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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하면둘 Mar 19. 2023

이베리코 목살과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에 튀긴 치킨

    우리 회사는 교육과 관련된 공공기관이다 보니 가끔씩이지만 학생들을 직접 마주할 기회가 있다. 최근에는 2박 3일간의 진로 캠프를 진행하다 인상적인 초등학생을 한 명 마주쳤다. 8개 학교가 참여한 캠프여서 각 학교별로 수료식에 나와 수료증을 수여할 대표 학생에게 의향을 물으러 다니던 중이었다. 내가 부끄러움이 많아서인지 다들 무대로 나오는 걸 꺼릴까봐 우려했지만, 학생들은 본인이 대표로 뽑혔다는 사실에 너무 기뻐하며(그저 이름을 보고 뽑기하듯 뽑았을 뿐이지만), 흔쾌히 나의 제안을 수락했다. 그런데 그 중 한 학생의 대답이 내게는 너무 인상 깊었다.


“정말로 제가 해도 돼요?
“왜, 부끄럽니?”
“아뇨! 저는 너무 하고 싶은데, 다른 친구들도 다 하고 싶어하는 것 같아서, 제가 해도 되나 싶어서요.”

    별 대단한 상도 아니고, 학생의 대답도 그렇게 특별한 건 아니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초등학교 4학년의 말에 왠지 모르게 마음이 뭉클해졌다. 내가 너무 과대포장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 어린 나이(참가자 중 가장 저학년이었다)에 내가 자격이 있는 지 묻는 태도와,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너무 감격이었다. 그때 아이에겐 말하지 못했지만, “너는 충분히 자격이 있다”고 말해줄 걸 싶었다.


    그러고 보면 요즘에는 세상 전체가 어딜 가나 저 잘났음을 어필하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들로 가득찬 듯 하다. 아무리 자기PR 시대니 셀프 브랜딩이니 좋은 말로 치장해도 자랑이 자랑이 아닌 건 아니다. 유튜브에는 내가 00살에 0억을 모을 수 있었던 이유를 설파하며 무언가 알려주려 하지만 결국은 자기자랑인 이야기를 늘어놓고, 인스타그램에는 모두들 자신의 가장 멋진 모습, 먹었던 것 중에 가장 예쁜 것(맛있는 것 X)을 올리기에 여념이 없다.


    얼마 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누군가의 프로포즈 후기 사진이 화제가 되어 비난받은 걸 본 적이 있다. 누군가는 그 사진 속 프러포즈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명품백을 포함해 몇 천은 될 비용이 소요될거라 추산했다. 내가 보기에 글을 올린 사람이 다른 SNS이용자와 특별히 다른 건 없었는데, 다만 그가 잘못한 건 자랑을 자랑이 아닌 것처럼 올리는 스킬이었다. 예를 들면 “야경이 멋지다”라고 글을 쓰고 자랑하고픈 걸 슬쩍 올려두며 화제를 돌린다든지(이렇게 하면 비난하는 사람이 이상한거다)하는 스킬들. 내가 보기에 그가 비난을 받은 까닭은 하나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가지고 있을 그 ‘자랑의 욕구’를 너무 노골적으로 내비춰, 구경꾼들 스스로를 부끄럽게 했기 때문이다. 아마 그를 욕했던 사람 중에서, 자랑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었을테다. 다만 그러지 못했을뿐.


    하다 못해 물건이나 파는 음식들마저도 모두 요란스럽기 그지없다. 팔기 위해서라는 건 알겠지만, 잘 알지도 못하는 말로 저 잘났음을 그다지도 어필할 때는 영 믿음이 가지않는다. “드라이에이징 삼겹살, 이베리코 목살”이라든지,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오일에 튀긴 치킨”이라든지. 나는 그냥 두툼한 삼겹살이 먹고 싶을 뿐인데 모두 거창한 수식어들뿐이다. 최근에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삼겹살 집은 상표명이 “두툼”이었다. 이 얼마나 신뢰감 가는 이름인가. “두툼”이라는 이름의 삼겹살 집에서 얇디 얇은 삼겹살을 내오겠는가? 그 집은 실제로 나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고, 그 어느 곳보다 두툼한 삼겹살을 내어주었다. 물론 인간도 어려운 마당에 음식에게까지 겸손함을 요구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요란하게 스스로를 내세우기보다는 솔직하게 얘기해줄 수 없을까. 예를 들면,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에 튀긴 마치 유기농에 건강할 것 같은 치킨이 아니라 그냥 바삭하고 부드러운 치킨이라고.


    저런 일들에 지쳐서일까, 나는 요즘 따라 유명 로큰롤 스타들의 초기 앨범을 즐겨 듣는다. 보통의 록스타들은 데뷔하기 전까지는 부모 말을 더럽게 안듣는(부모님들에게 예체능에 대한 진로는 만국 공통으로 인기가 없는 듯하다) 고집쟁이들이며, 대개는 그런 성격 탓에 학우들이나 이성에게 인기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그런 이들의 초기 앨범에서는 낮은 자존감과 함께 이를 극복하는 방법을 엿볼 수 있는데, 예를 들면 “너가 좋은데 난 병신이야(Radio head - creep)”라는 식으로 스스로의 감정을 솔직하게 고백한다든지, “나는 못생겼어, 근데 괜찮아. 왜냐면 너도 그렇거든.”(Nirvana - lithium)식으로 남들도 함께 욕한다든지 하는 방법이 있다. 난 이런 식의 해결법이 좋다. 나 잘났음을 어필하며 스스로의 단점이나 콤플렉스를 감추는 게 아니라, 그냥 싫든 좋든 내 감정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 나는 그게 감정적으로 자랑보다 나은 해결책이라고 생각한다.



    여간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학생의 이야기가 내게 감동적이었던 건 그런 겸손한 태도가 어디서든 너무 보기 힘들어졌기 때문인 것 같다. 회사에서도, 인터넷에서도 다들 저 잘났다는 인간들 뿐이다. 유교문화권인 탓에 어린 시절부터 뿌리깊게 박힌 겸손함의 중요성을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우리 사회는 과도한 겸손함으로 인해 권력형 범죄에 더욱 취약해지는 등, 오히려 겸손함을 너무도 미덕으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많은 문제가 야기되기도 한다. 다만 너무 내놓고 나 잘났소라며 떠드는 건 사람이건 물건이건, 종종 볼썽사납다. 유행이란 돌고 도는지 요즘엔 평양냉면이나, 아주 허름하지만 오래된 노포에 방문하는 것이 한창 힙스터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차라리 이런 방식이 맛집을 찾아내는 더 유용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정말 자신있는 사람이야말로, 굳이 저 잘났음을 요란하게 말하지 않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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