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카니예 웨스트 Kanye West 다큐멘터리 1화 리뷰
넷플릭스 카니예 웨스트 Kanye West 다큐멘터리 1화 리뷰입니다.
2화, 3화 리뷰를 이어 쓸 지는 모르겠지만, 모두가 1화라도 꼭 보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쓴 글입니다.
넷플릭스 카니예 웨스트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카니예 웨스트의 커리어 시작이 담긴 굉장히 신선한 다큐멘터리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할 때, 한 슈퍼스타가 날개를 펼치기 전, 누구보다 절실하게 세상에 외치고 있을 때, 그 모습들이 여실히 담긴 다큐멘터리였다.
다큐멘터리를 보고 난 뒤, 짧게 두 줄의 감상평을 남길 수 있었다.
카니예도 그랬다. 사람들이 그의 진가를 알아봐주지 않았다. 굉장히 오랫동안.
카니예는 그랬다. 그걸 버텨냈다. 이겨냈다.
1화의 제목은 비전이다.
비전 Vision.
이 단어가 왜 ‘미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의 의미를 내포하게 되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비전이라 쓰고 ‘카니예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라고 읽어본다.
몇 가지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다. 그 중 5가지를 꼽아보았다.
이 장면들을 본다면, (기왕이면 다큐 전체를 본다면) 아마 짧은 두 줄의 감상평에 공감하고 이해하게 될 것이다.
ROC-A-FELLA 라커펠라 레코드 사무실에 무작정 기습해서 사무실마다 자신의 노래를 틀고 랩을 하고 존재감을 알리는 카니예 웨스트의 모습이 유독 인상적이었다. 노래가 끝나면 라커펠라 직원들의 반응은 하나같이 똑같았다. 노래를 틀기 전과 후의 변화가 없었다. 지금에서나 카니예지, 이 때만 해도 그저 그들의 일상적인 업무 진행 중 쳐들어온 패기로운 신인일 뿐이었다. 이 장면이 흥미로웠던 이유는 카니예의 눈빛에서 절박함과 약간의 무안함, 약간의 서운함 등의 감정이 모두 드러났기 때문이다.
카니예도 뻘쭘한지 노래가 끝나면 괜히 벽을 만진다. 카메라를 보며 멋쩍은 미소를 짓고, 들어왔을 때의 패기와는 사뭇 다르게 방을 퇴장한다. 너무도 인간적이다. 이 다큐멘터리가 더 설득력을 지니는 이유 같다.
라커펠라 사무실을 나올 때 복도를 지나가다가 마주친 한 명이 카니예에게 말한다.
“핫한 친구예요. 뜨거어요. 내 비트도 부탁해”
그리고 카니예는 같이 갔던 동료와 함께 말한다.
“그래.. 이런 식이라는 거지?” “그래”
카니예는 프로듀서로서 이미 성공가도를 걷고 있었다. 이미 제이지한테 곡을 줬는데 더 수식할 필요는 없다.
업계에서 곡을 잘 뽑는 프로듀서로 알려져 있었지만, 그것은 카니예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카니예는 프로듀서이면서, 동시에 래퍼이고 싶었다.
그리고 당시 ‘프로듀서 겸 래퍼’에 기대를 거는 레이블은 없었다.
카니예는 아무도 기대하지 않던 길에 계속 부딪히고 있었다.
두번째 인상깊었던 장면은 카니예가 불분명한 상황을 맞닥뜨리는 자세가 드러난 장면이었다.
자신과 계약해 줄 레이블이 불분명한 가운데, 카니예는 계속 작곡에 정진했어요.
사촌을 통해 다른 래퍼가 선금 지불 없이 곡을 받을 수 있는지 물은 요청에는 이렇게 말한다.
랩해준다는 소리 들으면 어처구니가 없다니까. 내 비트는 못 줘. 뭐랑 똑같은지 알아?
가전제품 매장에 들어가서 이러는 거야 “내가 TV를 정말 잘 보거든요?”
어쩌라고 인마, 나는 TV를 파는 사람인데 TV를 잘 본다고 해서 공짜로 주는 놈이 어딨어
재미있는 건, 바로 그 다음 장면, 같은 차 안에서 한 저널리스트와의 인터뷰 장면이 나온다.
