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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밥통

몸도 마음도

by 그레이스 강

소화가 시원찮으니 외식이 겁난다.

집에서 주야장천 한식만 먹는데도 친구들이랑 점심 먹자 하면 한식당을 찾는다.

파스타나 양식은 공기 자체가 느끼한 북미에서 절대 사절.

뱃살이 두둑한 나는 잡식형 인간이라 뭐든지 잘 먹는 줄 알았다.

단 생선회와 국물만 빼고.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음식에 들어간 파, 순대는 먹어도 얼큰한 순댓국, 돼지고기, 고등어, 버섯, 마라탕, 불닭류 등등을 못 먹는다. 닭고기도 쇠고기도 첫 입에 육 비린내가 나면 못 먹을 뿐만 아니라 조리법을 바꾸기보다 늘 구입하던 장소를 바꿔본다.

안 먹고 못 먹는 식재료도 은근히 많다.

그러다 보니 냄새와 식자재, 조미료에 민감하다는 것을 알고 보니 더더욱 외식을 하기가 싫어졌다. MSG의 제왕인 월남국수, 비가 뿌리고 우울한 날에는 빵대신 월남국수인데 먹고 나면 입이 마르고 졸립다.

아귀찜이라고 나오면 아귀 생선 자체도 살 대신 뼈가 많은데도 생선은 몇 덩어리 안 들어가고 야채에다 맨 위에는 콩나물이 산을 이룬 콩나물찜인데 맵기는 또 엽기적이다. 근래 모든 음식이 단짠단짠 일변도로 변해서 음식들이 개성 없이 달고 짜기만 해서 매력도 없어지던 차에.

외식의 민폐인 팁문화도 한 자락 거들고 고공행진하는 가격 상승 때문에 짜증이 난다.

언제부터인지 친구끼리도 밥 대신 2시쯤 만나서 커피만 마시게 되었다.

외부 음식을 먹고 집에 오면 뱃속이 부글부글하고 가스가 차고 설사를 하곤 해서.

식사 전에 위산 억제약을 먹고 식후에는 소화제를 먹어야 되는 슬픈....

돌도 씹어먹는 나이에 이민을 와서 소처럼 먹는 아들들이랑 고기 바베큐를 주말마다 하고 느글거리는 중국뷔페를 엄청나게 드나들었던 옛날이여~~~



카페인에 예민해서 디카페인 커피를 늘 마시는데 요즘엔 잠이 빨리 안 드는 밤에 생각해 보면 낮에 커피, 디카페인 커피를 마셔서일까?

디카페인 커피도 완전무결하게 카페인을 제거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면 급 각성이 되어 잠 안 오는 효과가 생긴다.

그렇다고 차는 진짜 아무 맛도 감흥, 감성도 없어서 쳐다보지도 않는다.

소화도 더디고 배가 꾸룩 거려도 '얼죽아'라서

아아를 마시니 나의 위장은 영원히 개선될 수가 없다.

사람이 살기가 힘들다, 힘들다 하는 이유는 가장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다 선택의 결과물인데 습관이라는 옹고집이 자리 잡고 있어서이다.

습관이 무서운 이유는 그것이 나쁘다고 알아도 고치는 것은 더 어렵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몇십 년 이어온 몸에 밴 습득력이 이성을 이겨버리니 도리가 없다.

아집은 더 세어지고 홀몬 대사는 느려져서 이상한 발상까지 하니(민폐가 되는) 답이 없다.

그것이 노화의 징표라면 할 말은 없다만.

옛날 어른들이 일 머리가 없고 아둔하며 버벅대는 애들한테 바보를 이북 사투리로 '밥통'이라고 했다.

나의 밥통인 위장도 시들시들하고 머리도

시원치가 않으니 그야말로 '밥통'이 되어가나 보다. 단어도 빨리빨리 안 떠 오르고 어제 생각 안 났던 것이 오늘 생각나며 그 잘하던 멀티 태스킹도 우왕좌왕.

그래도 나가면 옷 못 입는다는 소리는 안 들었는데( 단 캐나다에서 캐주얼로) 이제는 작년에 입던 옷을 입으면 뼈가 뒤틀렸는지 이~상하게 옷이 안 맞고 남의 옷 빌려 입은 느낌이 나서 기분이 확 잡친다. 뭘 입어도 고운 나이가 훨~ 지나고 뭘 입어도 미운 나이가 되었으니.


세상에 나 같이 사람 좋아하는 외향인 있으면 나와보라 할 정도였던 내가 쓸데없이 위축되고 나가기가 싫어질 줄이야.

유튜브도 발맞추어 '노년에는 혼자가 좋다'라는 쇼츠가 많으니 장단이 잘 맞네.

영리하고 민첩하라고 지어진 나의 본명과는 거리가 멀게 둔중하고 무기력하게 몸도 마음도 늙어가는 '밥통'과 더불어 노후를 보내기가 싫은데 어쩌지?


학교 다닐 때는 하도 나가 돌아치는 바람에 식구들이 내 얼굴을 잊어버리겠다고 했는데

요즘은 안 어울리는 집콕 생활을 하다 보니

노래를 듣다가 Teddy Swims의 노래에 꽂혀서 흥얼거리고 있다.

I said die for you baby

But I can't take this pain no more


That ain't for me

That ain't for me~~~


그의 곡 The door의 한 소절이지만

정말 그의 미쳐버린 가창력의 가사가 이 몸과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은 엉뚱한 해석을 해 본다. 몇 십 년 이민 생활에도 영어는 안 늘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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