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국립 청주 미술관

by 기록
진천 화폐 박물관에서 미술관까지 40분 이내

진천 화폐 박물관은 4차선 국도 옆에 있는 휴게소와 함께 있는 박물관입니다.

주차장은 무료이며 박물관 우측에는 화장실과 이마트 24. 좌측에는 식당이 있습니다.

입장료에 대해서는 못 찾아서 정보가 없습니다.

박물관 앞에는 진천군 관광 안내도가 있으며 근처에는 진천 문학관과 농다리가 있습니다.

농다리 경우는 거리가 조금 있어서 들리지 않았습니다. 진천 문학관의 경우는 내부에 계단식으로 구성되어 다락방처럼 꾸민 구조물이 있는 도서실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기 좋습니다.

진천에 들린다면 진천 문학관은 꼭 들려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독서 기행으로 학생 인솔하며 다녀온 곳이라 국립 청주 미술관 가는 길에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청주 미술관 주차요금. 주차장 매우 넓고 편하다

국립 청주 미술관 주차장은 미술관만큼 커서 국립 과천 미술관보다 주차하기 더 편합니다.

그리고 요금 또한 2시간 무료. 초과 시 500원. 10문당 200원씩 부과되며 최대 요금은 5천 원입니다.

제 경우는 미술관에서 4시간 조금 넘게 있었습니다.

(너무 오래 있어서 경비분이 붙으신 듯합니다. 이 이야기는 별도로 하고자 합니다.)


내부에 앉아 쉴 수 있는 공간이 충분해서 한 작품을 오래 보고 쉬기 좋았습니다.

다만, 여느 미술관들처럼 관람실 내부에는 쉴 공간이 없어서 관람을 하다가 밖에 나와서 쉬다가 다시 관람하는 방식을 취해야 했습니다. 그래도 과천 미술관 이후에 만들어서 그런지 휴게 공간이 충분해서 천천히 둘러보기 좋습니다.

2층 휴식공간

1층으로 들어가 표를 받고 엘리베이터로 향하면 바로 2층으로 가는 계단과 엘리베이터가 있습니다.

이 반대편에 1층 관람관이 있는데 검표하는 곳으로 바로 가다 보니 2층부터 관람하게 되었습니다.

2층은 미술과 관련된 많은 잡지들이 있습니다.

2층 휴식 공간 바로 앞에 수장고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2층 의자에 앉으면 바로 수장고를 볼 수 있습니다. 멀리서 보는 것을 고려해서 비교적 큰 그림들이나 사진을 게시했나란 생각을 했습니다. 수장고를 볼 수 있도록 한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가까이 가서 소재를 보고 붓 터치 등 소재 활용 모습을 살펴볼 수 없는 것은 아쉬웠습니다. 다행히도 다른 층에 있는 '특별 수장고'에서는 직접 보관된 그림 레일을 움직여 볼 수도 있었습니다.

계단식 구조
계단과 엘리베이터로 통일된 동선

건물 구조는 직사각형으로 오르내리는 곳은 모두 한쪽으로 몰아 두었습니다. 과천 미술관처럼 원형 경사로로 올라가는 것과 같은 재미는 없었습니다.

또한 과천 미술관은 옥상에서 풍경을 보고 앉아있을 공간이 있었는데 청주 미술관은 옥상을 개방하지 않았습니다.(21년 1월 기준)

미술관 이전에는 연초장이어서 일부를 남겨뒀습니다.
3층 미술은행 소장품

3층부터는 전시실입니다.

미술은행 소유 전시물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곳이 일반 전시실이 아니라 수장고임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이 입구가 상시 개방돼있지 않고 커다란 여닫이 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영화에서 보듯이 돌려서 채우는 큰 손잡이가 있었습니다.


수묵화를 가까이서 보면 거치나 멀리서 보면 조화롭다.


가까이서 봤던 거침이 없이 깔끔하고 담백한 수묵화
가까이서 보면 거칠다.
거친 느낌이 있지만 그 덕분에 물방울까지 표현되는 듯하다.
형식은 수묵화이지만 내용은 일반 수묵화와 다른 모습.
바다 관련한 내용 표현을 위해 바다에서 주운 쓰레기들로 만들었다.
위의 작품들과 다르게 멀리서 먼저 본 후 가까이 가서 본 작품.
이 작품에서 가까이 가서 보는 감상 방식을 나중에 한 이유는 전체적 형태가 없었기 때문이다.




