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줘 제주살이
“하,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
될 대로 돼라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제주일년살이를 결정했다. 흐려진 눈의 초점과 함께 내 존재도 사라진 것 같았다. 아니, 가능만 하다면 차라리 진짜 사라지고 싶었다. 마음의 냉기가 신체의 온기마저 빼앗던 찰나, 단단한 돌덩이가 요란하게 날아와 머리통을 강타했다.
“엄마엄마엄마엄마! 심심해! 놀아줘!“
무방비 상태로 힘 없이 앉아있던 나는 그대로 쓰러져 아이와 함께 바닥을 나뒹굴었다. 숨이 멎는 고통을 느끼며 흐렸던 시야가 돌아왔다. 얼굴 한가득 장난기를 뿜으며 킥킥거리고 있는 아이가 보였다. 그러나 몸을 일으켜 세울 틈은 없었다. 채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엄마 위에 올라탄 아이가 레슬링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래, 나는 엄마다. 사색에 잠길 시간조차도 사치인 아들 엄마.
한편 내 인생 가장 처절했던 시간을 버티게 해 준 것도 바로 이 해맑음이었다. 세상의 모든 빛을 똘똘 뭉쳐놓은 듯 눈부신 아이의 생명력이 오늘 우리를 제주에 있게 했다. 평생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제주살이의 첫 동기부터 말이다.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아이를 제주도에서 키우는 건데요...”
남편은 여행과 도전을 좋아했다. 우리나라 제주도를 특히 좋아해서, 매 가족 여행 때마다 제주 이주를 막연히 노래하곤 했다. 불과 두어 달 전에도. 그래, 꿈꾸는 건 자유에 공짜가 아닌가! 평소처럼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호응하는 나를 쫓는 남편의 진지한 시선을 느꼈다. 찰나의 머뭇거림과 분위기가 어쩐지 평소와 달랐다. 의아한 내 두 눈이 남편의 입에 고정되었을 때, 그는 짐짓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조곤조곤 이어 말했다.
“그런데 나는 돈을 벌어야 하잖아요? 그래야 우리 가족이 살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유진 씨가 내 대신 가줄래요? 마침 어린이집도 폐원됐으니 아이가 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1년 만이라도요. 그동안 나도 내 몸에만 신경 쓰고 싶어요. 부탁해요.“
나는 일상에서 오는 안정감을 좋아했다. 남편 성화에 못 이긴 가족 여행만으로도 버거운데, 최소 1년 동안 집을 떠나라니? 그것도 나라 끝 외딴섬으로? 무엇보다 아이와 단둘이 가라고? 별거를 하자는 말인가?
목젖까지 차오른 격한 감정이 욱! 뿜어져 나오려던 그 순간, 나는 달싹이는 입술을 꾹 닫고 침을 꿀꺽 삼켰다. 대신 길고 깊은 숨을 내뱉었다. 목 끝에 걸린 그것들을 애써 삼킬 수밖에 없었다. 지난 1년 동안 생사를 오가며 크게 앓다가 이제 겨우 컨디션을 회복한 남편이었다. 그런 ‘부탁’을 어찌 거절할 수 있겠는가? 언감생심 감히.
제주에 연고는커녕 건너 아는 사람조차 단 한 명이 없었다. 몇몇 친구와 친척들에게 동행 의사를 물었지만, 갑작스러운 제안에 아연실색 우리를 향한 걱정과 염려를 내비칠 뿐이었다. 결국 미취학 아동과 내향인 엄마, 단 둘만의 제주일년살이가 확정됐다.
그 옛날, 귀양살이 떠나던 이들의 기분이 이랬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