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교 4년, 대학원 2년.
남들보다 조금은 더 길게, 그러나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름 길고도 짧은 학생의 신분을 거쳐 세상으로 나왔다.
'학교'라는 울타리와 '학생'이라는 신분이 끝나고 찾아온 감정은 자유로움 보다는 두려움이었다.
앞으로 한 사람 이상의 값어치를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
졸업 논문.
석사 마지막 학기는 졸업논문을 완성해야 했던 시기였고 졸업 논문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내 논문에 그만큼까진 관심 없다는 사실을 진작 깨달았어야 했는데..)
최종 논문 심사를 위한 발표자료도 만들어야 했고 중간심사에서 받은 평가를 피드백해야 했고. 사실 돌이켜보면 일하면서 취업 준비하는 거에 비해 훠어어얼씬 쉬운 과정이었음에도 왜 그렇게 힘들어했나 싶다.
특출 난 연구 결과가 아닌 이상 졸업 논문은 크게 좌우되지 않는 것 같다.
사실 졸업 논문의 완성보다는 이미 정해졌던 졸업 논문의 주제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지만 이미 어쩌겠는가. 석사 4학기. 막 학기 인걸.
전공 또한 이 분야, 저 분야도 아닌 애매모호한 그 어딘가에 걸쳐있었다.
전공.
석사까지 했으면 어느 정도 전공에 능통한 사람을 원할 텐데
아쉽게도 내 전공은 한국에서 그리 많지도 않으며 많이 뽑는 과가 아니었다.
게다가 얕고 넓은 느낌이어서 석사 때 세부 전공으로 선택한 것은
경영학과 혹은 물류학과가 대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렇다고 전공자를 찾는 곳을 가자니 실험을 직접 하지 않고 설문지, 통계로 석사 논문을 쓴 거라 기업에서 원하는 인재가 아닌 것 같았다.
영어.
지도교수님은 항상 토익 900점을 넘겨오라고 하셨다. 실전 영어도 잘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말이 쉽지 그게 어디 쉬운가.(라고 생각한 이공계생)
물론 내 노력에 따라 달려 있었겠지만
나름 아침 9시 출근, 저녁 10시 퇴근인 직장생활보다 더 힘든? 대학원 생활에 영어 실력을 끌어올리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자소서 쓰기를 시작했다.
매년 폴더를 만들었다.
시간이 지나자 자소서는 상위 폴더가 됐다.
그리고 그 안엔 2015년, 2016년이 생겼다.
처음 자기소개서를 쓸 땐 굉장히 의욕적이었고 그 회사에서 일하는 나를 상상하며 열정 넘치게 기술했지만 탈락. 탈락. 탈락.
몇 번의 자기소개서 작성을 거치니, 문서들이 다 거기서 거기인 '복붙'의 현장이 되어버렸다
학교에서 나가면 그 어딘가에도 소속되지 못한다는 불안함.
지금까지 가족들에게 소위 알아서 잘하는 딸이었던 내가 고학력 백수가 되어 집에 있어야 한다는 불안함이 나를 더 초조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서른 곳이 넘게 작성된 자소서는 형편없었고 졸업논문도 욕심만큼 좋은 퀄리티는 아니었으며 실패자라는 심리로 2015년을 끝냈다.
그렇게 2015년 12월 연구실에서 나와 2016년 1월 운 좋게(?)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2월엔 내가 일하던 곳에서 계약직으로 신분이 변경되었다.
정규직으로 이직을 하고 싶었으나 정출연(=정부출연연구소)이라는 허울? 에 어차피 계약직으로 일할 거. 돈이라도 더 벌자. 그리고 더 허울 좋은 곳에서 일하자 라는 생각으로 이직을 했다.
2015년부터 2018년 현재까지 늘 자소서를 붙잡고 있고 채용공고는 놓치지 않았고 시험과 면접으로 정규직의 자리를 찾았지만 쉽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전문성이라는 게 없었다.
첫 6개월 일했던 곳은 ISO 국제 표준 관련 교육을 하는 팀이었는데
내가 직접 강의를 하는 것도 아니고, 난 그저 강사 스케줄 조율, 인원 모집, 그리고 기타 행정업무가 다였다.
이직을 하게 됐다는 정출 연에서도
엑셀 파일, 응대, 사무용품이나 다과 준비, 회의실 잡기 등이 메인 업무였고 이렇다 할 나만의 업무는 없었다.
같이 일했던 박사님 중 한 분은 팀장님에게
'앞 길이 창창한 사람을 왜 이런 자리에 뽑아놓고 시간 버리게 하냐'라고 하기도 했다.
그때는 그냥 말을 좀 거칠게 하는 사람인가 싶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게 맞는 말이었구나.라는 걸 알게 됐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어쩌다 보니 물 경력만 쌓인 장수 취준생이 되어 있었다.
과연 물 경력 장수 취준생의 도착지는 어디가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