가까이서 보면 우연성을 바탕으로 해서 매우 불규칙적이다.


아크릴 물감을 사용하여 개별적으로 다른 무늬 모습을 보여줍니다. 가방이나 티셔츠에 그림을 그리는 활동은 해 보면서 물감이 점성이 있다는 것은 느꼈지만 이렇게 아크릴 물감만 활용하여 작품을 만드는 방식은 처음 본 경우라서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멀리서 보면 매우 조화롭다. 플루오르 카본 라인에 아크릴 물감을 사용. 김태혁 작품.
석채로 그린 그림. 석채는 중국에서 만든 광물질 재료 (세계 미술용어사전 참고)



05년 설립된 미술은행의 의미.


[중간 작품들에 대해서도 글을 썼는데 브런치 오류로 글이 날아갔습니다. 다시 쓰려고 했는데 처음 쓸 당시의 생각이 기억나지 않아 작품을 봤을 당시의 인상과 관련된 감상은 넘어갑니다. 아마도 해당 내용은 시간이 흘러도 못 찾을 듯합니다.]


3층 전시관을 다 보고 나서 벽에 붙은 미술은행 관련 문구를 보았습니다. 미술문화 발전, 미술 시장 활성화, 한국 미술 신장, 문화향유권 신장이었습니다. 이 중에서 미술 시장 활성화와 문화 향유권 신장 측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는 미술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습니다. 도서관이 단순 독서활동으로 토론과 글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확장되기 바라는 의도로 개설해 준, 교육청의 연수만 들은 정도입니다. 해당 연수로는 서양 미술과 관련된 연수나 동화책을 활용한 연수 정도가 있었습니다. 대학교 기준으로 한다면 3학점이나 2학점 정도 되는 교양을 들은 수준입니다. 대학생이었다면 졸업장을 위해서 공부를 하고 중간, 기말고사 시험을 치렀겠지만 수료증을 위하여 간단한 시험과 짧은 글 하나 쓰면 교육과정이 끝나기에 배웠다고 하기에도 쑥스러운 수준입니다. 들으면서도 내용보다는 학생 활동으로 활용할 부분만 집중해서 체계적으로 숙지하지도 못했습니다.


일상을 벗어난 발상의 작품을 통해 나의 일과 삶 속 작은 변화를 얻고자 종종 미술관을 찾습니다.

이런 전공지식이 없는 일반인의 입장에서 미술에 대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미술이나 문학이나 모두 그 시작점은 원시시대 벽화나 노래(음주가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행사 등)와 같은 원시의 삶에서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점차 신분제 사회가 되면서 상류층의 하층민에 대한 노동력 착취와 부의 축적에 미술과 문학 사이 차이가 생겼을 것입니다. 역사 시간에 배웠듯이 과거의 빈부 격차는 누가 더 많이 가지냐 문제가 아닌 먹지 못해서 죽음까지 이르는 생존과 관련된 빈부 격차였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삶 속에서 상류층과 하류층의 문화 형성 과정에서 변화가 생겼을 것입니다.


상류층은 부의 축적을 위하여 하류층을 활용했을 것이고 그에 따른 시간적 물적 여유가 점차 늘어났을 것입니다. 이와 비교해 하류층은 자신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물적 조건 이외, 나머지 시간과 물적 자원은 모두 상류층에 보내야 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늘어난 시간적 물적 자원은 '삶을 유지하기 위해 움직일 필요가 적어진 상류층'에게 일상에 대하여 지루함을 주었을 것입니다. 일상을 유지하면서 하층민들과 같은 생존적 위협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삶이 심심하지 않기 위해 일상적인 것에 변화를 주다 보니 미술 영역으로 확장되었을 것입니다. 하층민이 생존을 걱정할 때 상류층은 남는 시간과 자원을 이런 기본적인 삶에 변화를 주기 위한 자원으로 활용했을 것입니다.


이는 미술작품에 대한 관점을 근거로 들 수도 있다고 봅니다. 현대적 기능성과 디자인을 함께 가는 관점이 생기기 이전의 미술품들을 보면 주로 감상을 위한 작품들이나 상류층임을 나타내기 위한 구분이 반영된 작품이 다수를 차지하는 사례 등을 근거로 제시할 수 있습니다. 한편 미술이 상류층의 전유물화에 대하여 반론도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층민의 문화(탈춤을 위한 탈의 제작 등)도 별도 발달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시간과 물적 자원이 상류층에 비해 한정된 것은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고 봅니다. 이는 어느 미술관, 박물관을 가도 민간의 유물과 상류층의 유물이 제작된 재료의 종류와 값어치 차이가 남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강조: 전공 지식이 없는 일반인의 입장에서 생각을 펼치는 중입니다.)


