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풀리면서 오래간만에 장소를 찾는 데이트를 했다. 삼청동 거리를 걷고, 서점을 들렀다가 르 꼬르동 블루 출신의 파티시에가 운영하는 디저트 카페도 찾았다. 내친김에 삼청동에서 서울역까지 걸어서 이동했다. 시간의 때가 묻은 장소를 거닐고 방문하면, 탁해진 영혼이 맑아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삼청동엔 여러 박물관과 전시회장이 존재하는데, 무료 또는 아주 적은 금액으로 감상할 수 있다. 마르크 오제에 의하면 비용이 있어야만 이용할 수 있는 곳은 비장소다. 즉, 어떤 역사나 정체성이 담긴 공간을 금전적 소비 없이 누릴 수 있는 곳을 제외한 모든 곳이 비장소인 것이다. 넓게 보면 주거 공간도 비장소라고 할 수 있다. 월세, 전세, 보증금, 대출금 등이 매달 소모되기 때문이다. 물론, 비용 소모가 없더라도 인터넷 사이트와 SNS 플랫폼도 비장소로 볼 수 있다. 장소와 비장소의 개념은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있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누군가는 그곳을 장소로 인식하고, 또 다른 사람은 비장소로 인지할 수도 있다.
내가 생각하는 비장소는 과하게 시끄러우면서 동시에 탁하고, 환기가 어려운 공간이다. 대표적으로 클럽과 피시방, 노래방 등이 있다. 불법이 산재한 공간도 마찬가지다. 오랜 역사를 자랑해도, 불법적인 공간에선 영감을 얻을 수 없다. 그런 곳에선 평안을 찾지 못한다. 이미 불법이라는 죄악으로 물들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장소로 인식하는 공간엔 불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내 집, 삼청동과 안국동 등 역사와 옛것의 향취가 존재하는 거리, 우리의 추억이 잔류하고 있는 모든 곳이 바로 장소다.
마르크 오제는 비장소를 부정적으로만 해석하지 않았다. 그저, 장소와 비장소의 구분을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은 천지 차이라는 것을 해설한다. 스스로 어떤 공간이 장소이며, 비장소인지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사유의 폭은 넓어진다. 장소와 비장소 어디에서 더 큰 행복을 얻는가. 그 구분은 어떠한 고뇌에서 비롯되었나. 조금 더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한 아주 작은 구분의 힘이 필요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