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림림 Jun 22. 2022

왜 남주가 공찬일까?

남자주인공의 비밀.

드라마 ‘왜 오수재인가’ 클립 영상을 보다보면 댓글에 서브남주인 최윤상 (배인혁 분)이 더 좋다던가, 윤세필 (최영준 분)하고 더 잘 어울린다고 이야기하는 걸 볼 수 있다.


그런데 생각해본적 있는가? 왜 남주가 공찬인지.


아래에 이어지는 내용을 확인하기 전에 지금 생각하는 답을 종이에 적어보기 바란다.
















정답은 오수재가 욕망하는 것, 이 드라마에서 말하고자 하는 게 공찬이기 때문이다.


정확하게는 공찬이 가지고 있는 ‘순수함’이다.


로맨스가 주요 라인인 작품에서 남자주인공은 반드시 여자주인공이 욕망하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어야하고, 그건 작품의 주제와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야만 한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가?


그럼 윤세필이 남주일 때 드라마가 어딜 향해서 가야할지 생각해보자.


윤세필은 오수재와 비슷하게 사회적으로 성공한 인물이고, 계산적인 인물이다. 이런 인물과 오수재가 붙는다면 오수재는 성공을 욕망하고, 끝없이 위로 올라가는 걸 지향하는 인물이어야 한다.


드라마에서 오수재의 목표가 제일 높은 곳에 서는 거지 않냐고? 인물이 말하는 외적인 목적는 그렇지만, 그게 오수재라는 인물의 초목표는 아니다.


어떤 인물의 초목표는 인물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인물은 본질적으로는 그걸 향해가고, 극도 그걸 향해서 움직인다.


그런 면에서 오수재라는 인물이 정말 지향하는 것은 순수함이고, 그래서 아무 조건 없이 자신을 믿어주고 좋아해주는 공찬한테 호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그럼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최윤상도 순수하게 오수재를 좋아하지 않나요?”


최윤상이 마음이 거짓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최윤상은 너무 머뭇거린다.


자유로윤 성격인 거 같은게 정작 아버지, 형과의 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한 느낌이라 오수재를 향한 마음은 곧게 느껴지지가 않는다.


그게 전적으로 들어난 장면은 6화에서 오수재가 리걸클리닉 학생들에게 거래를 제안할 때였다.


최윤상의 조건, 그건 공찬과 사귀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 공찬의 조건은 없었다.


이 명확한 차이가 느껴지는가?


필자는 공찬이 남주로 마음에 들지만 윤세필이 더 오수재와 잘 어울리지 않냐는 의견이 이해가 안가는 건 아니다.


일단 나이대가 윤세필과 오수재가 비슷하고, 외적인 케미, 대사 케미도 좋다.


거기에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언뜻 더 남주에 잘 어울려 보인다.


하지만 이 작품의 주제는 오수재라는 인물의 회심이다. 그렇기 때문에 윤세필은 남주가 될 수가 없다.


물론 작품 외적인 이유도 분명히 있을 거다.


요즘 비슷한 또래보다는 여주는 나이가 있고, 남주는 어린 경우가 많다. 이에 일부 드라마 팬들은 비슷한 또래가 보기 좋다며 반감을 표하는 경우가 많다.


예전에는 남주가 나이가 있고, 여주가 나이가 어린 경우가 많았다. 주로 남주가 제 1 주인공이고, 여주는 상대적으로 부수적인 캐릭터로 나왔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면서 드라마에서 주도적인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고, 여주가 제1주인공이 됐다.


여주가 제1주인공이 되면 아무래도 더 공들여서 캐스팅할 수밖에 없고, 그렇다보면 극 안에서 남주의 비중, 제작비 여건, 산뜻한 이미지 등을 생각할 때 젊은 남자배우로 눈을 돌릴 수 밖에 없다고 들었다.

(혹시 드라마쪽을 지망한다면 이러한 현실을 알고 있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어쨌든 오늘 이 글을 쓴 이유는 극을 설계할 때 인물의 욕망을 반드시 들여다봐야한다는 걸 말하고 싶어서다.


욕망은 일반적으로 안 좋은 의미로 많이 쓰이고, ‘사랑’ 욕망’ 두 단어가 합쳐지면 신분 상승을 위해 사랑을 선택한다던가,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불륜을 저지른다던가 그런걸 많이 떠올리는 걸 같다.


그런데 모든 사랑, 특히 작품 속 사랑에는 욕망이 투영되어 있다. 사람은 착한데 정말 가난한 사람을 선택하는 것에도, ‘저런 사람을 선택한 나는 괜찮은 사람이야.’ ‘저 사람이라면 내 모든 것들을 받아줄거야.’ , ‘저 사람 옆에서라면 나도 착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욕망이 숨어 있기 마련이다.


작가에게 중요한건 좋은 것이다, 나쁜 것이다라는 가치 판단을 넘어서 그 안에 있는 욕망을 알아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작가의 이전글 왜 오수재인가, 경우의 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