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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하면둘 Nov 08. 2021

선택의 딜레마


“그러니까, 결혼했다는 건 골치 아픈 거에요”라고 김희애가 말했다. 한창 유행하던 드라마 <부부의 세계>속 대사다. 아마 시청자들의 분노를 최대한으로 끌어내는 장면이 아니었을까 싶다. 남편의 상간녀가 자신을 찾아온 것으로도 모자라 그녀가 남편의 아이까지 갖고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 여자의 기분은 어땠을까. 이미 일이 이렇게까지 되었을 때, 이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선택지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이 대사는 그녀도 그걸 알고 있기에 내뱉는 한탄이었다. 앞으로 여자에게 남은 일은 수없이 나쁜 선택들 중 그나마 덜 나쁜 선택지를 고르는 것뿐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인생에는 종종 그런 순간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요즘에는 내가 살면서 해왔던 선택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누구의 말마따나 인생이란 B(birth)와 D(death)사이의 C(choice)라는데, 그렇다면 현재의 불행은 역시 과거의 선택들 때문일 것이다. 돌이켜보면 아쉬운 선택이 있었던 순간들은 하나 둘이 아니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일단 돌잔치 때부터 돈을 집었어야 했다. 중학교 땐 PC방에서 살다시피 해 공부를 등한시 했고, 고등학교 땐 문과를 가버렸다. 수능을 치고 나서라도 안정적인 한의대에 지원했어야 했는데, 멍청한 선택을 해 이처럼 고생을 면치 못하고 있다. 성인이 되어서도 이런 선택의 순간들은 무수히 많았으니, 평행우주가 있다면 각각의 순간에서 다른 선택을 했던 ‘나’는 행복해하고 있을 것이다. 만약 선택의 가지 수로 뻗어나간 수많은 평행우주 속 ‘나’들 중에서, 지금의 ‘나’는 하위권을 달리고 있지 않을까?


이런 부정적인 생각이 머릿속에 들 때면, 늘 떠올리는 영화가 있다. 영화 <나비효과>는 선택에 관해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는 영화다. 영화의 주인공 ‘에반’은 늘 자신의 삶이 왜이렇게 꼬였을까 한탄한다. 특히나 첫사랑 켈리를 놓친 것은 그가 인생에서 가장 후회하는 일이다. 그러던 그에게 우연히 어린 시절 일기장을 통해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 영화는 여기에서부터 재미있어지기 시작한다. 과거의 선택을 바꾸면 상황이 좋아질 것이라 생각했던 에반의 기대가 무참히 깨어지기 때문이다. 에반이 다른 선택을 했을 때, 미래는 늘 바뀌긴 했다. 그러나 그의 생각과는 달리, 완벽한 미래는 존재하지 않았다. 한 가지가 좋아지면 다른 하나는 나빠질 뿐이었다. 수 십 번 타임슬립을 해봐도 그는 만족할만한 상황을 찾을 수 없었다. 내가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그 이후의 결말이다. 완벽한 미래를 찾지 못한 에반은, 결국 안좋은 일들을 모두 사라지게 하기 위해서는 본인이 사라져야 함을 깨닫고 엄마의 태아 시절로 돌아가 자살을 선택한다.


어떤 선택이든 행복하기만 한 선택은 없다. 그림자 없이 완벽한 삶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의 주인공 ‘에반’은 계속해서 인생의 나쁜 부분에 집중하고, 이를 제거하기 위해 과거를 바꾸어 간다. 그러나 이런 주인공의 시도는 결국 태어나지 않는다는 결말에 다다를 수밖에 없다. 행복과 고통이란 동전의 양면같은 것이기에, 고통을 모두 없애기 위해서는 동전 자체를 없애야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그렇게 결말을 통해서, 산다는 건 그 삶에 따르는 행복을 즐기는 만큼 고통도 감내해야함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에반은 자신의 선택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고통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웠어야 했다.


나는 앞으로도 아마 내 인생을 망치게 될, 수없이 많은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이제 갓 20대를 거의 통과했으니 평균 수명인 80대까지 산다고 치면 내가 망칠 선택은 아직 절반도 넘게 남았다. 하지만 그 고통 때문에 나비효과의 주인공처럼 삶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얼마 전 우연히 밤길을 걷다 마주친 벚꽃처럼, 분명 작은 행복의 순간은 존재할 것이다. 그러니까 산다는 건 정말 피곤한 일이다. 그럼 그렇지. 골치 아픈 게 어디 결혼뿐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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