한편 문학면에서는 하류층과 구분되는 한문학이 미술과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고 생각합니다. 한글 창제 이전에 우리말은 있었지만 기록할 방법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중국 문화와 함께 한자가 들어오고 그 한자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미술처럼 시간적 물적 여유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상류층은 한자로 글을 짓고 시를 창작하면서 여유로운 삶을 즐기고 그것이 가치롭다고 여겨서 과거 제도와 같이 신분을 결정짓는 방법으로 활용을 하여 공식적으로 사회적 질서를 고정시킵니다.

한편, 하류층은 한자를 배울 여력이 없고 중국 문화에 대하여 지속적 경험이 적어서 문화적 요소들에 대한 구분 능력을 키우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하류층의 삶은 일상적인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 또는 상류층의 일상을 지켜주기 위한 단순 활동에만 집중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시간과 물적 자원이 필요한 것은 동양만의 해당사항이 아닐 것입니다. 서양 또한 비슷한 모습을 보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뛰어난 예술가들은 메디치 가문과 같은 후원자의 도움으로 윤택한 삶을 살 수 있었다면 그 이외의 사람들은 그러한 선택을 받지 못해서 미술을 하더라도 삶을 이어가기 어려운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은 미술에 대해 배울 수도 능력을 키우기 위한 연습을 하기도 어려웠을 것입니다.


즉, 문자를 배우는 것에는 시간적 물적 자원이 필요하고 미술을 하는 것에도 시간적 물적 자원이 필요하다는 점. 그리고 상류층이 아닌 사람들은 태생이란 인간이 결정할 수 없는 요소로 인하여 이러한 자원을 누릴 수 있는지 없는지 여부가 결정되었을 것이고 이는 미적 요소에 대한 경험 차이로 미적 요소 구분 능력에도 차이를 주었을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상류층이 아니나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은 미적 요소에 대한 구분 능력이 있는 상류층의 입맛에 맞는 미술 활동을 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미술은 누구나 벽화에 그리던 것이 점차 상류층의 전유물이 되었을 것입니다. 미술을 위해서는 생존 이상의 물적 자원과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상류층이 아니라 상류층을 대상으로 미술을 추구하는 사람은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상류층의 요구에 맞춰야 했을 것입니다. 마치 자신이 그리고 싶은 것은 '현실의 종이 위 재현'이라도 초상화 비용을 받기 위해 자연스럽게 미화와 왜곡을 보여주는 거리의 초상화 화가처럼 말입니다.(미화가 현실 왜곡의 의미를 내포한다고 생각했지만 해당 부분에 문외 하여 의미 차이가 있을 듯하여 별도 제시합니다.) 이러한 미술 활동 모습과 다르게 하층민인 나무꾼(양민이나 노비)이 주변 나무를 활용해 조각을 만드는 경우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다수가 참여하여 형성하는 문화로 보기에는 어려우니 별도 사항으로 봐야 할 듯합니다.


근현대 이전 시대에도 미술을 행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예술가 출신들의 신분이 양반보다 하위에 두었음을 근거로 미술의 기준점은 상류층에 두었음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양반들은 예술을 상류층의 교양이자 하류층과 자신을 구분 짓는 구분점으로 삼았을 것으로 봅니다. 당 시대를 책으로 간접 체함 한 현대의 사람들도 과거에 양반이라면 사군자를 잘 그려야 교양 있는 가문임을 학교 역사시간 또는 다양한 역사를 차용한 드라마(사극이라고 보기에는 당 시대 반영이 부족하기 때문)를 통해 접한 것을 근거로 예상해 볼 수 있습니다.


