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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대한 Mar 03. 2023

라떼좀 그만 먹고 싶어요 팀장님

혐오에 빠진 세상의 조직문화

* 이 글은 90년생(정통 MZ), 9년 차 직장인(조직의 중간 역할)이 쓴 글입니다.


최근 몇 년간 우리 회사에서 가장 큰 화두는 '조직문화 개선'이다. 아마도 이건 MZ 세대가 본격적으로 사회에 투입되며 자연스레 생겨난 사회적 현상이라 할 수 있겠다. 조직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건 근무 형태와 팀 분위기. 자유롭게 출퇴근을 하고, 할 말이 있으면 어떤 말이든 예의를 갖추고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직문화 점수에 큰 영향을 미친다. (정시 퇴근에 눈치 주고, 아랫사람 보고서에 침 뱉는 조직에서 좋은 조직문화 점수는 아예 기대하지도 말자.)


현재 내가 속한 조직의 경우 나 정도 급(9년 차)의 중간 다리 역할의 인원이 가장 적고 고연차 선배들과 저연차 신입들로 인원이 구성되어 있다. 모래시계형 인원 구성인 이 상황에 중간에 끼인 입장에서 내가 느끼는 바는 조직문화 개선을 외치면서 아이러니하게 서로가 서로의 눈치를 점점 더 많이 본다는 것이다. 9시가 넘어도 나타나지 않은 팀원을 찾으며 '10시 이전에 이런 거 물어보면 안 되는데'라고 말씀하시는 팀장님을 보니 애처로운 느낌마저 들 정도이다.


팀을 옮기며 피부로 느낀 조직문화 (자율 출퇴근, 자율 복장, 재택근무)


짧지 않은 회사생활의 기간 동안 겉으로는 조직문화 개선을 외치며 행동은 전혀 변하지 않는 수많은 꼰대들을 보았다. 그들을 보며 역시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는 걸 여러 번 느꼈었다. 팀 문화가 바뀌는데 가장 효과적인 건 팀장이 다른 사람으로 바뀌는 것이라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소속을 옮기기 전 속해있었던 팀 사람들은 자율 출퇴근과 재택근무를 매우 자유롭게 사용한다. 또 여름이면 거의 모두가 반바지 차림으로 출퇴근을 한다. 이 모든 게 전형적인 꼰대형 팀장에서 오픈마인드의 팀장으로 리더가 바뀌고 나서 한순간에 문화가 바뀐 것이다. 자율 출퇴근과 자율 복장,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정착된 주 2회 재택, 이 모든 것들은 회사가 정한 정책이다. 하지만 그 정책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 우리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바로 내 위의 리더, 팀장이다. (회장님이 도장 찍은 정책이지만 그분은 나랑 같이 일 안 하잖아?)


소속을 옮겨오고 현재의 팀 사람들은 팀장, 실장 눈치를 보느라, 아무도 안 하니까 서로서로 눈치가 보여 이 좋은 정책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예전 팀에서는 당연하던 게 여기서는 당연하지 않은 것이 되어버려 나 역시 팀을 옮겨온 초기에 이 문화를 적응하는데 불편을 겪었던 기억이 난다. 이런 상황에 작년과 올해 신입사원을 대거 채용하면서 들어온 '요즘 것'들의 불만은 막으려 해도 자꾸만 터져 나오게 된다. 그들은 입사 후 얼마 안 가 같이 입사한 타 팀 동기와 자신의 라이프가 극명하게 다른 것을 알게 되고, 대놓고 불만을 표하는 이는 없지만 각종 간담회나 나 같은 비교적 멀지 않은 선배들과의 티타임 시간에 고충을 토로하고는 한다.


세대 간 혐오, 꼰대 vs MZ


시대가 많이 변하긴 했지만 그래도 유교문화가 깊숙이 뿌리 잡고 있는 동방예의지국 대한민국에서는 웃어른의 역할이 지대하다. 따라서 같은 회사 안에서도 팀마다 이렇게 분위기가 다른 건 팀장급 이상 관리자들의 몫이 절대적이다. 


그들에게만 조직문화 개선의 책임을 돌리자는 말이 아니다. 살아온 인생과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그들의 입장에서는 반바지 입고 출근하는 게, 10시가 다 되어 사무실에 올라오는 게 말이 안 되는 게 당연하다. 재택근무는 말해 무엇하랴. 2~30년을 새벽같이 출근해서 밤늦게 퇴근하던 사람이 요즘 시대 출퇴근 문화를 온전히 이해하는 게 오히려 아이러니다. 

반대로 요즘 것들의 입장에서도 그들이 이해 안 되는 것도 당연하다. 온실 속에 화초로 자라온 우리가, 체벌이 없어진 시대에 학창 시절을 보낸 우리가 민주화 운동, 새마을 운동 등 낭만의 시기를 살아온 형님들 세대의 생각을 어찌 이해할 수 있을까?


서로가 서로를 이해 못 하는 현실에서 우리는 세대 간 혐오에 빠진 세상에 살고 있다. 나와 다른 세대를 '꼰대', 'MZ'라 규정해 벽을 쳐버린다. 그 벽이 너무나도 높아 우리는 그 벽을 허물어 낼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 같다. 


근본 해결책 : 라떼는 금지


MZ세대인 내 입장에서는 머지않아 기성세대 '형님'들은 관리직에서 내려올 것이고, 그다음 팀장이 될 선배는 비교적 나와 가까운 '형'이기 때문에 조금만 더 버티면 분위기는 완전히 바뀔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또 얼마 안 가 내가 관리직에 오르는 때가 되면 나부터 앞장서서 재택근무를 하고 반바지도 매일 입겠지. 그러나 이건 세대 간 혐오에 대한 소극적 자세일 뿐 근본 해결책이 아니다. 


나와 다른 세대를 이해하려면 '라떼는'을 하지 말아야 한다. 

기성세대 입장에서 '라떼는' 6시 출근 10시 퇴근이 기본이었지만 내 입장에서 '라떼는' 아침 10시까지만 출근해서 할 일 하고 5시에 퇴근하면, 주 40시간만 채우면 문제가 없다.

기성세대 입장에서 '라떼는' 풀 정장을 입고 머리 스타일은 스포츠머리가 기본이었지만 내 입장에서 '라떼는' 더우면 반바지, 겨울엔 후드티, 머리는 말해 뭐 해?

기성세대 입장에서 '라떼는' 토요일도 사무실 출근에 윗사람이 원하면 주말 등산까지 함께해야 했지만 내 입장에서 '라떼는' 좀 늦잠 잔 날에는 집에서 일하고 주말에 업무 시키면 직장 내 괴롭힘으로 고소 각이다.


라떼가 어디 있는가. 우리가 살고 있는 건 바로 지금, 현재다. 과거에 얽매이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현재의 상황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과거에 어쨌든 간에 우리는 현재를 살아야 한다. 반바지 입고 10시에 출근한다고 해서, 집에서 일한다고 해서 해야 할 일을 안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시대가 바뀌면서 근무의 형태는 바뀌지만 직장인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그 점만 우리는 기억하면 된다. 요즘 것들, MZ세대도 이건 당연히 알고 있다. 

다만 이 모든 것에는 기본적으로 '예의'가 있어야 한다. 후배가 선배를 대할 때는 물론 선배도 후배를 예의를 갖추고 대한다면 혐오에 빠진 세상에서 모두가 좀 더 나은 삶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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