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직장생활 돌아보기
정신 없었던 결혼 준비와 신혼생활 정착 때문인지, 코로나로 하루하루 기계같은 생활을 하기 때문인지 시간이 가는 것도 모르면서 사는 요즘이다. 확실히 마스크를 쓰면서 시간의 변화에 둔해진 것 같다.
코로나 이전까지는 집을 나설 때 계절이 주는 냄새를 무의식중에 느끼며 시간이 변하고 있다고 생각하곤 했는데, 이젠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여름 겨울이 아니면 새로운 계절이 왔다는 것을 체감하기 힘들다. 아니면 그만큼 봄 가을이 옅여지고 짧아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가을이 온 줄도 모르게 겨울이 오고, 벚꽃이 피고진지도 모르게 꿉꿉한 여름이 온다. 여름이나 겨울을 다른 계절보다 더 쉽게 느낄 수 있는 이유는 자극이 강한 계절이기 때문인 것 같다. 봄과 가을은 나갔을 때 기분 좋은 찰나의 느낌이라면, 여름은 햇빛이 지나치게 강해져서 밖에 나가면 햇살에 살갗이 따갑고 숨쉬기가 벅차며, 겨울은 문 밖을 나서기가 무섭게 내가 입을 수 있는 옷을 다 입은 것인지 되돌아보게 되는 계절들인데 모를 수가 없다.
최근들어 보고 있는 드라마가 2개 있다. 하나는 철지난 미드 슈츠 그리고 다른 하나는 슬기로운 의사생활이다. 두 드라마 모두 전체적인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가지만 한 회차마다 개별 에피소드가 있어 처음부터 보지 않아도 가볍게 볼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의사나 변호사는 사실 모두가 선망하는 전문직이라는 공통점도 있지만, 두 직업이 공통적으로 갖는 특징은 사람을 상대하는 서비스업이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만들어 나가고 가끔은 그 관계로 일이 해결되기도 하고, 해결되지 않기도 하는 직업이란는 점이다.
두 드라마를 보면서 최근 팀과 서비스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됐다.
슈츠의 주인공 하비는 뉴욕에서 가장 성공한 변호사답게 업무적으로는 차갑고 냉철하기만 한 모습을 유지하는 한 편, 자기의 주변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끊임 없이 노력하고 갈등한다. 가족만큼이나 나를 뜨겁게 만들고 아껴줄 수 있는 동료를 만난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일지. 특히 하비같은 능력자가 헌신하려고 하는 동료가 될 수 있는 기회는 얼마나 될까
하비는 늘 “팀”을 강조했다. 팀이 움직이는 방식이고 늘 서로가 어렵지 않도록 돕고 또 돕는 것. 좋은 팀은 사람들을 모으는 것 뿐만 아니라 팀원 한 사람 한 사람이 팀을 위해서 헌신하고, 다른 팀원들 또한 함께 헌신하리라는 신뢰가 쌓일 때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의 의심은 이기주의를 만들어 팀을 깨기도 한다. 공유지의 비극도 결국은 신뢰가 없는 염소무리의 비극적인 이야기 아닌가. 우리 모두가 함께 잔디밭을 잘 가꿔나가며 아껴 먹으면 더 오래 더 많이 잔디를 먹을 수 있었을 텐데, 내가 안 먹으면 다른 염소가 나보다 많이 먹을 것이라는 불신, 탐욕, 이기주의가 낳은 비극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사람이란 이기적 존재기 떄문에, 좋은 팀을 만난다는 것은 정말 큰 축복이다.
슬의생 2에서는 천명태같이 환자를 귀찮아하고 권위적으로 대하는 의사들도 나오지만(대부분 이런 의사가 아닌가 싶다) 많은 의사들이 이럴수가 있나 싶게 친절하고 따뜻하다. 환자의 건강을 진심으로 생각하고
보호자의 마음을 이해하고 끝까지 들어주고 가끔은 보호자보다 더 애타하는 모습을 보면서 권위적인 자리에 있을 수도 있는 의사들이 저렇게 환자의 눈높이를 맞추고 함께 고민하는 병원과 의사들이 실제로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서비스의 일환인 의료 서비스 역시 고객의 눈높이를 맞추는 것, 그리고 그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대변하는 것으로 부터 고객(환자)들의 감동을 끌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백화점에 다니며 좋은 서비스 그리고 좋은 고객응대란 무엇인지 계속 고민하던 중에 노드스트롬의 서비스 경영에 관한 책을 읽었다. 노드스트롬은 고객 중심의 사고를 중시하고 실천하고 있었는데 한국 백화점은 물론 어떤 곳이 이렇게 고객 중심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지 놀랄 수밖에 없었다.
특히 고객이 원한다면 "언제나 환불"이라는 조치
"고객이 원하기 전에 모든 상품을 비치",
"없다면 경쟁사에서 웃돈을 주고 사서라도 전달하기"
고객은 감동할 수밖에 없지만 백화점은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서비스 경영을 실천중이었다. 그럼에도 노드스트롬은 명실상부 미국을 대표하는 백화점 중 하나다. 감동한 고객은 더 큰 매출과 입소문으로 돌아왔고, 노드스트롬은 그렇게 미국에서 의류 패션 잡화의 대표 유통업체가 되었다고 한다
현재 다니는 회사도 아주 조금 변했지만 최대한 돈을 쓰지 말 것, 대리 위로 컴플레인이 올라오게 하지 말 것, 고객과실이면 고객이, 제조업체 과실이면 제조업체가 라는 당사가 손해보지 않을 것들에 대하여만 논의하곤 한다. 물론 이상한 고객들로부터 당사와 직원들을 지키려는 시스템과 원칙들이지만 그런 원칙들로 스스로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는 교육을 쭉 받아온 탓인지(물론, 고객 중심으로 사고하고 고객 눈 높이에서 공감하며 대화하라는 기본적인 스킬도 교육 받는다)
여전히 컴플레인 전화가 오면 고객을 도와주겠다는 생각보다는 어떤 트집과 보상을 원하려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 때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파렴치한 고객들도 많지만 서비스 자체에 대해 불만이고 개선을 원하는 고객들도 많아 진심으로 듣고 공감하고 개선을 약속하는 것으로 불만을 거두는 고객도 많다. 서비스직에 있는 사람으로서 한 번이라도 슬의생의 의사들이 환자 눈 높이에 눈 맞추듯이 고객 눈 높이에 눈 맞추려고 노력한 적이 있는지 돌아봤다. 갑질이라는 단어가 무기처럼 사용되는 세상에서 나를 잘 지키면서도 고객들에게 만족할만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이 들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 좋은 팀을 이루고, 팀에게 또 고객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그러나 무한히 양보하고 제공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적정선에서 나를 지켜내는것. 이것이 백화점이, 의사가, 변호사가, 만들어야하는 이상이며, 결국 지금 내가하는 직장생활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기도 하다. 이제 6년차에 접어든 아직 많지 않은 직장생활 연차지만 그 어느것 하나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밝은 모습으로 사람들을 대하고, 나 스스로 최선을 다할 때 주변 역시 조금씩은 긍정적으로 변해간다는 것이다.
주변에 좋은 사람이 없다고, 오늘 하루가 힘든일밖에 없었다고 기죽지 말자. 나 스스로를 위해 조금 더 밝게 생활하고, 즐겁게 그리고 나를 위해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하면 결국 누가봐도 좋은 내가, 그리고 내가 지나온 하루들이 되어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