이와 비교해 문학의 경우는 양반들의 한문학과 비교해 중인 이하의 계층을 중심으로 한 국문(한글, 후기 중세) 문학이 점차 확대되었습니다. 그리고 양반들도 작자 미상의 작품을 즐기고 민간에 떠도는 이야기(서사 문학)도 가치 있다고 생각하여 국문으로도 적고 한자로도 기록하였습니다. 특히 한자로 기록한 경우는 자신과 같은 상류층이 보고 자신처럼 이들 이야기(서사 문학)에 가치를 느끼기를 바라는 희망도 담겼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처럼 근현대 이전 미술은 상류층 중심 문화였다면 문학의 경우는 하층과 상류층 모두 각자의 문화를 가지고 있고 상류층이 하류층의 문학에 조금씩 관심을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미술의 시작은 모두를 위한 사냥법이 적히거나 풍요를 기원했던 그림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상류층 중심이 된 미술과 '하류층이 익히기 어려운 한자'란 특성을 근거로, 미술과 문학(한문학)은 하층민과 별도로 존재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하층민들은 지푸라기와 같은 한정된 재료를 가지고 일상 제품들과 다른 모습의 아름다움을 가진 물건을 만들어 자신의 표현 욕구를 어느 정도 해소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짚으로 만든 인형이나 공예품. 복조리 등) 그러다가 상류층의 눈에 들면 전문적으로 미술 활동은 하지만 현대와 같이 전적인 표현의 자유를 누리지는 못하고 당 시대 상류층의 사회 문화에 부합하는 작품들을 중심으로 생산했을 것입니다. 하층민의 미술이 있어도 재료가 한정적이었을 것이고 하층민의 미술적 재능이 뛰어나도 상류층의 기준에 부합해야 생계와 미술 재능을 이어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와 비교하여 문학은 재료가 필요 없이 '말'만 있으면 가능했습니다. 미술품이 재료를 활용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한정적이고 이를 누리는 사람도 한정적인 것과 비교해 문학은 누가 재미난 노래를 만들면 모를 심으면서 함께 부르고 끼가 많은 사람은 즉석에서 고치기도 할 것입니다. 또한 농담을 좋아하는 사람은 저녁에 둘러앉았을 때 자신이 경험한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것을 들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옮기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조금씩 변했을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만든 사람은 어느 한 사람이지만 그것이 변형되고 누리는 것은 그 노래와 이야기를 듣고 전달하는 다수였을 것입니다. 문학은 상류층이 한문학과 같은 자신들만의 문화를 향유해도 이전부터 하층민의 문학과 향유 방식이 따로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벗어난 이야기이지만 이러한 양상은 지금도 이어진다고 봅니다. 어렸을 때 누구나 잘 알 만한 동요의 가사를 바꿔 부르고 대학생 시절에는 노래 가사 중 들어 있는 가상의 인물의 이름을 내가 아는 사람의 이름으로 바꿔 부르기도 했을 것입니다. 이야기는 학교 활동에서 고쳐 쓰는 경험은 물론 말을 재미있게 하는 친구의 여행이나 게임 경험담 등을 통해 앞서 제시한 문학적 내용을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조금 더 나아가 자신이 좋아하거나 필요한 책(수능 준비를 위한 단편소설 전문 등)의 문서 파일을 만들어 웹에 올리기도 합니다. 특히 문서 파일을 만드는 것은 과거 책을 손으로 옮긴 필사본과 비교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본래 흐름으로 돌아와 미술이 상류층 중심이 되었어도 문학은 상류층과 별도로 흐름을 이어가다가 한글이란 말을 기록할 수단이 생기면서 문학 창작과 향유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을 것이라 봅니다. 책을 빌려서 보고 손으로 옮겨 적기도 하고 조금 더 지나니 돈이 되기에 목판으로 찍어냅니다. 시장에 가면 책을 연극처럼 재미나게 변형시켜 들려주는 사람(전기수)이 있습니다. 이들 문학의 향유는 미술과 다르게 하층에서도 왕성한 활동과 교류가 있었다고 봅니다. 이 과정에서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문학 작품에서는 인물의 모습을 우습게 희화하여 묘사하거나 인물의 행동을 과장하는 등의 표현 방법에 발전도 함께 했을 것입니다. (판소리계 소설로 인한 소설 표현기법의 발전도 있을 것입니다.)


