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관관계의 오류에 대해서 말할 때 가장 자주 거론되는 것은, 아이스크림 판매량의 상승과 익사자 증가에 대한 연결인식이다. 둘 사이에 여름이라는 변수를 배제하면 생기는 잘못된 결과다. 이런 일은 인간 사회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게임과 청소년의 폭력성이라는 터무니없는 실험으로 이어진다. 한 기자는 피시방 전력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실험을 강행했다. 실험은 무엇도 증명하지 못한 채 사회인들에게 뭇매를 맞고,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는 명확하게 나누어 생각하기 어렵다. 이것에 일생을 바쳐 연구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니까. 박사가 학술적으론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일반인의 사회생활에선 그럴 수 없다. 개개인이 일상에서 매번 숨은 변수를 찾아내 고뇌하긴 쉽지 않다.
정확하게 구분할 수 없더라도 상관관계인지, 인과관계인지를 분석하는 태도는 필요하다. 인식 오류는 대체로 상관관계의 오류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인과관계로 치부하는 태도는 차별과 혐오를 자아낸다. 진중한 생각은 품이 많이 들고, 체력 소모가 상당해서 차별과 혐오를 빅데이터로 치부하는 사람도 많다. 예를 들어서, 동남아의 가난과 흑인의 범죄율, 유대인의 지식과 동양인의 수학능력이 그렇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맞잖아?”
흑인의 폭력성에 대해서 언급할 때 빈곤, 차별, 사회적 구조를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동남아의 가난은 지리적 여건과 식민지 역사 그리고 이념 등 더 복잡한 변수가 많다. 동양인의 천편일률적인 교육은 상대적으로 수학을 잘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그중 가장 교육열이 심한 대한민국엔 놀랍게도 수포자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수학을 못 하는 사람도 많다. 서로 교육 체제가 다를 뿐, 동양인은 반드시 수학을 잘한다는 인식은 편견이다. 유대인의 경제관념은 분명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러나 그것이 전체적인 지식과 지혜를 대변하진 않는다.
모든 인종은 각기 다른 차별을 받는다. 세상에서 인종 차별이 없어지길 기대하는 것은 독재 없는 공산주의를 바라는 것과 같다. 세계인의 시선이 바뀌길 기대하지 않는다. 그저 나라도 열린 마음으로 세계를 직시하겠다고 다짐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