"(DMX가) 이 비트 안 가져가면 내가 쓰려구요."
"이걸 준다구요? DMX한테?"
"네, 더 잘나가니까 나보다 먼저죠."
"본인 곡 쓰면서도 그런 생각을 해요? 자기 앨범에 쓰고 싶으면... 곡을 쓰고 있긴 해요?"
아이디어는 있죠. 가끔 샘플링 아이디어를 가지고 곡을 쓰기도 해요. 나중엔 나만의 비트를 만들려고요. 기타리스트와 보컬을 고용해서 내가 시키는대로 부르게 하는 거죠.
그럼 다들 묻겠죠. ‘그 샘플 어디서 났어?’ 내가 만든 샘플인 거에요. 70년대 사운드 그대로.
그게 다음 단계에요. 그런 세상을 만들 거에요.
DMX가 잘 나간다고 평가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자기객관화다. 카니예에게는 계획이 있다.
프로듀서로서 내가 만든 곡에 자신이 있기 때문에, 그 가치를 알고, 자신의 곡이 어설프게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게 못하고 쓰일 바에는 본인이 하겠다는 의지가 뚜렷하다. 동시에 DMX가 가져가는 등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면 거리낌 없이 나눈다. 하지만 그가 원하는 To-Be의 모습은 그럼에도 뚜렷하다.
영상에 나온 것은 하나의 예시일 뿐이었을 것이다, 그는 그가 만든 결과물의 가치를 높게 생각했고, 동시에 높이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꿈꾸고 노력했다.
“나는 그저 내 할일을 한다"라는 마인드가 이 장면에서도 느껴졌다.
모스 데프에게 ‘Two Words’ 벌스를 부탁하는 장면이다.
모스 데프가 먼저 벌스를 내뱉고, 그 뒤를 이어 카니예가 랩을 한다.
1화를 보면서 가장 울컥했던 장면은 이 장면이었다.
위에서 언급한 카니예가 라커펠라 사무실을 갔던 장면만큼이나 인간적으로 다가왔다.
이번에 느낀 인간미는 절실함이었다.
모스데프의 여유로움과 대비되었기에 더욱 절실함이 부각되는 장면이었다.
카니예가 모스데프 옆에서 표현하는 리스펙, 절실함, 하지만 동시에 자신감과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실력을 보이겠다는 결단과 의지 또한 모두 느껴진 장면이었다.
처음 내뱉을 때보다 랩을 하면서 점점 카니예는 격앙된다. 마지막에는 거의 소리를 지르고 있다.
그에겐 모스데프와 함께 벌스를 내뱉는 그 순간이 스스로를 표현할 너무도 중요한 기회로 느껴졌을 것이다. 이 때다 싶으면, 망설이지 않았다.
카니예의 랩을 듣는 동안 자연히 나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절실함을 표현해야 했던 순간에 저 정도 의지와 결단을 갖고 임했던가?
진심은 티가 나는 법이다. 1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카니예는 ‘진심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보여주었다.
실력적인 발전을 위해서 스스로를 채찍질함에도, 자기 자신을 향한 믿음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특유의 긍정성 덕분이다. 긍정성이 부족한 점을 확인하지 않고, 좋게만 생각하려는 자기합리화로 이어진다면 독이다. 하지만 긍정성이 부족한 점을 오히려 드러내고, 실패하는 모습에 멋쩍어 하면서도 숨기려 하지 않으며, 스스로의 내실을 더 채워가는 수단으로 활용된다면, 그만큼 따뜻하고 든든한 약이 있을 수가 없다.
유 히어 잇 퍼스트라는 방송에 나와 카니예는 이야기한다.
누가 나한테 제 단점은 이거라고 알려주면 그걸 장점으로 만들죠.
사람들이 못 할거라고 할 때마다 난 그 모든 걸 가지고 긍정적으로 바꿔놔요. 잔에 물이 절반이나 채워져있다고 보는 쪽이죠. 내가 본 것들을 대변하려고 노력할 거고 최선을 다해 표현해서 세상과 공유할 거에요.
그럴 만한 창의성이 있으니까 성공할 수 있어요.