이와 비교하여 미술은 펼쳐나가는 것이 아니라 기준에 부합해야 뛰어난 작품으로 인정받는 속성을 지닙니다. 과거부터 이러한 방식은 현대에도 이어져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그림보다는 미술 평론가들이 뛰어나다는 작품들이 높은 가격을 책정받습니다. 대중들이 해당 작품을 가지고 품는 의아함과 동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미술품에 대한 가치는 '가격'이란 수치를 통해서 대중들에게 그 값어치를 인정하게 만들어 문학과 다른 감동을 줍니다. 이는 베스트셀러에 '수상하지 못하고 유명한 대학 출신이 아닌 작가의 작품이 들어가 있는 것'과 차이를 보입니다. (문학 작품에 대하여 들어보지 못한 작가가 썼어도 읽고 좋으면 끝. 싫으면 읽다가 멈춥니다. 하지만 미술품은 문학의 평론가(영화 평론가 포함)에 해당하는 미술 평론가들이 그 가치를 말하고 가격을 책정하여 그 가격이 고정됩니다. 문학은 평론가가 뭐라 말해도 독자의 판단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노벨상을 수상했어도 내 취향에 맞지 않으면 안 읽고 알려지지 않은 작가나 노벨상 수상작이나 동일한 가격인 점이 미술품과 다릅니다. 추가로 대중들이 영화 평점을 준 것과 평론가의 평점의 차이가 클 경우 관객이 평론가의 전문성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댓글을 달고 이에 대하여 다수가 공감을 표시하기도 합니다.)


시대가 흘러서 노래나 이야기를 특출 나게 잘하는 사람이 생기고 그런 사람들이 노래나 글만으로 생계를 이어갈 수 있게 됩니다. 미술품과 다르게 이야기를 재미있게 구연하는 사람은, 재료도 필요 없고 그저 자신의 기억력과 연기력이면 생계유지가 가능했을 것입니다.

게다가 저작권이 생기기 전에 이야기는 누가 지은 것인지도 모르는 '작자 미상' 상태로 많은 사람들이 '필사(손으로 옮겨 적음.)'를 합니다. 그렇게 저작권이 보호되지 않아 버는 돈이 현대보다 '적거나 없어도' 이야기는 만들어지고 재미가 있으면 옮겨 적어서 또는 전기수와 같은 사람들에게 계속 전해집니다. 오늘날에는 불법 복제물이 많아도 1화당 300원 내외의 판매 가격으로 판매되면서 읽힙니다. (이들 작가들의 출신 대학이나 유학 등의 배경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문학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친다면 미술 영역은 그렇지 못하다고 봅니다. 평등했던 벽화 시대 이후로 뛰어나다는 미술 작품은 미술관과 박물관에 걸린 작품을 제외하면 여전히 부를 축적한 사람의 재산으로 인식됩니다. 또한 역사 속에서도 뛰어난 작품은 상류층에게 건네는 정성의 표시로 활용되었습니다. 현대에 들어 일부 작품이 대중에게 공개되지만 여전히 미술은 일반 사람들에게 먼 존재라고 생각됩니다.


작가에 대한 인식도 변했습니다. 과거에는 글을 아는 사람이 창작을 하니 자연스럽게 작자 미상이어도 글(한문)을 배울 여력이 있는 중인 이상이었음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와 같은 암흑 시기에는 지식인들이 글을 썼기에 잠시 글에 대한 권위가 높아져서 교수와 일본 유학을 다녀온 지식인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진 시기였다고 봅니다. (동인지에 작품을 기고한 작가들의 정보를 보면 다수가 일본 유학이거나 어려운 시기 대학을 졸업한 것 등을 근거)그리고 그들의 작품은 지금도 교과서를 넘어 수능 지문에까지 등장합니다. 하지만 현대에 오면서 점차 변합니다. 개인 출판물이 생기면서 작가의 출신 대학이나 과거 이력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작가의 소개 없이 필명만 제시되어도 그 내용만으로 대중들에게 평가받습니다. 이는 사회적으로 지적 수준이 올라가서 내용을 검증할 방법이 많기에 이전처럼 출신 대학이나 권위 있는 대회 수상과 같은 사전 검증이 문제 되지 않는 모습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는 마치 간단하게 기록한 인터넷 게시물에 대하여 해당 분야 전공한 사람이 댓글을 다는 현상을 통해서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는 서로 다른 자료를 비교하는 교차검증 등의 활용) 이렇게 쓰는 사람들도 다양해졌고 쓰는 사람과 기록할 수단만 있으면 누구나 쓸 수 있고 이것을 누구나 읽게 되었습니다.

[첨언. 대학 교수 출신이라도 일본 기업의 지원을 받고 사실을 왜곡하며 근거 없는 글을 쓰는 경우도 있기에 이런 시대적 특성이 작가의 배경을 중시하는 글보다는 글 내용 자체에 집중하게 되는 환경을 조성한다 봅니다.]


