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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강 Jan 17. 2024

내가 믿지 않는 옛말들

옛말 그른 것 없다더니

짚신도 짝이 있다.

정말 짚신 신고 다닐 때 생겨난 말일 것이다.

나의 어린 시절에는 한옥과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소위 적산 가옥이 혼재되어 있었다. 친구네 한옥에 놀러 가면 그나마 개량이 되어 대청마루가 마당으로 그대로 노출되어 있지 않고 유리 미닫이 문이 있었다.

그 유리문에는 맑은 투명유리에 조잡하지만 꽃이나 나비가 뿌연 간유리로 된 무늬가 있었다. 마루가 바닥에서 높아서 다듬이 돌 사이즈의 댓돌이 있었는데.

막내를 돌보던 맏언니도 어린 소녀라서  마루에서 내려오다 자칫 안고 있거나 업고 있던 아기를 댓돌에 떨어뜨려서 아이들이 꼽추가 되는 등 안전사고가 많았다.

댓돌 위에 가지런하게 놓여있던, 뽀얗게 닦은 흰 고무신은 봤을지언정 짚신은 못 보았다. 

 

짚신뿐 아니라 고무신이나 구두, 하다못해 운동화나 슬리퍼조차도 사이즈가 짝짝이면 신을 수가 없다.  '짚신도 짝이 있다'는 옛말은 결혼을 못한 노총각 노처녀들에게 아니, 그 부모들을 위로하는 말이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요즘은 짝을 못 찾는지, 안 맞는 건지 젊은이들이 원싱, 돌싱이 넘쳐나는 세상이 되었다. 40세가 넘은 자녀들이 결혼 생각도 안 하는 친구들도 주위에 수두룩한데 부모들조차도 아이들이 결혼을 안 하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며느리, 사위, 사돈의 팔촌까지 엮이는)는 말을 할 정도로 대범(?)해졌더라.

거기다가 내가 '미친 거 아냐? 짚신도 짝이 있다는데 어디에 다 있어, 걱정하지 마'라고 말하면 외계인 보는 아래위로 훑어본다.

말하는 사람이 당황할 정도로.

외모 지상주의, 물질 만능세상에 짝을 찾아 맞춰가기 힘들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의 폐해가 드러나는 세상의 높은 파고를 넘기엔 혼자도 감당하기 힘든데 둘이면 배가 된다고 생각하니 '짚신도 짝이 있다'라는 말은 진짜 진짜 옛말에 지나지 않는다.


태어날 때 제 복을 타고 난다.

무슨 복?

고생 복?

한국이 경쟁이 심하고 지고는 못 살며 남과의 비교의식이 강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정도가 심하지만 북미라고 해서 강도가 약할 뿐이지 인간은 다 거기서 거기이다.

그 옛말을 신봉해서인지 나의 어머니 세대는 6,7명이 기본이고 10명의 자녀를 두었다.

그러니 부모가 다 돌볼 수 없을뿐더러 큰애가 동생들을 키우고 맏이가 학업을 포기하고 돈을 벌어 동생들을 키워 낸 소녀 가장의 일화가 아주 오래 전의 일도 아니다.

 이젠 아기가 설령 복을 갖고 태어난다 해도 그 복을 부모들에게 나눠줄 판이다.

할머니, 할아버지 재력이나 노동력이  없으면 아기도 낳지 못할 판이니.

대부분 고학력 부모들이라 스마트하고 계산이 빨라서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지 마스터플랜을 세운뒤에 계획을 세우는데. 거기다가  애를 낳으라는 조언을 함부로 하기 힘든 세상이다.


벽에 무슨 칠을 할 때까지 살아야지.

이 말처럼 무시무시한 말이 또 있겠는가.

현대인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치매라는 퇴행성 질환에 대한 공포는 말도 못 한다.

정말 인간이 돈 앞에서 불평등하다고 하지만

치매 앞에서는 철저하게 평등하다.

그래서 부자들이 제일 걱정하는 것이 치매라고 한다. 자기가 피 땀 흘려 일군 사업이나 재산이 누구 소유인지도 모르게 되므로.

이 옛말은 노인들에게 오래 사시라는 덕담이었으나 지금은 악담이 되어버렸다.

벽에다 자신의 오물을 칠하고도 자각하지 못하는 병, 병이 쉬운 것이 어디 있겠냐마는 정말 노인이 되면서 이 병만은 걸리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자녀들도 간병에 모든 걸 갈아 넣고 종국에는  기관에 입원하면 학대로 이어질까 두려워서

본인만 모른 채 주변인들이 피폐해지면서 치를 떠는 무시무시한 병이다.

나처럼 외국에 살다가 한 친구는 친정엄마가 덜컥 치매에 걸렸다는 소식에 놀라서 통화를 하면 배우 '부르스 윌리스'처럼 실어증 때문에 엄마의 숨소리만 듣다가 통곡을 하게 되는 일도 종종 일어난다.

노화와 죽음은 피할 수 없지만 치매만큼은 모두에게 차례가 돌아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옛날에는 60세를 넘기기 힘들 뿐만 아니라 희귀하던 시대였다. 그래서 환갑을 넘기면서 다산으로 인한 골다공증으로 허리가 직각으로 구부러지고 이빨은 다 빠져서 쪼글쪼글하게  주름진 이빨 없는 빈 입의 잇몸으로 오물오물 음식을 먹던 할머니들.

옛날에는 치매라는 병명대신 노망이라고 했다. 하도 많이 듣는 치매는 여러 선입견과 지식으로 섬찟하게 들리지만 노망은 어떤 의미에서 장수의 상징이자 약간 귀여운 감도 없지 않게 나에겐 느껴졌었다. 어릴 때 모친도 실수를 하거나 깜빡하면 '노망 들었나 봐'하셨는데 그냥 나이가 들었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심각하지 않게.

 

'벽에 무슨 칠 할 때까지 사세요'하면

매를 버는 말을 넘어서 저주요 손절각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옛말 그른 것 없다는 말도 그른(안 맞는) 세상이 되었다.

요즘 할머니들은 이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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