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요즘에는 뉴스 문화 면이 온통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야기 뿐이다. 자폐아라는 소재도, 배역에 찰떡인 배우들도 모두 화제가 되고 드라마를 제작한 제작사의 주가는 며칠 간 50%가 넘게 뛰어 경제면도 장식했다. 기사를 보자면 작가도 배우도 시청자도 심지어는 제작사 주주들도 모두 행복해 보이기만 했다. 그러나 드라마의 성공 덕에 나는 오랜만에 전직장의 이름을 들으며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우영우를 제작한 그 드라마제작사에서의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공공기관에 입사한 지도 벌써 2년 째. 그동안 나는 드라마가 얼마나 멋진지보다는 그 드라마 덕분에 주식이 얼마나 올랐는지를 먼저 떠올릴 만큼 많이 변해버렸다.
제작사에 다니던 시절은 준비는 길었지만 직장생활 자체는 아주 짧았고, 회사를 그만두는 것에 대해서 후회는 없었다. 말로는 프로듀서라곤 해도 나는 막내였고 누가 보더라도 딱히 아깝다고 생각할만한 자리도, 연봉도 아니었다. 그렇다곤 하지만 몇 년이나 쫓던 꿈에서 훽하고 등 돌리고 온 곳이 공공기관이라는 것에는 나도 아직 종종 낯설곤 하다. 지금도 종종 제작사에 함께 입사했던 어느 동생과 추운 겨울 촬영장에서 주고 받던 농담이 떠오르곤 한다. "이게 뭐하는 짓이야. 공무원 시험이라도 치러가자. 독서실에선 얼어죽진 않겠지" 공무원 시험은 아니었지만, 그 말은 이제와 보니 반쯤 진실이 되었으니 꼭 농담은 아니었었다.
그렇게 추위와, 기약 없는 대본들만 들여다보던 나는 이제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 찾아오는 민원인들과 입씨름을 하고 있다. 규칙을 깨는 신선함, 재미만이 중요한 세계에서 규칙과 행정만이 존재하는 세상으로 옮겨온 내게 이곳은 이세계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개인적으로 옮겨온 것에 대하여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이곳에서는 재미는 없을 지 몰라도 기댈 수 있는 규칙이 있었고, 최소한 퇴근 시간이 언제쯤일지 정도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대부분 6시니까) 2년 전으로 되돌아가 다시 선택하라고 해도, 지금의 직장을 선택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직장생활이라는 건, 다들 알다시피, 그다지 만만치가 않다. 추위, 졸림과 같이 원초적 힘듦이 자리하던 곳에는 매일 반복되는 업무에 대한 권태가 자리했고, 예상 가능한 업무 덕에 내일에 대한 설렘은 사라졌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은 직장생활에 대해서 글을 써봐야겠다는 것이었다. 영화 '어바웃타임'에서는 보통의 시간여행 장르영화처럼, 삶의 순간순간을 바꿔 인생을 바꿔보려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자 언급하고 싶은 건 그 결말인데, 삶을 바꿔보려는 시행착오를 여러 번 겪은 주인공은 마지막에 시간여행을 가장 요긴하게 써먹는 방법을 찾아낸다. 그것은 똑같은 하루를 2번씩 살아보는 것이었는데, 같은 하루를 두 번째 보낼 때는 첫번째 날에서 놓쳤던 많은 걸 볼 수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마치 같은 영화를 두번 볼 때처럼 인생도 자세히보면 자신이 걷는 배경, 대화하는 상대의 표정과 같이 더 세밀한 것을 보게되어 그 자체만으로 삶이 더 풍요로워진다는 것이다. 글쓰기를 해야겠다고 느낀건 그 지점에서였다. 내게 시간여행같은 능력은 없으나, 글쓰기가 비슷한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에서 겪은 일이나 사람들에 대해 한번 더 들여다 보고, 평상시에 느꼈던 것들을 조금 더 생각해 보는 것. 그것만으로도 조금 더 지금의 생활을 사랑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어느 시인이 말했던 것처럼 '자세히 보아야 예쁜'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