ㅎㅏㄴㅈㅏㄴㄷㅜㅈㅏㄴㅅㅔㅈㅏㄴ
유난히 허기진 하루가 있다. 출근하자마자 나를 둘러싼 공기의 두께를 감각하는 날 말이다.
'아...! 무슨 일이 생겼구나.'
덜컹 내려앉은 마음을 부여잡고, 평소처럼 아침 인사를 건넨다. 모두가 태연을 가장하지만, 경직된 얼굴과 가라앉은 어조가 눈과 귀에 콕콕 들어와 박힌다. 순간, 나는 '그녀'를 찾아 눈을 돌린다. 발이 넓고 혀가 긴 그녀는 이 분위기의 정체를 누구보다 빨리 알고 있을 것이다. 우선, 실태파악이 급선무다.
지금은 말할 때가 아닌가 보다. 눈짓을 보아하니 적어도 나 때문은 아니다. 그럼 뭐 때문인가..... 모르겠다. 예고 없이 깔리는 살얼음판은 주기적으로 겪지만서도 겪을 때마다 당황스럽다. 그냥 지금처럼 잡히지 않는 무형의 신호를 잡기 위해 안테나를 바짝 세워야 하는 상황이 피곤한 것이다. 가뜩이나 업무도 벅찬데 발 밑까지 미끄러우면 어쩌란 말인가. 한동안 잠잠하다 했지... 출근한 지 30분도 안 됐는데, 벌써 집에 가고 싶다.
불유쾌한 마음을 억누르는데 온 힘을 쏟아버린 날에는 집으로 돌아갈 여유 체력이 없다. 밀려오는 허기까지 감당할 자신이 없는 나는 헛헛한 속을 채워 줄 무언가를 찾아 나선다. 바로 맥주다.
골든타임이 필요하다. 거품이 풍성한 황금빛 라거를 쭈욱- 들이켜며 느끼는 해방감! 목구멍을 톡톡 치는 탄산의 청량함! 기름지고, 뜨끈한 안주를 차곡차곡 쌓아 내릴 때의 안도감이란.... 비록 내일의 태양이 다시 떠오를지언정 오늘의 해는 졌다는 사실! 이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첫 잔을 단숨에 비우고 나니 입 안이 깔끔해진다. 갑갑했던 속도 좀 뚫리는 것 같다. 갖은 말소리로 뒤범벅이었던 정신도 이제야 제자리를 찾는다. 눈앞이 맑아지고 나서야 젓가락을 집어든다. 메뉴는 그때그때 다르지만, 보통 바(bar) 테이블이 있는 식당으로 고른다. 종일 곤두서있던 안테나를 접어 넣고, 오롯이 맥주만 마시고 싶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금칠이 시작된다. 에어팟을 낀 채로 유튜브를 보거나 창 밖의 행인들을 구경해도 좋다. 초밥 한 점에 맥주 두 모금, 입 안 가득 탱탱한 면발과 맥주 한 모금. 바삭한 튀김을 씹고, 구운 토마토를 베어 물고, 매콤한 새우를 어금니 사이에 끼워넣으면 기분 좋은 풍미가 취기와 함께 찾아온다. 딱 한 잔만 더 마실까...?
배 부르다. 노곤하고, 알딸딸하다. 그래, 나는 이렇게 맛있는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근로자가 된 것이다. 내 앞가림을 하기 위해 시작한 생활이고,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한 이유도 퇴근을 했기 때문이다. 골든타임은 하루의 끝에 혹은 노동의 틈에 자리하고 있어야 의미가 있다. 고생 끝에 오는 낙처럼.
숙면하고 열일하자. 자기 밥벌이만 잘해도 갓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