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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강 Feb 19. 2024

30년 애정템

미국 냄새나는 것들

어릴 때 미국 물건들은 주로 남대문의 속칭 도깨비 시장에서 흘러나왔고 동네에서도 미제 물건 장수 아줌마들이 방문 판매를 했다.

보따리 속에는 피넛버터, 웨하스, 초콜릿, 샴푸, 엘리자베스 아덴 크림 등, 어떤 때는 소시지와 머쉬 멜로우도 있었다. 친정엄마는 베이콩(베이컨)을 좋아하시고

나는 소시지를 좋아했다. 지금도 여름에 바비큐를 하면 엘에이 갈비도 좋지만 무조건 소시지 한 개는 구워 먹어야 직성이 풀린다.


미국 구제 물품 중에 기름기가 없는 탈지분유를 뭉친 우유 덩이를 학교에서 나누어 주었다. 깨물어 먹으면 뽀드득 소리가 나며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던 맛.

초등학교에서는 서울우유 배달이 왔는데 주로 목장 우유라면서 신청한 아이들

인원수대로 배달 아저씨가 교실 문 안에 들여다 놓아주었다. 초록빛이 도는 유리병에 담긴 뽀얀 우유는 비릿하면서도 싱그러운 초원의 풀냄새가 나는 듯 부유한 맛이었다.

또한 미국의 원조로 밀가루가 컨테이너로 들어오던 때에 옥수수 가루도 들어왔는지 집이 어려운 아이들에게는 노르스름한 옥수수빵을 나누어 주었다.

그야말로 건강식이었으나 이상하게도 그 빵을 받는 아이들은 쭈뼛거리며 눈치를 보는 편이었다. 나도 그 빵 조각을 친구에게서 얻어 먹어 보았다. 구수하지만 깔깔하고 안 먹고 싶은 그런 묘한 질감의 퍽퍽한 맛이라니. 게다가 목까지 메었다.

전쟁 후에 기회를 잘 탄 사람은 돈을 가마니에 쓸어 담았다는데 대부분의 국민들은 먹고사는 일에 급급했던 시절이 있었다.

특히 저녁때에 밥 짓는 냄새와  김치찌개나 꽁치라도 연탄불에 석쇠구이라도 하면 동네의 좁은 골목에  시큼털털하지만  구수한 밥 냄새가 아로마처럼 퍼진다.

그때로부터 한 시간 후 정도면 전쟁고아든가 집 없는 어린아이들이 분유 깡통에 철사로 손잡이를 한 음식통을 들고 집집마다 다니면서 밥을 구걸하곤 했다.

더운밥은 언감생심 찬밥 덩이에 시래깃국

 한 국자라도 부어주면....

다리밑에 거적을 치고 식구들이 살다가 겨울에 어린애들은 동사하기도 했다.

지금은  사회보장제도나 노후대책에 대한 경각심으로 번영된 사회에 살고 있다. 그래도 가난 구제는 나라님도 못 한다고 일부 노인들이 폐지를 줍는다지만.

그 옛날에는 앵벌이도 많고 넝마주이들도 많았다.

힘 좋은  젊은이들이 나무등걸을 쪽쪽으로 엮은 커다란 망태기를 지고 기다란 집게로 휴지나 쓸만한 쓰레기를 등뒤로 휙휙 넘기며

생계를 이어갔나보다



전후에 태어난 나는 시대의 참상을 어려서 그다지 절실하게는 못 느끼고 그냥 사람 사는 것이 그런가 보다 했다. 그렇게 푸세식 변소의 냄새가 밴 옷을 입고 너나 할 것없이 다들 궁색하게.


미국에 오기 전에 한 신문 기사에서 어떤 기자가 월남전에 갔다가 미국에 출장으로 갔는데 초록색 잔디가 펼쳐진 주택의 개인 수영장에서 놀고 있는 미국 아이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그래서 결심한 것이 자기도 꼭 아이들은 미국에서 키우겠다고 했다는데.

미국이 50,60년대는 잘 나가고 여유로운 때였으니 그럴 만도 했겠지.

내가 살았던 90년대 초에는 그 정도로 여유가 있진 않았고 서부에는 히스패닉계의 밀물 때문에 불법이민자들의 천국이 되어있었다.

 내가 머물던 샌디에이고는 해군기지가 있어서 미군과 결혼한 한인 여성이 많았다.

그들과 알게 되면서 언젠가 미군 남편에게서 버림받지 않을까 항상 불안해하고 정착하지 못하고 고민하는 것을 보았다.

또한 미국인 동네 아줌마들은 다 일을 하고 있어서 내가 전업주부인 것에 다들 놀라는 것에 오히려 내가 깜짝 놀라곤 했다.


나는  생필품은 그저 일반적인 것을 쓰는 편이다.

한국에서 쓰던 물건을 미국에서 찾을 수는 없었지만 미제 장수 아줌마 보따리에서 나왔던 물건들을 흔하게 보고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것도 대용량에다 개체 자체도 왜 그리 큰지 입이 떡 벌어졌다.

 피자와 도넛은  상상하기도 싫을 정도로 짜고 달았다.

햄버거는 짜고 시고 너무 컸다.

그렇게 먹는 미국인들이 살이 안 찌는 것 불가능하리만치.



미국에서 처음 한국보다 좋다고 느낀 것이 비누이다. 그 당시 한국 비누는 잘 무르고 향도 구리무(크림의 일본어)의 탁하고 진한 냄새가 나서 이상하게 역겨웠다.

 차라리 무궁화표 빨랫비누는  거품도 잘 나서 빨래판에서 빨래할 때 시원하기라도 했는데.

그래서 발견한 비누가

Yadley 브랜드의 English Lavender이다.

향이 은은하게 피부에 남아있고 다 쓸 때까지 절대 무르지가 않는 가성비 최강이다.

미국 하면 미제 초콜릿이 아니겠는가.

그중에서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Hershey에서 나오는 초콜릿 먹는 것이 어릴

때의 꿈을 이루어 준 미국이요, 캐나다이다.

한국처럼 같은 브랜드의 수많은 이름으로 다양한 맛과 취향을 만족시키려는 것과는 담을 쌓은 한국밖의 다른 나라들의 특성.

디자인도 안 바꿔요, 종류도 단 몇 가지로 초지일관 버티는데 지치지도 않는다

어릴 때 시리얼이란 것을 '귀지 과자'라고 불렀다. 따뜻한 우유에 풀면 후루룩 풀리면서 풀죽처럼 떠먹을 수 있었다.

'라이스 크리스피'는 '밥풀과자'라고.

 한국에서 한창 유행하던 '3.4 우유'가  미국에선 진한 3%, 인 것 같고 2%, skim milk(탈지우유)등으로 분류되어 있어서 골라서 마시면 된다. 시리얼은 영국에서 아이들에게 우유를 먹이기 위해서 달콤한 곡물류를 만들었다고도 한다.

사람 입맛이 어찌 간사한지 처음에는 이가 시릴 정도로 달디단 스낵들을 못 먹는다고 난리를 치다가 아주 매력적인 시리얼을 발견했는데 

그것도 무지 단

'Cinnamon  toast crunch'라는 것이었다.

특히 시나몬이 섞여서 우유에 부으면 계핏가루가 살짝 퍼지면서 고소하고 바삭한 시리얼을 30년간 이따금씩 먹고 있다.

아기들도 첫 이유식이 중요하다는데

외국생활 처음에 영접한 첫정을 아직도 이어가고 있다. 순정이라기보다는 미국과 캐나다가 거의 같은 물건과 같은 식품을 공유하고 있는 자칭 형제 나라라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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