안미디어이며 그 분출된 언론을 통합하는 역할을 해야 할 곳이 바로 레거시 미디어이다.


정보의 집적이 이루어지면서 데이터의 양이 테라 바이트(TB)-페타 바이트(PB)- 엑사 바이트(EB)-제타 바이트(ZB)-요타 바이트(YB)까지 이르게 되었다.


※ 1 YB = 1024 bytes = 1,000,000,000,000,000,000,000,000 bytes


그리하여 이제는 데이터도 빅데이터라 하여 그 빅데이터의 학습을 통한 인공지능의 출현까지 나타나고 있으며 그 정보의 미디어 전달자인 뉴스 앵커 또한 인공지능 아나운서가 등장하고 있다.

중국의 인공지능 아나운서

얼마 전 4차 산업 관련 뉴스에서 인공지능과 인간의 인지능력에서의 주요한 차이는 무엇이냐란 발표자의 발표에서 그것은 진정성이다란 말을 듣게 되었다. 기자라는 직업이 아닌 정보를 창출하는 정보창업자(앙트레프레너entrepreneur란 혁신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창업정신을 가진 자)라는 직업의식을 가져야 진정성이 나온다. 수많은 정보, 데이터들 속에서 양질의 정보를 선택하여 집중하는 문제는 자칫 전문적인 사회현상을 설명하기는 쉬우나 일반적이고 전반적인 사회현상을 설명하기엔 무리일 수 있다. 그래서 정보의 전달자인 미디어는 선택과 집중에서 편향의 문제에서 언제나 자유로울 수는 없다. 왜? 인간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거시 미디어는 전문가적 견지가 아닌 최대한 일반적인 견지를 고수해야 한다. 그러한 일반적인 정보를 취합하여 다시금 세세한 정보를 선택하고 집중하고 취합하는 것은 그 미디어의 소비자인 대중의 몫이며 그 공급의 양질에 문제가 있다면 소비자가 공급자가 되는 프로슈머 혁명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미 4차 산업이 눈앞에 다가온 지금 전통적인 생산자 소비자의 관계는 지양되어야 하면 좀 더 발전적인 계로 지향해야 하는 것이 레거시와 대안미디어의 역할이며 하루빨리 그 관계를 정립해야 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며 우리 모두의 관심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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