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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니 Oct 26. 2022

당신 귓가에 오아시스

아이돌은 물론 7080 노래가 LP로 발매될 때마다 완판 행렬이다. 메마른 일상에 잠시나마 오아시스가 되어주는 음악의 인기 비결.



불과 얼마 전까지 촌스럽다고 여겨지던 옛것이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끌어올림’당하고 있다. 여기저기서 MZ시대가 도래했다고 야단법석인데, 옛것을 열렬히 원하는 움직임이라니. 그런데 아이러니한 점은 복고 열풍 중심에 MZ세대가 있다는 것. 40대 이상, 즉 X세대 이후 사람들에겐 ‘인간은 추억을 먹고 사는 존재’, ‘좋은 것만 기억하는 행위를 통해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므두셀라 증후군’이란 분석이 통용되겠지만, 이는 MZ세대에겐 어불성설일 터. 그들에게 옛것이란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생경한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을 잘 보여주는 건 2022년 가요 문화다. 한마디로 레트로와 뉴트로가 뒤섞인 요지경 세상이랄까. 첫 번째 이유는 소위 4세대 아이돌이라 부르는 뉴진스와 아이브의 출현. 베이비복스, 핑클, S.E.S. 등 1세대 아이돌을 연상시키는 그들의 복고풍 비트와 몸짓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뉴진스와 아이브 무대를 본 평론가들은 “X세대 이후 사람들에겐 향수를, MZ세대에겐 참신함을 선사한다”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LP 붐의 신호탄을 쏜 아이유의 앨범 <꽃갈피>.‘한정’이라는 꼬리표가 붙으면서 가치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두 번째 이유는 LP 레코드판의 인기. 기실 LP 붐의 신호탄을 쏜 건 2014년 아이유가 발매한 앨범 <꽃갈피>다. 삼촌 팬을 타깃으로 한 음반에 ‘한정’이라는 꼬리표가 붙으면서 가치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이후 BTS·백예린·블랙핑크·태연 등이 잇달아 LP 음반을 발표, LP를 향한 대중의 관심은 여전히 뜨겁다. 예스24에 따르면 우리나라 LP 판매는 2017년부터 매년 60~70%씩 증가하는 추세이며, 2021년에는 20~30대가 LP 구매자의 약 40%를 차지한다. 국내 최대 음반 축제인 ‘서울레코드페어’를 기획한 김밥레코즈 김영혁 대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2021년 미국에서 전 세계 LP 소비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응답자의 40%가 소장하기 위해 LP를 구매한다고 대답했어요. 음악 감상이 1순위였던 1980~1990년대와 비교할 때 트렌드가 완전히 달라진 거죠. 요즘은 비주얼 시대잖아요. 뮤지션 사진과 아트워크를 LP 재킷에 크게 넣을 수 있어 굿즈 성격이 강해졌습니다. 2022년의 20~30대는 CD조차 익숙한 세대가 아니에요. 그런데도 이를 바탕으로 점점 LP에 익숙해지면 무게추가 듣는 일로 옮겨가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오로지 아이돌 음악 LP만 회자하는 건 아니다. 되레 7080 노래가 힙하다는 MZ세대의 반응도 있다. 심지어 1960년대 남진과 나훈아를 발굴한 오아시스레코드의 리마스터링 앨범 <오아시스 걸작선>은 출시와 함께 매진 행렬이다. “2013년부터 마스터 테이프(녹음 원본) 6000여 장을 일일이 듣고 디지털로 변환했어요. 미련해 보이겠지만, 저희가 아니면 주옥같은 노래가 곧 사라질 것이라는 두려움과 책임감이 있었거든요. 이렇게 새 생명을 얻은 명곡으로 LP 마스터링을 진행 중이에요.” 오아시스레코드 김용욱 대표의 말이다. 이어서 7080 노래가 MZ세대에게 화제가 되는 상황에 관해서는 “클럽에서 7080 노래를 자주 트는 DJ 소울스케이프, 타이거디스코와 나눈 대화가 떠오르네요. MZ세대에게 7080 노래는 신문물이라고. 옛날 노래가 체화된 50대 초반의 제겐 평범한 음악인데, 그들은 아닌 겁니다”라고 분석했다.


국내 최대 음반 축제인 ‘서울레코드페어’ 풍경.
신문박물관에서 진행 중인 <롱플레잉>. LP를 통해 1960~70년대 대중문화의 시대상을 조명할 수 있다.


현재 신문박물관에서는 이러한 LP 문화를 톺아볼 수 있는 전시 <롱플레잉>(~10월 9일)이 열리고 있다. LP를 통해 1960~1970년대 대중문화의 시대상을 조명하기 위해 기획했다. 최근 들어 자주 보이는 그래픽 패턴과 귓가에 들리는 노래가 실은 이미 50년 전에 빛을 보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 퍽 흥미롭다. <롱플레잉>을 기획한 박세희 연구원은 “옛것에 대한 향수나 흔적을 찾기보다는 동시대에 없는 새로운 문화를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해요”라고 전시 의의를 밝혔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새로운 문화의 발견’은 아직 답보 상태. ‘굿즈’와 ‘힙’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까닭이다. 실제로 2016년 영국 BBC 뉴스에 따르면 LP 구매자 중 7%는 턴테이블이 없고, 41%는 턴테이블이 있으나 음악을 듣는 용도가 아니란다. 우리나라와 해외 모두 작금의 LP 선호가 ‘감성’의 일부분인 건 매한가지인 셈. LP 레코드판이 유행의 반복에 머물지, 아니면 되풀이를 넘어선 뭔가를 생산할 수 있을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김용욱 대표는 이야기한다. “언론에서는 LP가 갑자기 활발하게 거래되는 현상에만 주목하는 것 같아요. 냉정하게 현시점에서 판매는 커다란 의미가 없어요. LP 전성기 때는 테스트 판(홍보용)만 500장 찍었는데, 지금은 오아시스 걸작선의 경우 500장이 기본입니다. 단지 매체가 LP였을 뿐이에요. 언제라도 카세트테이프와 CD가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어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음악의 본질을 이어나가는 것입니다. 근래 우리나라 가수가 세계적으로 알려진 근간에는 옛날 노래가 있어요. 디지털 변환 작업을 하다 보니 깜짝 놀랄 정도로 세련된 곡이 많더라고요. 잊히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음원을 유튜브에 무료로 공개하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입니다. 계속 듣다 보면 분명 색다른 매력을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게 된다면, LP가 굿즈를 넘어 음악의 한 영역으로 확장될 거라고 믿습니다.” [2022.10]


시나위 3집 <Free-Man> 커버.단순한 그래픽으로 완성한 커버가 지금 봐도 세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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