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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궈녁 Feb 27. 2023

첫사랑 다음 챕터로 넘어가기

뜨거운 시작을 딛고 어른이 되어가는 우리를 위해

나는 지금의 와이프와 연애하기 전, 6개월 동안 와이프를 짝사랑했다.

극적으로 와이프와 연애를 하게 되었지만 1년 3개월을 연애하다 헤어졌고, 헤어지고 나서도 3년을 간절하게 그리워했다. 오랜 그리움 끝에 다시 만나 결혼을 하게 됐지만 정말이지 쉬운 시간은 아니었다. 와이프와 내가 지나온 시간의 변곡점들을 하나하나 짚어보면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사이였다. 그럼에도 다시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된 것은 인연이라는 말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포기를 모르는 나를 보며 더 좋은 인연이 있을 거라고 말해주기도 했고, 그만 집착하라고도 했다.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둘은 인연이 아니다"라는 말이었다. 오기였는지 자신감인지는 몰라도 그때 나는 내가 절실하게 바라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결국 이뤄냈다.


집착이 심하다고 손가락질하던 사람들도 결국엔 진정한 로맨티시스트라고 추켜세워주는 것을 보며 역시 모든 평가와 역사는 결과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가끔씩 '다시 돌아가도 그렇게 오래도록 자신을 좋아해 줄 수 있냐'는 와이프의 질문에 나는 대답을 하지 않는다. 너무 힘든 시간이었어서...ㅎ



첫사랑과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그 시간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첫사랑 영화를 즐겨보지는 않는다. 첫사랑이 주제인 영화를 보다 보면 괜히 남들보다 더 깊이 공감되고 영화 한가운데 빠지는 것 같다. "너의 결혼식"이라는 영화도 개봉한 지 한참만에 수많은 친구들의 추천을 받은 끝에 보게 됐다.


첫사랑은 대부분 실패한다. 그래서 첫사랑을 다룬 대부분의 영화도 아련함으로 끝이 난다. 영화 "너의 결혼식"에서 김영광은 실수로 끝나버린 박보영과의 첫사랑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 지독하고 집요하게 박보영을 찾아낸다. 첫사랑이었기 때문에 박보영을 그렇게 오래도록 그리워하고 다시 찾아갈 수 있었던 것 같다. 대부분의 영화가 그렇듯 이 영화도 두 사람의 첫사랑을 다시 이어주지 않은 채 끝날 줄 알았지만 첫사랑의 애틋한 마음을 알기에 김영광이 박보영과 이루어지기를 안절부절 못하며 바랬던 것 같다.


고된 노력 끝에 재회가 이뤄졌지만김영광과 박보영은 또 다른 오해로 다시 헤어지고 첫사랑은 끝이 난다. 이별 후 해외출장을 떠난 박보영은 3년만에 돌아와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며 김영광에게 청첩장을 건넨다. 어이가 없게도 김영광은 결혼식장에 나타나 진심을 다한 축하를 건넨다. 아프고 슬픈 장면이어야 했지만, 왠지 아련하면서도 힘이 나는 장면 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변태 같다고 했던 이 장면이 내게는 김영광이 첫사랑을 딛고 다음 챕터로 나아가는 "날"이라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마치 "500일의 써머"에서 썸머를 보내고 어텀을 새롭게 만나는 주인공처럼.



첫사랑 스토리를 담은 작품들 중 명작은 단연 응답하라 1988이라고 생각한다. 택이보다 늦게 콘서트장에 도착한 탓에 덕선이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연인이 될 기회를 놓친 정환이는 그 망할 신호등에 한 번이라도 덜 걸렸더라면 덕선이에게 먼저 닿을 수 있었겠지만, 결국 누가 더 절실했냐에 따라 인연이 되는 것 같다며 덤덤하게 자신은 인연이 아니었다며 첫사랑을 마무리한다. 택이가 첫사랑을 이룬 장면보다도 정환이가 짝사랑을 마무리하는 장면이 더 기억에 남는 것을 보니, 마무리 또한 첫사랑의 큰 부분인 것 같다. 처음으로 간절하고 열렬히 사랑했던 것만큼 이 사랑의 끝을 받아들이고 마무리하는 것도 청춘이 흘러가는 과정이니까.


첫사랑의 정의를 다시 내리다 보니, ‘모든 것에는 인연이 있고 정해진대로 흘러간다’는 생각은 꿈꾸는 법이나 낭만을 잊고 살아가는 어른의 방식일 뿐 첫사랑이나 청춘과는 어울리지 않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들은 청춘들에게 “꿈을 꾸고, 간절하게 바라고, 열심히 노력하라”고 한다. 그러면 이뤄낼 수 있다고. 청춘들에게 아직 정해져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정해져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만큼 무언가를 바라고, 열심히 간절하게 원한다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는 청춘만의 믿음과 낭만이 첫사랑을 더 아련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처음이어서 서툴고 아팠지만 결말을 정해두지 않고 생에 가장 뜨겁고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이 세상의 모든 첫사랑에 박수와 응원을 보낸다.


그리고 아픔들과 실패들을 딛고 일어나며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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