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키우며 육아일기 한번 안 썼던 내가 너에 대한 기록을 남기기로 결정한 건 어제의 사건 때문이었다.
아직도 어제 일만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려 견딜 수가 없다.
너는 정말 언제나처럼 태평하게 자고 있구나..
어제는 에어컨디셔너를 새로 교체하는 큰 공사가 있는 날이었지.
그리고 너는 생일이었다. 열일곱 살 생일.. 너는 언제 가도 이상할 것 없는 나이를 가지게 된 고양이가 되었다.
식구들은 아침에 너를 만나면 머리를 쓰다듬으며 생일을 축하한다고 인사를 건넸고, 너는 언제나 너만 보면 좋아서 웃는 식구들이니 그날이 그날이지 뭐가 그리 다른 날이냐 하는 얼굴이었다.
오전에 공사하는 아저씨들이 큰 사다리를 들고 오르락내리락 거리며 쿵쿵 거리는 큰 소리가 나도 너는 원래 즐겨 앉아있는 소파에 앉아 미동도 하지 않고 자고 있었다. 정말 대단해 보였다. 예전에 너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대범하고 용기 있더라. 역시 나이를 헛으로 먹지 않았구나 싶었다.
그래서 나는 신경을 좀 덜 썼다. 아저씨들이 왔다 갔다 하시느라 문을 열어둘 수도 있으니 고양이 조심하라고 했지만 너의 그 아랑곳하지 않는 태도에 나 역시 건방이 들었었던 것 같다.
나는 식탁에 앉아 이것저것 하고 있었고 너는 보이지 않았으나 시끄러워서 방에 들어가 자고 있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남편이 들어와 '도도 어딨 어?'라고 물었고 '방에서 자'라고 대답했고 '방에 없는데?'라는 대답이 들려왔고 느릿한 걸음으로 너를 찾기 시작했다. 약간 귀찮다는 듯이..
너는 없더라.. 한번 더 조금 자세히 찾았으나 여전히 없었다. 약간 식은땀이 나면서 불길한 생각이 들기 시작하니 걷잡을 수가 없었다.
남편과 나는 마당으로 나갔다. 네가 좋아하는 강아지 풀이 있는 곳으로 가서 뱀 나올 거 같이 우거진 강아지 풀숲을 다 뒤져도 너는 없었다.
호기심에 기웃거리면 냉큼 안아서 집 안으로 들여놨었던 펜스 바깥으로 나간 게 틀림없다는 판단에 사다리를 타고 펜스 바깥으로 나가 너를 부르기 시작했다. 높은 사다리를 타고 펜스를 넘어가느라 다리가 덜덜 떨렸다. 날씨는 오늘따라 환장할 정도의 불볕더위였고 펜스 바깥은 야생 풀들과 가파른 좁은 길 때문에 밑으로 굴러 떨어질 듯 겁이 났으나, 내가 문제가 아니었다.
너를 오늘 이후로 영영 못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나의 남은 날들이 무서웠다.
17년이었다. 너와 살아온 세월이 17년이었다. 이럴 수는 없었다. 이렇게 허망하게 헤어질 수는 없었다.
그리고 오늘은 하필 너의 생일이었다.
집에서 키우던 동물이 죽을 때가 되면 슬며시 집을 나가 혼자 어딘가로 가서 죽는다던데.. 그런 생각이 났다.
요즘 동네에 어슬렁 거리던 코요테들이 생각이 났고 (코요테 들은 가죽이나 털은 안 먹기 때문에 속에 살만 쏙 뺴먹고 털가죽만 그대로 남겨둔다고 한다. 뒷마당에서 발견된 식구나 다름없는 반려견이나 반려묘의 남겨진 가죽을 보고 주인들이 기절했다는 소리를 여러 번 들었었다) 초저녁이면 나타나는 머리통만 시뻘건 붉은 머리 독수리들이 채간 건 아닌지.. 너를 찾아 헤매는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