이와 비교하여 미술은 그렇지 않습니다. '다수의 선택을 받아 다른 매체로 변하며 추가 수익을 창출하는 문학'과 다르게 미술 작품의 가치는 미술 전공자들과 부유한 사람들이 결정한다고 봅니다. 문학은 공통 교육으로 다수의 사람들이 읽는 것에 익숙합니다. 그래서 머리나 가슴을 울리는 작품을 읽는 사람들이 선별하고 다수가 좋은 작품이라 선택합니다. 그러나 미술품은 그렇지 않습니다. 많은 이들이 선택하여 만화로 나오고 굿즈라는 모형들이 나오고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해서 창출되는 이익보다 더 큰 금액이 특정 미술품에 책정되는 경우를 뉴스에서 접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수의 선택으로 형성된 문학이 만들어 낸 수익에는 수긍하나 작품의 기사문을 보는 사람이 작품에 책정된 해당 가격에 대하여 수긍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는 아마도 미술품은 다수의 인정을 받은 것이 아니라 미술을 전공한 소수 중 미술계 내에서 상류층에 위치한 사람들이 값을 책정하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까 합니다. 이는 작품에 대한 '접근성부터 문학과 차이나는 문제'가 작용하는 것도 하나의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미술은 여전히 상류층의 전유물로 있었던 특성에서 많이 벗어나지 못했다고 봅니다. 반면 문학은 한글로 누구나 기록할 수 있게 되면서 대중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잠시 일제 강점기에 지식인들 중심이 되었다가 현대에는 다시 대중성을 지녀 출신 대학이나 수상 이력이 아닌 내용으로 선택을 받는 시대가 되었다고 봅니다.


미술 은행 전시관을 나오면서 미술 시장 활성화, 문화향유권 신장에 눈이 갔습니다. 문학이 작가가 중요하지 않고 대중들의 평가로 그 가치가 정해지고 그 작품이 만화나 영화와 같이 확장성을 가진다면 미술은 태생 자체가 상류층적 속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문화 향유권 신장(=미술 문화의 대중화)의 일환으로 작품을 전시하는 것은, '옥션에 참여하거나 미술을 전공한 사람들이 가치를 책정'하는 과정에 일부 부유한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방향 제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대중들이 선택하는 문학과 달리 미술품은 누군가의 선택으로 제시되고 관람도 일정 방향으로 하나하나 봅니다.(첨언 참고, 문학이 목차를 보고 원하는 부분만 골라 보거나 독자가 선택하는 것과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일반 대중들은 미술관의 제시 내용과 그것에 따르게 하는 문화를 공고화하는 작업의 진행이라 봅니다.

미술 은행 전시관을 나오며 가볍게 넘길 수 있는 문구가 왜 눈에 밟혔는지 그 당시 복잡한 심경을 자세히 풀어내기 어렵습니다. 다만, 나름의 생각을 적어보면서 아마도 미술이 상류층의 문화로 인식되어 인식적 거부감이 작용된 것은 아닌가 나름의 잠정적 결론을 내려 봅니다.


첨언. 제 경우 사람이 없으면 동선을 조금 어기면서 봅니다. 그럴 때 해당 관을 지키시는 분이 제가 있는 쪽으로 움직이시거나 눈빛을 보내시는데 저는 그 눈빛이 마치 당신은 교양이 없다는 것으로 읽힙니다. 하지만 책을 고르고 훑은 후에 어떤 것은 자세히 보고 어떤 것은 책장에 꽂듯이 미술품도 그렇게 봅니다. 규칙은 따르는 것이 당연하지만 규칙의 목적이 관람객들을 방해하지 않기 위함이 본질임을 이해한다면 오히려 관람객이 없는 경우는 동선은 관람자가 만드는 것이 미술품과 관람객 사이 소통을 형성하기 위한 본질에 부합하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예. e작품을 보다가 입구쪽에 있던 a 작품과 관련성이 떠올라서 다시 돌아가서 보는 경우 등) 이러한 미술의 대중화에 대한 생각이 변하면 언젠가는 모든 미술관이 '과천 미술관의 원형 전시실처럼 동선 없이 자유롭게 보는 것'이 자연스럽고 작품의 가치는 관람객(독자)이 결정하는 날이 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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