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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미망(靑春迷忘)

그럼에도 다정히 안녕히

by ENTJ피글렛

글을 쓰지 않고 지나온 시간 영겁처럼 아득하다.

글이 구원이라 믿은 적 없었으나 쓰지 않고 사는 삶 또한 적막하다. 그믐달에 걸린 별 먼지가 그러하려나.


번역식 어투에 길들여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모국어에 대한 갈증, 동경, 미안함을 손에 꼭 쥔 채

서울의 가을 한낮을 서성이는 나는 이국의 사막에서 그동안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었나 열심히 셈해본다.

이 영악한 계산법으로 기어이 내가 셈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 건가.




스스로 유폐시킨 사막에서 기어이 물 비린내 가득한 오아시스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이국의 사막에서 떠도는 동안 생존을 위해

여우의 신포도처럼 보는 것에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았건만 오아시스에 발 들인 순간

어쩔 도리 없이 따스한 온기부터 찾아 헤맨다. 망했다.


지난 시간 못내 그리워한 풍경은 그들인가, 그들과 함께한 그 시절인가, 아니면 그 시절의 나인 걸까. 그도 아니면 무어란 말인가.

이 끔찍한 아련함 뒤편 기대한 풍경은 또 무엇이었을까.

이 어리석은 질문에 대해 더 이상 그 시절의 그들이 아닌 그들과의 만남에서 썩 명쾌한 해답을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 건 퍽 나이브한 발상이었다. 빌어먹을.

그 숨 막히게 어색한 만남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학습된 예의와 어색한 미소로 때늦은 근황을 묻고 시의적절한 시사 논평 따위나 주고받는 것 밖에. 그들 역시 나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고.

예고 없이 뛰어든 이방인이 민폐가 되지 않으려는 필사의 노력, 눈물겹다.




영원과 불변, 단어는 실재하나 실존은 불가하다는 건 이미 예수 탄생 이전 그리스 철학자들도 알았다.

뭐 플라톤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 있겠는가.

겨우 스물다섯 먹은 GD마저 영원한 건 절대 없어!라고 외쳤던 마당에.

그럼에도 사피엔스 출현 이래 지난 30만 년 역사가 증명한 이 공리의 허점을 지천명 넘어까지 찾아 헤매는 난 IQ든 EQ든 뭐가 모자라도 한참 모자라다는 반증일 터.

그러나 혹여 어제, 혹여 오늘 내 삶에 그런 어여쁜 족적 여여히 남아 있을까 싶어 구차하게 지나온 길을 필사적으로 두리번 거린다. 그리고 혹여 내일도.

나도 안다. 이쯤 되면 영원한 사랑이니 변치 않는, 아니 변해선 안될 한 시절 그들에 대한 내 집착은 과대망상이라는 걸.

뭐 그럼에도 굳이 위안을 해보자면 현생 인류가 문자 발명 이래 줄기차게 영원과 불변을 주제로 통속소설과 유행가를 쏟아낸 걸 쉰 적이 없는 걸 보면 나와 비슷한 망상으로 똘똘 뭉친 이들 적잖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내 이 지독한 감상을, 허황된 과대망상을 다정한 연민의 눈빛으로 바라봐 줘도 괜찮지 않겠는가.

현생인류의 영원에 대한 집착은 뭐 그리 새삼스러운 게 아니라는 걸 아이러니하게도 역사가 또 그렇게 반증하고 있으니.

하물며 그 집착이 청춘과 사랑에 관한 것일진대 좀 너그러이 용서해도 괜찮다고 해두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득히 눈부셨던 청춘, 이제쯤은 놓아주자. 이제는 뭐 그래도 괜찮지 않겠는가.

그 가늠할 수 없는 눈부심도 수십억 년 삼라만상이 그러했듯 거역할 수 없는 엔트로피 법칙 따라 산산이 부서질 테니.

그리고 나도 이젠 그 미망에서 벗어나 가벼이 남은 내리막 길 꾸역꾸역 절뚝이며 내려가야 하니.


그리하여 당신, 기어이 평안하길

내 머릿속에서 끌려다니느라 고단했을 여독, 이제는 편안히 내려놓길

미안하고 고마웠다는

아주 싱겁고 상투적인 인사를 이제서야 고하나니

이조차도 내겐 결코 가볍지 않은 인사임을 헤아려주길

그리고 마침내 이것이 정녕 내 마지막 인사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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