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욜수기 yollsugi Feb 17. 2020

??: 하이라이트 말고 풀경기 보랬지

욜수기의 짧은 호흡 #3

이전의 매거진 [느바 이야기]나 핸섬 타이거즈 리뷰 글에서 느꼈겠지만, 페스티벌만큼 나의 삶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열과 성을 쏟는 것이 있다면 바로 농구이다.

어렸을 때부터 농구를 해왔었고, 그덕에 농구를 보는 것에도 재미를 느껴 보기도 참 많이 봤다.


가만 보면 인사이트들은 생각보다 완전히 다른 분야에서 얻어지는 경우들이 많은 것 같다.

나에게 농구가 딱 그랬다.


팀스포츠인 농구의 모습은 사회의 각종 조직 안에서 살아가는 모습과 흡사한 면이 많다.

농구에서 내가 맡는 일련의 역할은, 내가 평상시에 갖고 있는 수많은 역할들과 비슷하다.

농구를 잘하는 데에 필요한 능력과 요건들은 일상, 커리어에서의 능력발휘를 위한 요건들과 일맥상통하기도 하다.


이제 농구를 모르거나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내가 농구에서 얻은 인사이트들을 공유하는 것을 목표로 하나하나 에피소드들을 풀어가보려 한다.



??: 하이라이트 말고 풀경기 보랬지

제목에 적힌 이 대사는 나와 함께했던 팀원들에게 굉장히 많이 했던 대사였다.


짧게 레퍼런스를 던져보자면,

농구를 해오면서 농구경기를 보는 것이 실제로 공을 갖고 연습을 하는 것만큼이나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강하게 느껴왔다. 우리나라 프로농구 경기, 대학선수들의 경기, 동아리대회, 사회인농구 대회, 유소년대회, 그리고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날아다니는 NBA 경기까지.

아, 본인이 뛰었던 경기의 촬영본도 여기 포함된다.


꼭 풀 경기(경기 전체)가 아닌, 하이라이트 필름만을 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생각보다 굉장히 많았다. 적어도 내가 느낀 바로는, 학습의 목적을 갖고 하이라이트 필름을 본다면, 결코 목적적합하지 않다. 학습의 목적, 실력향상의 방법으로 시청중이라면 반드시 풀경기를 보아야 한다.


물론 이해는 간다. 시간이 오래 소요되고, 번번히 공격에 실패하는 장면들보다는 깔끔하게 골이 들어가는 장면만을 모아놓은 영상이 보기에 더 편안하고 흥미로운 법이다. 

그러나 '편집본'과 RAW한 '전체 영상'을 보는 것에는 아주 큰 차이가 있다.


1. 하이라이트를 보게 되면 잘한 것만 기억하게 된다. 

그 영상이 본인 영상일 경우에는 더하다.

내가 잘한 것, 내가 좋아하는 선수가 잘한 모습, 멋있는 장면이 나온 영상을 보면 기분은 좋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잘한 것만 기억하지 않는 능력이 필요하다. 의도한 바와 그 방법론이 정확히 맞아떨어져 원했던 결과가 나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대개 의도한 바와 다르게 과정상에서 문제가 생겨 원치 않는 결과를 낳게 되거나, 과정이 이상하고 의도와 달랐는데 우연히 '얻어 걸리듯이' 결과가 좋게 나오기도 한다.

농구와 일상 속의 모습이 참 닮아 있었다. 변수가 가득한 모습 말이다.


때문에 전체적인 과정, 앞뒤 맥락을 모두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자체로 감사한 일이다.

과정상에서 어떤 부분을 놓치고 있었는지, 다음에 비슷한 기회가 찾아온다면 어떤 시도를 해보는 것이 좋을지, 끊임없이 연습했는데도 쉽게 고쳐지지 않는 모습이 있는지, 다음에 똑같은 상황이 발생했을 때 내 실력을 다 발휘할 수 있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

농구의 풀경기를 보면서 농구에서 계속 실수를 고쳐나가고 많은 변수에 대비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리고 이것이 자연스레 습득되어 삶에서의 실패나 실수도 크게 겁내지 않게 되었다. 


핸드폰을 하다, 재밌는 스토리가 담긴 '짤'을 보았다.
아이가 게임에서 'Fail(실패)'가 떴을 때 웃으며 아버지에게 'Fail'이 나왔다고 말했다.

"Fail이 나오면 좋은거야?"
"응! 좋은거야!"
"왜 좋은거야?"
"다시 하면 된다는 뜻이야."

인생에 기회는 굉장히 많다.

승부를 결정짓는 레이업을 놓쳐 경기를 지고 나서 자책을 하다가도, 똑같은 상황이 왔을 때 놓치지 않기 위해 수백번이고 레이업을 연습하다보니 희한하게 비슷한 상황이 찾아왔다.

이번 기회가 나에게 너무나 절실한 기회였고 그것을 놓쳤더라도, 준비한다면 비슷한 기회는 또 찾아오기 마련이다. 중요한 건 일련의 과정 중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되짚어보고, 그저 다시 해보는 것이다.


2. 두번째로 풀영상을 강조하는 이유는 나 자신에 집중하지 않을 수 있어서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경기를 풀영상으로 봐야되는 이유이기도 하고, 본인 영상의 경우에도 반드시 풀영상으로 시청해야 하는 이유이다. 

실제로 어떤 일이든 무의식적으로 '나'의 행보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했다는 것도, 나와의 관계성에 집중하며 그 상황을 이해하려 하곤 한다.


하지만, 농구경기 풀영상을 보면서 강하게 느낀 점이 있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다른 사람의 기회가 있었는지, 다른 사람들은 나를 위해 당시에 내가 보지 못했던 기여를 어떤 방식으로 하고 있었는지.

한 발짝 떨어져서, 세상에서 나를 잠깐 내려놓았을 때, 다른 사람들의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것 역시 감사한 기회다. 

내가 하려다가 빈번히 실패한 일을 어느 누군가는 거뜬히 해냈을 때, 그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있다. 

본인을 조금 희생하여 나를 도운 사람이 있었다면 감사를 표하고 이번에는 내가 그를 빛나게 해줄 좋은 기회가 생길 수도 있다.


다른 사람과의 비교도 알고 보면 자기 중심적인 사고방식이었다.

머릿속의 모든 신경은 타인을 향해 있었지만 결국 그 중심에 내가 있었기에 스트레스도 받는 법이었다.

하지만 풀영상을 가만히 지켜보다보면, 그리고 의식적으로 나에서 벗어나다보면,

혹은 아예 다른 리그의 영상들을 보다 보면 타인에 집중하게 된다.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연결고리를 맺어가며 서로를 빛나게 해주고 있는지, 그 아름다움을 조금은 느끼게 되었다.

비록,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하이라이트 필름은 참 멋있다. 멋지고 심플하다.

그래도 나는 풀영상을 앞으로도 선호하겠다.

농구에서건, 내 남은 숱한 일상에서건. 나는 서툰 전체과정에 집중하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노홍철님, 감사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