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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우 Jul 02. 2020

동굴과 모닥불.

더 이상 온기는 없다.




 아침에 나가며 에어컨 끄는 것을 깜빡 한 모양이다.

여섯시간 만에 돌아온 집에는 냉기가 가득하다.


웅웅 거리며 앓는 소리를 내는 에어컨과, 짙은 회색의 벽, 텁텁하고 서늘한 공기가 마치 동굴처럼 느껴진다. 동굴의 구석에는 언제 사용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냄비가 가스레인지 위에 고대유물처럼 놓여있다. 


 이 동굴을 닮은 방에도, 몇 년 전에는 분명 작은 모닥불 같은 온기가 있었다. 함께 요리를 하고, 영화를 보고, 나의 빨래를 Y가 널어놓는다거나, Y의 빨래를 내가 개어둔다거나, 하는 아주 사소한, 온기였다. 그녀가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나는 러그의 먼지를 때어냈다. 사소한 온기들은 결국 모여 나의 하루를 횃불처럼 근사하게 비춰주곤 했다. Y가 미소 지으면, 주변의 밝기가 적어도 두 배는 밝아지곤 했었다(정말). 또 가만히 벽에 기대어 책을 보는 Y의 모습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져 사진을 찍곤 했다.


 그녀가 어떻게 떠났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녀와 내가 나눴던 작은 모닥불은, 태풍이나 바람 같은 외부의 사건에 의해 꺼진 것이 아니라, 더 이상 탈 것이 없어서 꺼졌다는 생각이다. 어쩌면 그래서 더 억울하다. 사과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싫어졌거나, 다른 삶이 더 좋아졌기 때문이겠지. 어쩌면 같은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나의 삶은 나를 대변한다. 한 사람이 팔색조의 매력으로 몇 년을 버티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나는 내가 사는 대로 정해진 색으로 물들어가는 과정인 것이다. 그 색이 싫다면, 떠나가는 것이다.


 나는 습관처럼 일어나, 원시인처럼 일을 하고 다시 방으로 돌아온다. 나는 이제 그녀가 떠나버린 작은 동굴의 벽에 그녀처럼 기대어 본다. 마치 휴먼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처럼 보이겠지. 씁쓸한 마음에 거울을 보니, 주변의 밝기가 두 배는 어두워지는 것 같다(진짜). TV를 켜지만, 보지 않았다. TV의 빛이 벽에 모닥불처럼 일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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