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제주도에서 4달 동안 지낸 적이 있다. 한창 유행하던 한 달 살기 이런 것은 아니었고, 우연히 그곳에서 일 할 기회가 생겼다. 그건 학교를 다녀야해서 별 다른 도리가 없었던 서울과, 태어났기 때문에 살게 된 고향 경산과는 달리 내가 처음으로 선택해 머물게 된 곳이었다. 사실 꼭 제주여야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당시의 나에게는 집도 서울도 아닌 도망칠 수 있는 어딘가가 필요했고, 강원도 강릉이든 땅끝마을 해남이든 상황만 맞으면 어디로든 떠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은 없다"는 말과는 달리, 제주도는 도망친 내가 갈 수 있었던 최고의 공간이었던 것 같다.
그곳에서의 생활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서울과는 달랐다. 평소에 여행에 큰 흥미가 없는 나는, 제주도에 가기 전까지도 별 다른 환상이 없었다. 물론 평소에 바다를 볼 수 있겠다는 점 정도는 좋다고 생각했지만 내 삶 자체가 그다지 달라질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내내 여행을 다니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9시부터 6시까지 일해야 하는 삶이 제주도라고 해서 뭐가 그렇게 다르겠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건 오판이었다. 적응이 필요했던 정신없는 2주가 지나고나자, 나는 완전히 제주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일단 모든 것이 새로웠다. 회사가 끝난 후 바닷바람을 쐬며 파도소리를 들으러 가기도 하고, 서귀포시 곳곳에 있는 멋진 펍과 맛집을 찾아가는 것도 재미있었다. 주말이면 친구들과 혹은 혼자서라도 유명한 여행지를 들르기도 했다. 중문이나 성산일출봉같이 아주 유명한 곳부터 종달리같이 많이 알려지지 않은 마을까지 곳곳을 쏘다녔다. 어딜가나 독립서점이나, 공방, 그리고 멋지고 개성있는 카페가 있었고 그런 곳을 찾아다니는 재미가 쏠쏠했다. 4달이라는 한정된 시간은 내 자신을 절반은 여행자로, 절반은 생활인으로 제주도에 머물 수 있게 해주었다. 평생 살 것이 아니기에 마치 여행지에 온 관광객처럼 더 알차게 시간을 보내야 했고, 그런 여행자치고는 시간이 꽤나 충분했기에 후회없이 돌아다닐 수 있었다. 이번 주에 못간 곳이 있다면 다음주에 가면 그만이었으니까. 한동안은 '방에서 콕박혀있기'를 최고의 미덕으로 생각하는 내 체질이 바뀐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 지경이었다.
그러나 아주 놀랍게도, 나의 체질은 서울로 돌아온 후 완벽히 제 자리를 찾아왔다. 10시부터 6시 반까지 낮시간을 일하는 것은 똑같았지만 그 이후로 어딘가를 돌아다닐 생각은 하지 않았다. 레일 위 경주마처럼 집, 회사, 지하철, 집을 반복할 뿐이었다. 주말이라고 해서 다를 건 없었다. 나는 어디론가 가고싶다는 욕망 따윈 잊었고, 늦잠과 그 후 찾아오는 거대한 식욕만이 내 유일한 욕망이었다. 제주도에서의 그 시간들이 마치 꿈처럼 잊혀져가고 있었다. 이 삶이 문제라고 볼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해서 행복한 삶이 아니라는 것도 명확했다. 제주도에서 느낄 수 있었던 새로운 걸 발견했을 때의 설렘, 다가오는 시간에 대한 기대감을 전혀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은 서울은 삭막한 메트로폴리스고, 제주도는 멋진 관광지라서 어쩔 수 없는 것이었을까? 꼭 그런 것만은 아님을 최근에 느꼈다. 보고싶었던 영화가 종로3가에 있는 서울극장에서밖에 하지 않아 불가피하게 나들이를 떠났을 때였다. 기왕 나온 김에 돌아다녔던 종로는 제주도만큼이나 매력적인 공간이었다.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이 버티고 있는 광화문을 지나서, 유명 회사들의 본사가 있는 빌딩 숲을 지나고, 세련된 상가가 즐비한 곳에 이른다. 종로3가까지 오면 이전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가 기다린다. 근처 야외 포장마차에서는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있고, 낙원상가 주변은 세월이 만들어낸 기운(일명 짬바)이 그 공간의 매력을 채우고 있었다. 군데군데 멋진 카페도, 식당도 있었다. 제주도와는 다른, 서울의 매력은 분명 그곳에서 살아 숨쉬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 나는 서울의 내게는 없었고 제주도의 나에게는 있었던 것이 이른 바 '여행자의 마음'이란 걸 깨달았다. 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늘 새로운 뭔가를 찾아보겠다는 마음을 가진다. 제주도의 나는 분명 그런 마음이었다. 언젠가 떠나야한다는 것을 알기에 그 시간동안 최대한 그 도시와 친해져야겠다는 생각으로 그곳의 많은 부분을 보고 발견하려고 한다. 호텔에서 가만히 쉬러 가는 사람을 우리는 '여행자'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그런 때도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아무튼 여행자란 보다 많이 보려하고 경험하려는 사람들이다. 서울도, 제주도도, 그 어떤 곳일지라도 그런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을 실망시키는 곳은 거의 없다. 서울의 매력을 내가 뒤늦게 발견했던 이유는 그걸 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7년동안 살았던 이 공간이 더 이상 궁금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살게 될 이곳에서 경험하지 않아 아쉬운 것도 없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쁜 법인데 서울은 대충 봐서 예쁠만한 절세미인은 아니지 않나.
그 후로 나는 평소에도 '여행자의 마음'이라는 걸 지니고 살아보려고 한다. '여행자의 마음'이 한정된 시간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면, 내가 할 일은 그걸 인식하는 것 뿐이다. 어차피 우리는 모두 한정된 시간을 살아가는 존재들 아닌가. 비록 여행을 많이 가지 않더라도 아니 여행을 떠나지 않았을 때, 그 마음은 더욱 유효하게 작용한다. 내가 살아가는 공간 뿐만 아니라, 만나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생각한다. 오래된 인연의 새로운 면을 들여다보려고 노력하고 매력을 찬찬히 뜯어본다. 사람은 도시보다 변화의 속도가 훨씬 빠르므로 만날 때마다 사뭇 새로워 보인다. 평생을 두고 봐왔던 엄마도 요즘따라 부쩍 예전과 달라보이기도 한다. 나태주 시인은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라고 말하면서 그 대상이 무언지는 '너도 그렇다'며 얼버무렸다. 그건 결국, 중요한 것은 무엇이 예쁜지 보다 자세히 보려는 태도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