대놓고 이런 말 한사람은 없을 거요. ‘들어봐, 내게 또 다른 모습이 있다는 걸 보여줄게’
카니예 다큐멘터리를 찍는 쿠디가 카니예를 보면서 가장 놀라웠던 건 자신을 향한 믿음이라고 한다.
자신만 믿었을까, 그러면 오만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동시에 카니예는 남들의 믿음도 얻으려고 매일 고군분투했다.
단점은 무조건 장점으로 만든다는 것.
자신을 믿으니까, 그리고 다른 사람의 믿음을 얻고자 하는 자신의 모습에 솔직하니까.
카니예는 솔직하게 자신을 바라볼 줄 알았고, 그렇기에 긍정적이었다.
카니예의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긍정적으로 발현된 또 하나의 재미있는 장면이 있었다.
고향 시카고로 돌아와 행사를 하게 되었는데, 큐시트에 그의 이름이 풀네임 대신 ‘카니예 Kanye’라고만 적혀 있었다.
"내가 분명히 말했어."
‘예명이 무엇인가요? 무슨 이름으로 활동하시나요?’
“카니예 웨스트요.”
"근데 광고에서 그러는 거야, ‘시카고의 자랑, 카니예 출연’"
내 이름은 카니예 웨스트라고. 그랬더니 뭐라는 줄 알아?
‘다들 카니예라고 부르잖아요’
Kanye라고 안 부르고 자꾸 다르게 부르니 그냥 Ye라고 부르지 그랬냐.
카니예와 같은 사람들에게 그의 이름이 어떻게 불리는지는 굉장히 중요할 수 있다. 이름은 단순히 존재, 유명세 뿐 아니라 정체성을 내포한다. 그런 이름을 자꾸 원하는 것과 다르게 부르니, 그는 내심 속이 상했을 수 있다.
카니예는 그렇게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제대로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며 한참을 궁시렁거리다가 말한다,
‘배불러서 하는 소리에요'
사실 스스로 얼마나 확신을 갖고 있는지만 중요한 그에게 이런 것들은 하나도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긍정성은 곧 내면의 단단함을 드러낸다. 사소한 일이 사람을 흔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 카니예도 그랬다. 하지만 자존심이 상했을 수 있겠다고 느낀 순간들에도 카니예는 단단했다. 중심이 잘 잡혀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스스로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된 긍정성의 힘을 믿기 때문에, 이 장면 역시 특히나 인상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나 싶다.
카니예의 음악을 들었다면, 그의 앨범명 중에 ‘Ye’가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이런 생각이 반영된 앨범제목일까 싶어 순간 웃음이 나왔다.
카니예의 어머니 돈다와 함께한 시간, 카니예는 영락없는 아들이다.
제이지에게 인정받았던 순간을 회상하며 어머니 앞에서 즐겁게 이야기를 풀어낸다. 어머니가 기억하는 좋은 벌스를 함께 부른다. 너무도 보기 좋은 모자였다.
자신감이 형성되기까지는 응원이 필요하다. ‘누군가 나를 열렬하게 지지하고 있다는 마음', 스스로 자존감과 자긍심을 키우기까지 이러한 든든함을 경험하고 안 하고의 차이는 꽤나 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니예의 어머니가 한 말 중에 뇌리에 강하게 꽂힌 말이 있었다.
그런 실력으로 이렇게 오랫동안 좋은 곡을 만들어 왔으면 보상이 따르게 돼 있어.
넌 뉴욕에 가서 성공할 팔자인 거야.
가장 중요한 건 네가 사랑하는 일을 하는 거지.
넌 정말 좋은 아이지만 자신감이 넘쳐서 겸손한 아이인데도 거만해 보일 때가 있어.
하지만 이걸 명심하렴. 거인이 거울 앞에 서면 아무것도 안 보이는 법이야.
“제가 좀 거만해 보인다는 거죠?”
아니, 그건 네 모습이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어.
스타로 태어난 사람은 스타로 살아갈 운명이야. 겉으로 티가 날 수밖에 없어.
겸손하게 굴라는 말이 아니고 네 타고난 성격과 네가 보이는 행동들은...
