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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하면둘 Nov 17. 2024

개츠비와 스투키

    언젠가였다. 회사의 어두컴컴한 회의실에서 부장님을 마주한 것은. 불도 켜지 않으시고 부장님은 그곳에서 화초를 다듬고 계셨다. 부장님의 사연은 이랬다. 원래 회의실과 임원실을 관리해주시는 비서님이 한 분 계셨는데, 본사가 아니어서 임원이 상주하지도 않는 곳에 비서님이 계시는 것이 말이 안된다고 하여 어쩌다 보니 계약이 종료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임원실과 그 옆에 있는 회의실은 방치되다시피 했었는데, 다른 것들은 몰라도 화초는 살아있는 것들이니만큼 신경이 쓰이셨던 것 같다. 이런 일을 다른 직원에게 부탁하기에는 좀 미안하셨는지 그 이후로는 부장님 본인이 화초에 매일같이 물도 주고, 곁가지들을 다듬기도 해왔다고 한다. 그렇게 얘기를 듣고 보니 어떤 화초에는 새 싹이 하나 돋아있었다. 사랑받고 자란 사람은 태가 난다고 했던가, 녀석들은 그런 티를 완연하게 내고 있었다. 그 날 파티션 안에 가려져 있던 부장님 자리 뒷편에 자리한 무수한 화초와 식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부장님은 화초를 좋아하시는구나. 좋아한다는 것은 어떤 번거로움을 감내하는 것이었다.


           요즘에는 ‘가성비’라는 것이 일종의 시대정신이 되었다고 느낀다. 비단 물건의 가격대비 성능이 아니라 무엇이든 투입한 노력이나 재화 대비 효율을 모두가 고집스럽게 집착한다. 퇴근 후에는 영화를 한편 다 보는 것은 피곤하고 가성비도 좋지 않으니 유튜브에 있는 요약 컨텐츠로 영화를 본다든지, 아이를 낳는 것과 그로 인해 포기해야할 것들의 무게를 저울질한 끝에 딩크의 삶을 선택한다든지 하는 식이다. 심지어 유튜브에서는 어느 유명한 강사가 고등학교 때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이 한국에서 가장 가성비가 좋은 일 중 하나라는 식으로 학생들을 동기부여하는 영상도 있었다. 이제는 공부에 대한 동기부여도 가성비로 풀어내는 세상인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 가성비가 좋지 않은 것들, 즉 무용한 것들은 설 자리를 잃어간다. 얼마 전에는 집 근처 커다란 담벼락에 있는 담쟁이 넝쿨이 깔끔하게 사라진 걸 봤다. 담쟁이 넝쿨이 사라지고 맨 살의 콘크리트만 남아있는 그 담을 보고 있자니, 어느새 탈모가 시작된 친구의 정수리를 마주했을 때처럼 쓸쓸해졌다. 한번도 그것이 미관을 해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는데, 구청의 누군가에게는 사라져야할 것으로 느껴졌었나보다. 넝쿨이라는게 뭐 특별한 쓸모가 있는 것도 아니니 딱히 격하게 반대하는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낮아진 출산율이 이야기해주는 것처럼 이제는 부부가 아이를 가지는 일도 쉽지 않다. 대신에 개나 고양이를 키우겠다는 친구들도 더러 있다. 피곤에 지친 직장인이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는 것만큼 가성비가 떨어지는 일도 또 없으니 백분 이해가 간다. 여러 설문조사에서는 점점 사람들이 연애도 덜 하고 있다는 내용이 나오기도 한다. 내게는 이 모두가 비슷한 맥락처럼 느껴진다. 누군가에게 신경이 쓰이고, 신경을 쏟고, 헌신하고, 또 희생하는 일은 점점 더 꺼려진다. 가성비는커녕 본전도 건지기 힘들, 그리하여 ‘사랑’이라고 일컫는 일은 점점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소설 <위대한 개츠비>에서 주인공인 개츠비는 내가 생각하는 최악의 가성비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는 사람 중 하나다. 그는 소설 속에서 아주 사치스러운 파티를 자주 여는 주최자로 유명하다. 딱히 그는 파티광처럼 보이지도 않아서, 그를 본 소설 속 서술자인 ‘닉’은 그가 파티를 여는 이유를 궁금해하기도 한다. 개츠비가 그토록 열심히 파티를 열었던 이유는 중반부 이후에 드러난다. 그는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 ‘데이지’를 보기 위해서, 그녀가 사는 동네에서 거대한 파티를 열어 유명해지고 그 파티에 그녀가 올 수밖에 없게끔 한 것이었다. 재미있는 점은 소설 속에서 그가 많은 돈을 벌었던 것도, 그처럼 호사스러운 파티를 열었던 것도 단지 그녀 하나 때문이었다는 점이다. 나는 이 소설을 몇 번이나 읽었지만 정말 답답하고 미련스럽게만 느껴진다. 사람 한 명을 위해 몇 달동안 몇 백명이 참석하는 파티를 수없이 열다니, 그처럼 가성비가 떨어지는 일이 있을까. 심지어 내게는 그가 좋아하는 ‘데이지’라는 여자가 그만한 애정을 쏟을만한 사람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일단 남편이 있기도 하고, 지적으로 뛰어나지도 않으며, 사치 부리는 일이나 허황된 것들을 맹목적으로 좇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의 그런 성격은 개츠비가 호화스럽고, 비효율적이지만 파티를 여는 일을 멈출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개츠비는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개츠비는 바보같이 보이기도 하지만, 그의 그런 면은 이 소설의 제목이 ’위대한 개츠비’인 이유이기도 하다. 보통 위인들에게나 붙는 수식어를 작가인 피츠제럴드가 개츠비에게 붙여준 것은 그가 유명한 위인들과 공유하는 지점이 있어서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것이 아마 손익을 따지지 않고 무언가를 위해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마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우리가 위인이라 일컫는 사람들에게는 모두 그런 뭉클한 지점이 있다. 고흐는 취업을 하라는 주변인들의 말에도 불구하고 죽을때까지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을 그렸고, 간디는 중산층인데다가 변호사였기에 저 혼자였다면 편안한 생애를 보냈겠지만 식민 통치에 평생을 저항했다. 소설 속 개츠비는 위인은 아닐지라도 그 마음만큼은 닮아 있었던 것이다.


