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J에게
수원 남문은 여전히 내게 몽환적인 핫플이다.
미국에 오기 전까지 햇수로 10년 가까이 살았으나 난 그 소도시에서 일상을 제대로 살아 낸 적이 없다.
고교시절엔 3년 내내 오전 6시에 집을 나서 밤 11시가 넘어서야 귀가했고 대학에 진학한 뒤엔 그 도시에서 시간을 보낸 적이 거의 없는 탓이다.
그러니까 내가 기억하는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중반의 수원은 고작 남문 일대 반경 1km가 전부다.
동광서림을 시작으로 중앙극장, 코끼리 만두, 커피전문점 카사, 그리고 90년대 들어서는 커피전문점 모델, 호프집 바이킹, 중앙극장 뒤편으로 들어서면 지금은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8평 남짓될까 한 칵테일 전문점과 미술학원(대학 4학년 겨울방학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이곳에서 나는 그림을 배웠다),
그리고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나이트클럽 정도다.
위에 열거한 장소 대부분은 친구 J와 함께 어울렸던 곳들이다.
수원에서 나고 자란 수원 토박이였던 그녀는 언뜻 들으면 캐치하기 힘든 미세한 수원 사투리를 구사했고 그 소도시 구석구석 모르는 곳이 없는 고교시절 내 하나뿐인 베프다.
그런데 그녀를 만나지 못한 세월이 어느새 10년째.
타향살이 먹고사느라 바쁘다는 핑계를 그녀가 용서해 줄지는 잘 모르겠다.
이제 그녀에게 나는 베프라는 말이 무색해진 옛 고교 동창쯤으로 기억될지도.
그녀와 함께 그 소도시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때는 대학 4학년 여름이었다.
기상관측 이래 최악의 폭염이라던 그해 여름, 우리는 주말이면 남문 동광서림에서 만나 책 한 권 사들고 코끼리 분식에서 쫄면과 만두 한 판 시켜 먹고
칵테일 전문점에 들어가 '섹스 온 더 비치'처럼 꽤나 강렬한 이름의 칵테일을 주문해 홀짝였다. (참고로 그녀와 나의 주량은 둘이 합쳐 맥주 1병이 채 못된다)
그렇게 한 잔씩만 들이켜고도 만취해 썩 불콰해진 얼굴로 남문에서 북문까지 보랏빛 감도는 열대야를 한 쌍의 나비처럼 가로질렀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남문과 북문 사이로 난 그 길을 걸으며 J와 내가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이젠 기억조차 가물가물하지만
아마도 평균치의 삶조차 살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과 공포를 껴안은 채 그래도 있는 힘껏 서로를 향한 어설픈 위로와 용기를 주거니 받거니 했던 듯하다.
J와 내가 나눴던 그 시절 대화 내용은 이제는 희미해졌으나 그날 밤공기와 뺨을 스쳤던 바람의 느낌은 여전히 어제 일처럼 또렸하다.
J와 추억이 켜켜이 쌓여 있는 수많은 핫플 중 내가 유독 왜 동광서림에 천착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동광은 그리 큰 서점은 아니었으나 남문에서 약속은 항상 이곳에서 시작됐다.
나는 늘 약속시간보다 30분 정도 일찍 도착해 서점이 아닌 서림(書林)이라는 자못 화려한 이름이 붙은 원더랜드에서 호기심 가득한 앨리스의 얼굴을 하고 좁디좁은 책장과 책장 사이를 가벼이 넘나들며 얼굴도 본 적 없는 혹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작가들과도 통성명을 나눴다.
헤세를 만난 곳도 이곳이었고 그 뒤를 따라 니체, EH 카, 황동규, 최승자, 임동확, 이문재, 박노해... 지금은 이름조차 기억하기 힘든 수많은 이들을 줄줄이 모두 이곳에서 만나고 헤어졌다.
첫사랑 그와 작별한 곳도 동광이었고 이미 말했거니와 J와의 약속도 모두 이곳이었다.
어디 이뿐인가. 내 청춘의 인연들 중 적잖은 수가 이곳을 거쳐갔다.
적어놓고 보니 이제서야 내가 왜 동광에 천착하는지 알 것도 같다.
맞다. 이곳은 내게 호그와트 마법학교였다.
기필코 손에 넣고 싶던 그까짓 졸업장 기어이 한 장 거머쥐지 못해 여전히 애잔한, 끝끝내 떨쳐내지 못한 미련 가득한 내 청춘의 기록 보관소다.
동광서림이 폐업한 지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으나 다시 그곳엘 가면 볼 빨간 앨리스를 닮은 나를, 나비 같던 J를, 헤세를 닮은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