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지 모르게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는 날이 있다. 앞 사람의 걸음 속도, 만원 전차, 유독 기대는 것 같은 타인과 불쾌한 냄새까지. 그런 날은 악마가 조롱이라도 하듯 안 좋은 일이 겹쳐서 다가온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연착되는 전차의 출입문이 고장나고, 선로 시스템에 오류가 생긴다. 전장연 시위에 뜬금없는 곳에 멈춘 전차 안에서 타들어 가는 속은 좀처럼 진화되지 않는다. 사소한 말에도 몹시 언짢아지고, 그것을 인내하려고 애쓰는 나는 정신적·신체적 긴장도가 극에 달한다. 날카로운 말에 예리함을 더하고, 무뚝뚝한 감정에 시멘트를 붓는다. 막힌 귀에 귀마개를 착용하고, 굳게 닫힌 입에 마스크를 덧씌운다.
김경일 심리학 박사는 오늘 하루 타인에게 얼마나 관대했는지를 돌아보라고 조언한다. 자고 일어난 시간을 기록하고 그날의 관대함을 비교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보통 22시에 자서 6시에 일어난다. 가끔 23시를 넘기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일어나는 시간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기록해 본 결과 보통 7시간 이상 잤을 때, 타인에게 가장 관대했다. 돌아보면 유난히 삐딱했던 날은 항상 잠에 들지 못한 다음 날이었다. 잠이 부족하면 웃어넘길 것도 생채기를 남긴다. 거듭된 수면 부족은 상처에 소금을 붓는 것과 다름없다. 그래서 잠이 부족한 다음 날은 만사 제쳐두고 무조건 취침을 우선하기로 했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들 듯, 맑은 정신이 유지되어야 관대한 내가 될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