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가 되고 고향 집으로 내려온 지 딱 1개월 차. 오늘은 이곳에서의 생활을 보고해보려고 한다. 사실 8년을 집밖에서 나와 살았던 탓인지 무려 한 달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집에 있는 내가 가끔 어색하기도 하고 이런 일상 자체가 일종의 ‘일탈’처럼 느껴진다. 특히나 아침 출근길이면 뻐꾸기 시계처럼 어김없이 투덜대는 친구들의 카톡을 보고 있자면, 눈 비비며 일어나 냉장고를 뒤적이는 나의 일상이 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정해진 시간이 오면 원래 자리로 돌아가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지만, 느낌만 그렇다 뿐이지 딱히 그럴 계획은 없다.
사실 회사를 다닐 때만 해도 갖가지 고민이 많았다. 그것은 주로 미래를 어떻게 그려나갈 것인지에 대한 문제였다. 앞으로 집은 어떻게 할 것이며, 커리어는 어떻게, 결혼은 어떻게 등등 혼자서 그런 문제들을 수없이 끌어안고 있었다. 회사를 나오게 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 역시 그런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그곳에서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는 신기하게도, 그런 문제들이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는다. 신분은 더욱 불안정해졌는데, 마음은 어쩐지 편안하다. 얼마 전부터 왜 그런 걸까 계속 궁금했었는데, 최근에 그 미스테리의 해답을 찾은 것 같다.
그것은 간단히 말하자면 ‘엄마 밥’의 힘이다. 매슬로우의 욕구단계이론을 빌려 오자면, 회사를 다닐 때의 나는 가장 저차적인 단계의 욕구들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집에 왔을 때는 뭘 먹어야 할지 막막했고, 살고 있던 집에서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 불확실했다. 월급은 안정적으로 나올 테지만, 나의 안전욕구를 채워주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분명 그 일은 내가 가고 싶어 했던 길이 틀림없었지만 매슬로우에 따르면 저차적인 욕구가 채워지지 못했을 때 고차적인 욕구는 그다지 동기부여가 되지 못한다. 그러니까 나는 회사를 나오게 된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야 나는 매슬로우씨가 옳았음을 느꼈다. 이곳에서 나는 제때에 끼니를 챙겨먹고 있으며, 우리 집이 한 순간에 사라져버릴 일은 만무하다. 엄마와 집이라는 존재가 저차적인 단계의 욕구를 충실하게 채워주고 있기에, 내게 무언가에 도전해볼 힘이 생기고 있는 것을 느낀다. 그러니까, 아마 베이비붐 세대의 급속한 경제성장의 바탕에는 엄마 세대들의 가사노동이 소리 없는 기여를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저차적인 욕구를 채워주는 그 가사노동이 없었다면, 그 시절의 근로자들 역시 별 수 없이 무너져버렸을 것이다.
가끔은 엄마의 잔소리가 좀 심하지 않나 싶긴 하다. 하지만 20대의 막바지에 집으로 기어들어와 제 벌이 하나 못하는 아들을 생각해보자면, 그 정도는 참는 것이 인간된 도리라고 생각된다. 내 쪽에서도 여러 가지 서비스를 제공하긴 한다. 이모의 뒷담화 라든지, 요즘은 TV에 도통 재밌는 게 없다는 말에 맞장구를 쳐준다. 20년이 넘는 짬에서 오는 드라마에 대한 높은 식견(배우가 연기를 못한다, 설정이 말도 안된다는 등)도 아주 잘 들어준다. 엄마는 늘 내게 그런 이야기 하는 걸 좋아한다. 그러니까 요즘은 바깥을 나도는 역병을 제외하면 대부분 만사 평안하다. 아마 이토록 편안한 시간이 길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아직 젊고, 언제까지 집에만 있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그 시간이 오기 전까지는, 지금을 충분히 즐기고 싶다. 8년 만에 찾아온 이 평화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