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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블루 Jul 23. 2024

3. 그래도 나는 네가 이겼으면 좋겠다.

너는 참 어지간히도 모모를 싫어한다.


너를 키우기 시작하고 5년 후 아니 한 4년째부터 나는 슬슬 아기 고양이가 탐이 났다.

첫째를 낳아 신기하고 신기해 애지중지 키우다가 그 첫째 아이가 좀 자라고 나면, 그리고 아기 키우기가 익숙해져 몸이 편해지면  다시 갓난아기가 그리워지는 엄마들과 같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둘쨰를 가져야겠다고 마음을 먹는 형국과 같다고 해야 할까?

사실은 엄마가 갓난아기를 갖고 싶으면서 동생이 생기면 네가 심심하지 않아 얼마나 좋냐고 첫째에게 억지로 예스를 하라고 대답을 강요하는 분위기와 같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나는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네가 동생을 좋아할 거라고, 동생을 데려오면 뛸뜻이 기뻐할 거라고 자신하며 모모를 데려왔을까?

뭐 아예 온전히 내 생각만이 아니었다고 할 수는 있다. 너는 이상하게 다른 집 강아지가 와도 그리 싫어하지 않았고, 친한 지인이 몇 주씩 맡기고 간 고양이와도 붙어자며 나를 흐뭇하게 했으니까.. (다른 집 아이와 플레이 데이를 할 때 내 아이가 참 너그럽고 인내심도 뛰어나 다른 엄마들의 부러움을 사며 우쭐대는 느낌이랑 같아서 나도 깜짝 놀랐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너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아이들은 고작해야 몇 주 정도 함께 지내면 그만인 것이고, 아무리 다른 집 아이가 예쁜 짓을 해도 자기 아이만 하겠냐는 것을 너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너는 모모는 다르다는 것을... 모모를 데려와 케이지를 집안에 내려놓는 순간부터 알았던 것이다.

이 녀석은 절대로 집에 안 돌아갈 것이라는 것을.. 다 놀아서  더 이상 놀 것이 없는데도 집에 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이제 혼자서 누워 뒹굴 거리고 싶어도 절대로 집에 안 갈 것이라는 것을.. 너의 집사라는 저 여자를 이제 다시는 너 혼자 독차지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너는 알았던 것이다.


너는 모모가 온 날부터 토하기 시작했고, 끝내는 몸 한가운데 원형탈모가 생겨 분홍색 속 살이 동그렇게 드러날 때까지 구토를 멈추지 않았다. 한 3주쯤 걸린 것 같다. 네가 토를 멈추고, 드러난 속살에 다시 솜털이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


너는 모모의 목덜미를 질질 끌고 구석으로 가 던져 놓기도 하고, 겉으로는 장난이라고 하며 물어뜯는데, 감정이 너무 실려서 모모가 죽는다고 비명을 지르면 그제야 슬그머니 놔주기도 하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지냈다.

그 세월이 12년이다.

모모는 너를 보면 좋아서 벌써 온몸을 너에게 바싹 기대며 꼬리를 말아 너를 감싸 안고 그르렁 대는데, 한 30초쯤 참아주다가 홱 가버리는 너를 보면 진짜 매정하다는 생각이 든다.

12년이면 좀 예뻐해 줄 만하지 않을까? 네가 그렇게 좋다는데...

모모의 눈에는 너만 보이는데... 모모의 눈에 들어있는 하트를 너만 못 보는 것이냐?


그래도 어쩌다 모모가 옷장에 들어가 갇히기라도 하면 너는 그 앞에 두 발을 모으고 가만히 앉아 기다리곤 했다. 그래도 걱정이 되기는 하나보다. 너의 몸짓을 보고 내가 옷장 문을 열어 모모를 발견하게 되는 걸 보면..

한 번은 잠그는 걸 잊어버린 현관문이 바람에 열려 너와 모모가 밖에 나갔고 다시 바람에 문이 닫히는 바람에 집안으로 못 들어온 날이 있었다.. 그것도 모르고 외출했다 돌아온 나는 현관문이 왜 이러지 하고 홱 열었다가 기절을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아기 고양이랑 그 철부지 잃어버릴까 봐 온몸으로 모모를 막고 있는 너를 보고..


이제는 모모도 지기만 하지는 않더라.

네가 아무래도 나이가 좀 있고 보니.. 레슬링을 할 때 항상 밑에 깔리는 게 모모였는데 가끔은 네가 깔리기도 하더라... 그래도 노익장은 아직 안 죽었다고 다시 판세를 뒤집어 있는 힘을 다해 (솔직히 이건 좀 무식하다. 놀자고 하는데 죽자고 달려드는 걸 보면) 모모를 밑에 깔고 넓적다리에 너의 송곳니를 박아 넣는 것을 보면..


그래도 나는 네가 이기는 게 좋다.. 첫 정이 무섭긴 하다.

모모가 너를 이기려고 하면 나는 슬그머니 헛기침을 하면서 '어허 형아한테 왜 이래'  하는 걸 보면..


끝까지 이기다가 가렴 도도야.. 너의 힘 빠진 모습을 보는 것이 참 힘들 것 같아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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