완벽하지만, 동시에 이 말을 명심하라는 거야. 땅에 발을 딛고 있으면서도 하늘 높은 곳에 존재할 수 있어.
‘거인이 거울 앞에 서면 아무 것도 안 보이는 법이다.’
다른 사람들 눈엔 그 거인이 보이거든
뒤이어 쿠디의 나레이션이 이어진다.
카니예의 자신감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 수 있었어요. 바로 아들을 향한 엄마의 믿음이었어요.
이 다큐멘터리는 카니예의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다큐멘터리 전체를 촬영하는 쿠디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다큐의 시작이 쿠디의 이야기로 시작되었고, 마지막도 쿠디로 마무리된다.
카니예 다큐멘터리인데, 촬영하는 사람의 스토리가 생각보다 많이 담겨있다는 점에 대해 분명 이유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나 뿐 아니라, 다큐를 본 모두가 궁금해했을 것이다.
“도대체 카니예의 무엇을 보고, 쿠디라는 사람은 카니예에게 모든걸 걸고 다큐를 촬영하기 시작했을까. 카니예의 무엇이 쿠디로 하여금 카니예를 위한 삶을 살게 만들었을까”
1화의 막바지에 카니예와 돈다의 이야기가 한번 더 나온다.
카니예가 얼마나 단단한 가정에서 자랐는지 알겠다며, 쿠디의 나레이션이 이어진다.
카니예와 돈다를 보며, 그리고 카니예의 어린시절을 보며 자기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는 쿠디.
공연 전에 쿠디는 그의 인생 출발점을 찾아가게 되었다고 말한다.
저도 부모님의 영향을 받았다는 걸 이제야 느낄 수 있었어요
아버지가 캠코더를 처음 사 온 날은 절대 잊지 못할 거예요.
그동안 있었던 모든 징후를 보니.. 확실히 알 수 있었어요.
이 일이 줄곧 내 사명이었음을.
그렇다, 쿠디는 카니예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 것이 아니다.
쿠디 또한 쿠디 본인을 위한 삶을 살고 있었다.
쿠디 또한 어린 시절부터 형성되어 온 그만의 배경으로, 그만의 확신,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생겼던 것이다.
본인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믿음 말이다.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두 가지 외침을 들은 기분이다.
봤지, 카니예도 저랬어.
세상 어느 누구도 카니예처럼 되지 말란 법은 없어. 자기 스스로 저정도 믿음만 있다면
봤지. 카니예는 저랬어.
저렇게 연속적으로 거절과 좌절을 경험하는데, 카니예는 스스로를 믿어. 그래서 지금의 카니예가 된 거지.
다시 돌아와 1화의 타이틀, 비전
‘프로듀서 겸 래퍼’는 카니예가 있기 전, 일반적으로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는 영역이었다.
자기확신은 그동안 모두가 못 보고 있던 무언가를 보이게 해준다. 물론 그 전에 실력은 기본이다.
비전이 설득력을 갖추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비전으로 다가가려면, 그 전에 ‘자기확신'과 ‘실력'에 있어 끊임없는 챌린징을 받아야 한다. 받고 또 받으며, 거절도 당하고, 스스로의 실력에 되묻는 시간도 가져보고, 반복된 실패에 좌절도 해봐야 한다.
이 과정에서 카니예는 자기확신을 지켜냈고, 실력은 더욱 늘었다. 그가 버텨낸 데에는 그만의 긍정성이 있었고, 스스로가 스스로를 높이 평가하고 좋아한다는 점을 가감없이 솔직하게 드러냈으며, 실력에 있어서는 스스로에게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고 발전해나갔다.
나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나?
무엇을 꿈꾸는지, 나의 한계를 어디까지 규정짓고 있는지 잘 알고 있나?
나 또한 그 한계를 낮게 두고 있지 않다. 카니예 덕분에 자신감을 얻었다.
다만 카니예만큼 아직 구체적으로 원하는 모습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지는 못한 것 같다.
무엇을 더 고민해야 할지 알게 되었다.
스스로를 믿고 자신있게 달려가는 카니예와 그 과정의 소중함을 실제 기록으로 남겨가는 쿠디.
내 인생에서 나는 조금 더 ‘카니예’스럽고 ‘쿠디’스러워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