           소설의 결말에서는 결국 등장인물 중 몇 사람이 죽고, 개츠비도 완전히 몰락한다. 개츠비의 사랑은 불륜인데다가, 집착증적인 부분도 많아서 사실 좋게 끝나기는 어려워 보이긴 했다.(스포일러지만 개츠비 역시 죽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다만, 그의 사랑이 실패로 끝났다고 하더라도 개츠비가 죽는 순간 자신의 삶을 불행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분명 무언가 사랑하는 것이 있고 이를 위해 모든 걸 걸어봤던 삶은 결과가 어찌되었든 간에 그 스스로에게만큼은 불행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그 반대면 모를까. 그러니 한 사람의 삶 전체에 대해서 가성비를 매긴다면 개츠비의 경우도 내 생각만큼 나쁘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지난 주말에는 집이 좀 적적해보여서 스투키 선인장을 하나 사왔다. 스투키는 물을 자주 준다든가 하지 않아도 되고, 집안에서 잘 자라 손이 덜 가는 식물로 유명하다. 말하자면 가성비가 좋은 녀석이다. 가게에 갔을 때도 은연중에 그런 생각을 하며 무수히 많은 식물들 중 그것을 골랐던 것 같다. 나도 가성비가 좋은 것들이 좋다. 그런데 녀석을 집안에 들여놓을 때 문득 언젠가 스투키도 죽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미 화려한 전적이 있다) 뭐 언젠가는 그런 때가 오더라도, 지금만큼은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그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주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나중에는 그보다 더 큰 것도 기꺼이 사랑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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