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로 애틋하게
받는 사람: 주소 미상
제목: 오래된 사막에서 J
메일 제목을 보고 "J? J가 누구지?" 한 건 아니죠?
기억을 아주 오래오래 더듬은 끝에야 가까스로 나를 기억해 내는 비극만은 피했길 바래요.
그간 잘 지냈나요?
선배와 나 사이 '그간'이란 게 적어도 강산이 두 번 변한 세월일진대
이렇게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함부로 애틋하게 안부를 물어도 되는 건지 모르겠네요.
굳이 이 무례에 대해 해명하자면 얼마 전 차고 정리를 하다 발견한 아주 오래된 편지 뭉치가 화근이었습니다.
도대체 언제 무슨 연유로 내가 그 20세기 유물들을 이고 지고 태평양을 건넜는지 기억조차 없었기에
족히 백여 통이 넘는 편지들이 빼곡히 들어찬 쇼핑백을 발견했을 땐 반가움보다는 당황스러움이 앞섰더랬습니다.
기억에도 없는 기억이 내 눈앞에 뜬금없이 펼쳐진 그 순간은 양자역학 이중슬릿 실험을 지켜보는 것만큼이나 기괴했죠.
차고 한 구석 의자에 걸터앉아 봉인 의지 확고해 보이는 비닐봉지 매듭을 힘겹게 푸니 어이없게도 내 눈부신 청춘의 기억들이, 반짝이던 그 시절이 펄떡거리며 쏟아져 내렸습니다.
수십 년간 참고 있었던 날숨을 토해내며 와르르 내게로 와 안깁니다.
선배의 편지는 부러 찾지 않아도 가장 먼저 손에 쥘 수 있었죠.
백여 통의 편지들 중 숫적으로 가장 압도적이었으니까.
함부로 뜯긴 편지봉투 속엔 첫사랑의 신열을 앓고 있는 열아홉 당신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편지를 읽는 내내 까맣게 잊었던, 잊었다 믿었던 내 청춘의 흑백 기억들이 제 색을 입기 시작했고 어느새 처음 맞닥뜨렸던 당황스러움은 잦아들고 그 시절 선배 특유의 농담에 슬쩍 미소 짓는 여유까지 생겼죠.
그리고 한없이 가녀린 사랑 앞에 한없이 결연한 당신과 마주치곤 그럴 수만 있다면 그 시절 당신을 찾아가 꼬옥 안아주고 싶었더랬습니다.
그렇게 편지를 정리하는 그 며칠 내내 나는 편지 속 행간을 따라 조금씩 내 청춘에 가 닿고 있었습니다.
그 긴긴 시간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당신과 함께 말이죠.
적당히 어지럽고 적당히 눈부셨습니다.
내가 지난 세월 못내 그리워한 청춘이 그 시절의 객관적 서사인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애틋하게 채색되고 미화된 추억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20년 전 그해 겨울, 서울 출장길에 십 수년 넘게 연락하지 않았던 내 몇 안 되는 인연들을 줄줄이 소환했더랬습니다.
그리고 그 리스트엔 당신도 있었죠.
제법 호기롭게 시작한 프로젝트였습니다. 게다가 꽤 유쾌할 것이라 확신해 마지않았던.
적어도 당신을 만나기 전까지는.
전화 속 목소리로 미뤄 짐작컨대 선배는 내 제안을 그리 내켜하지 않았죠.
뭐 이해는 해요.
15년 만에 불쑥 나타난 첫사랑(선배에게도 이 정의가 아직 유효한지 모르겠으나)의 호출이 뭐 그리 달가웠을까 싶으니.
게다가 내가 알고 있는 선배의 성정이라면 더더욱이 그럴 것 같고.
굳이 그 무례에 대해 이제와 변명하자면당시 난 누구의 사정 따위 봐줄 여력이나 의지가 전혀 없었어요.
고질적인 향수병이 극에 달해 있었고 속수무책 흐르는 세월과 맞짱 뜨느라 지칠 대로 지친 터, 더 늦기 전 내 빛바랜 청춘의 끝자락이나마 일별(一瞥)하고 싶은 마음 절실했으니까.
어쩌면 피폐해진 현실에서 도망쳐 반짝이던 그 시절 나를 기어이 만나보겠다는 영악한 심산이었을지도.
아니다. 좀 더 솔직한 심정은 나를 끈질기게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그 시절과 그렇게 해서라도 결별하려는 발버둥이었을지도.
그 복잡다단한 섣부른 허례허식에 기어이 선배를 끌어들인 건 돌이켜보면 몹시 이기적인 선택이었지만 당시 내 대책 없는 감상을, 어설픈 치기를 부디 너그러이 이해해 주길.
내 이 때늦은 사과를 받아주길. 혹여 이 사과마저도 내 오만이 아니길.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선배와 만난 그날의 기억은 오디오 없이 비디오만 기록된 흑백 무성영화입니다.
게다가 내 기억이 맞다면 세 시간도 채 안 되는 그 만남은 어색하다 못해 우스꽝스러워더랬죠.
아마도 우리 둘 다 그 생뚱맞은 시간을 무사 완주하겠다는 어설픈 허세나 오기가 발동했나 봅니다.
미팅 호스트로서 쓸데없이 비장했던 나와, 어쨌든 미팅을 수락한 게스트로서 선배의 학습된 예의가 팽팽하게 대치하며 생겨난 미묘한 긴장감이 만들어 낸 희극의 한 장면.
어쩌면 피천득 선생이 옳았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때 우리는 만나지 않는 게 나았을지도.
그리고 꽤 오랫동안 나는 그 밤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어떤 시간이 완전한 과거가 되는 때는 언제일까 하고.
혹시라도 만약 우리가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살았다면
그 만남을 계기로 봄비 내리는 어느 밤이나 퇴근 무렵 어둑어둑해진 창밖으로 눈발 흩어지는 어느 겨울밤, 술 한 잔 하자고 연락했으려나 선배에게.
그렇게 사계(四季) 중 한 번쯤은 적당한 안부를 주고받으며 살았으려나.
더 이상 어쭙잖은 허세가 아닌 시절에 어울리는 편한 얼굴로 살아가는 이야기 정도는 나눌 수 있지 않았으려나.
문학과 철학과 역사를 넘나들며 니체와 헤세와 신영복 선생을 함부로 소환했던 내가 열여덞이고 당신이 열아홉이던 그때처럼.
그리하여
청마(靑馬)가 에메랄드빛 하늘 환히 내다 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서
어떤 마음이었는지 알 수 없으나
설령 이것이 이번 생의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그리운 이여 안녕!
나를 사랑했던
그리고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
부디 오늘 하루 평안하길
그럴 수 있다면 최선을 다해 행복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