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도 이제 어른이 될게" - 아빠 육아휴직 여행기
자연과의 조화가 돋보이는 디자인 도시 헬싱키와는 달리, 기차역에서 나오자마자 마주친 러시아의 첫인상은 산업화의 향기가 물씬 나는 콘크리트 도시의 모습이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Saint Petersburg)의 부르크(-burg)는 바로 '도시'를 뜻한다. 즉, '피터의 도시'라는 이 도시의 이름처럼 그 이름만큼은 도시의 수호자인 성 베드로(Peter)에서 따왔다지만, 동시에 이 도시를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려준다. 바이킹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표트르 1세(피터대제, Peter I the Great)는 러시아를 유럽의 제국으로 만들고자 하는 야망에 불타올랐다. 그리하여 도읍을 정한 곳이 발틱 해를 향해 있는 연안의 늪지대인 바로 이 곳이었다고 한다.
네바 강 하구의 음침한 섬들 위에 도시를 건설하자고 했을 때 당시 사람들은 모두 그의 주장을 비웃었다. 그러나 대제는 거침이 없었다. 스스로 오두막에 기거하며 관리들과 노동자들을 독려했고, 그렇게 100개의 섬이 365개의 다리로 이어진 '북쪽의 베니스' 상트페테르부르크를 탄생시킨 것이다.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우리에게 주어진 첫 번째 미션은 우버(UBER)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사전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러시아는 택시요금 바가지가 심하고 불친절하여 공유 택시인 우버(UBER) 또는 얀 택시(Y.TAXI)를 이용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한다. 그리고 이전에 싱가포르에서도 몇 차례 우버(UBER) 서비스를 만족스럽게 이용해봤기 때문에 크게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러시아에서의 우버 서비스는 싱가포르에서와는 많이 달랐다.
러시아에서의 첫 번째 우버 기사가 매칭 되고 나는 반가운 마음으로 인사를 건넸지만, 러시아에 도착해서 처음 마주친 현지인의 인상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간단한 영어 의사소통까지는 기대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여행을 앞둔 설렘으로 연신 들뜬 모습으로 질문하는 외국인에게 처음부터 헤어질 때까지 단 한번 미소 띤 얼굴 조차 내비치지 않는 우버 택시기사와 헤어질 때까지만 해도 이곳의 모든 사람들이 그럴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정말이지 고급 레스토랑 웨이터부터 동네 슈퍼마켓 캐셔까지 그들의 얼굴엔 절대 미소란 없었다. 거짓말 한마디 보태지 않고 러시아에서의 2박 3일 동안 유일하게 웃음 띤 얼굴로 나와 대화해준 사람은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유일했다.
우버 택시를 탄 우리는 역으로부터 차로 20분 거리에 위치한 에어비앤비(AirBnB) 숙소로 바로 이동했다.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사전에 약속한 시간에 직접 키를 전해주기 위해서 숙소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혀 영어로 소통할 수 없었던 우버 택시기사에게는 그저 미리 키릴 문자로 적어두었던 숙소 주소를 보여주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다소 터프한 운전에 엄마가 뒷자리에서 씸씸이를 꼭 안고 탔지만 다행히 큰 문제없이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번 여행은 가급적 관광객들이 아닌 현지인들의 생활 모습을 가까운 곳에서 느껴보려는 취지로 숙소는 가급적 모두 에어비앤비를 이용해 보기로 했다. 헬싱키 물가 대비 거의 절반 이상으로 저렴한 숙소 비용이었지만, 시내 여행을 하기에 적당한 거리인지와 아이와 함께 지내기에 안전한지 등 주변 환경을 많이 고려하여 숙소를 선정했다.
러시아에서의 첫 에어비앤비 숙박은 대체로 만족스러웠다. 서툰 영어지만 친절한 호스트,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듯한 신축 아파트의 쾌적함, 발코니에서 보이는 집 앞 놀이터까지 예약할 때 이미지로 미리 확인했던 컨디션과 거의 흡사했으니 말이다. 다만 한 가지 예상치 못한 결정적인 흠이 있었다. 바로 러시아 우버택시의 분노의 질주였다. 멀지 않은 거리여도 차로 이동해야 할 상황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여간 스트레스받는 일이 아니었다. 어른들끼리면 상관없겠지만 아이와 함께라 더 조심스러웠다.
2박 3일 동안 우버 택시를 총 6회 이용하면서 단 한 번도 마음 편히 이용한 적이 없었다. 우리가 러시아에서 만난 가장 친절한 사람이었던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이야기하길 그나마 지난여름 러시아 월드컵을 개최해서 많이 친절해진 것이라고 말해서 다시 한번 놀라기도 했다. 더 놀라운 것은 이것이 비단 택시에서만 느낄 수 있는 차가움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분위기는 심지어 시내 고급 레스토랑, 마트, 관광지 매표소에서 조차도 마찬가지였다.
여름이 짧고 겨울이 길어 해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적은 북유럽 사람들 특유의 무표정은 헬싱키에서 이미 많이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러시아에서 2박 3일 일정을 마치고 헬싱키로 다시 돌아갔을 때 우리 부부는 헬싱키 햄버거 가게 점원의 친절한 미소에 감동할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헬싱키에 비해 반값도 안 되는 물가 생활권에서 미소 띤 기분 좋은 서비스를 기대한 우리의 욕심이었을지도 모르겠는 생각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