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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꽁치킬러 Nov 01. 2022

스위스의 '시월드'란

나의 시부모님 이야기 

결혼 전에는 한국 드라마에서 그리는 시월드가 그저 극적 재미를 위한 장치인줄만 알았다. 그런데 한국의 친구들이 하나, 둘 결혼을 하면서 현실로 보고듣는 시월드는 드라마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 않았다. 웹상에 시가와의 갈등을 성토한 글들이 넘쳐나듯, 자동차가 자율주행을 하는 21세기임에도  K-시가는 여전히 굳건히 존재한다. 결혼 후에야 파악하게 된 시월드의 실체에 놀란 한국의 친구들은 하나같이 내게 묻곤했다. 

'스위스에도 시월드가 있어?'


로즈마리와 페터. 남편을 낳아주신 어머니와 아버지이자, 나의 시부모님이다. 

각각 54년생, 51년생이신 두 분은 20대 초반에 스위스 제네바에서 만났다. 밝고 쾌활한 로즈마리는 프랑스어권인 제네바에서 오페어(Au pair, 젊은이들이 타언어권 가정에 일종의 육아 도우미로 들어가 아이들을 돌보면서 언어실력을 늘리고 용돈을 버는 임시직)로 일하며 열심히 불어실력을 닦고 있었고, 과묵한 청년 페터는 맡은 일 때문에 제네바에 와 있던 참이었다. 같은 언어를 쓰는 독일어권 친구들과의 주말 모임을 통해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취리히 출신이라는 공통점과 서로의 매력적 외모(지금은 부정하고 계심)에 이끌려 데이트를 시작했고, 사귄지 4년만에 부부가 되어 고향 취리히에 신접살림을 차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 마틴, 딸 릴리안, 아들 마티아스, 이렇게 세 자녀가 차례로 태어났고, 단란하고 행복한 '뮐러-슈미드 가족'의 가계는 지금까지 4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두 분의 젊은 시절

남편에게 반한 포인트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침착한 성격이 큰 지분을 차지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크게 당황하거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 남편의 침착함은 감정 표현이 격하고 성미가 급한 나와는 너무도 달라 듬직하고 매력적이었다. 머리숱이 적은 것부터 어쩐지 부처를 닮은 그의 차분함이 어디서 나왔을까 궁금했는데, 시부모님, 그 중에서도 시아버지가 딱 그랬다. 시아버지는 언제나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감정적 동요 없이 딱 필요한 말과 행동만 하시는 분이다. 이렇게 표현하니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같지만, 그 침착함 속에서도 따스한 마음과 정을 나눌 줄 아시는 멋짐 또한 갖고 계신다. 거의 50년 넘게 유지하고 계신 근엄한 콧수염 아래로 언뜻 비치는 빙구웃음(?)이 시아버지의 반전 매력. 

반면, 시어머니는 감정이 매우 풍부하고 아이 같은 호기심과 순수함을 지닌 분이다. 인싸도 이런 특급인싸가 없어서, 밖에만 나갔다 하면 주변 사람들과 거리낌없이 스몰토크를 시전하시는 바람에 언제나 외출 시간이 예상보다 길어지곤 하지만, 그 어떤 오지에 떨어뜨려놔도 살아남을 것 같은 이런 분 스위스에 정말 흔치 않다. 길바닥의 잡초도 허투루 보지 않고, 마당의 달팽이와도 대화를 나누시는 천상 '디즈니 백설공주' 재질. 

내가 남편의 여자친구로 처음 스위스에 인사를 드리러 왔을 때부터 두 분은 나를 진짜 가족처럼 따뜻하게 대해주셨다. 그때는 독일어가 익숙치 않았음에도, 두 분이 지닌 따끈한 마음씨는 언어의 장벽을 뚫고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두 분을 보면서 내가 자란 환경과 완전히 다른 '사랑으로 똘똘 뭉친 행복한 가정'이 어떤 것인지를 실감했고, 이런 가정에서 자란 남자라면 평생 함께 해도 괜찮겠다는 확신이 들어 결혼을 결심했다. 

가부장적인 풍토 속에서 여전히 왕노릇을 하려드는 수많은 한국 시아버지들, 며느리를 함부로 대하는 한국 시어머니들과는 달리, 나의 시부모님은 대접받기를 거부하고 언제나 민주적인 자세로 가족들을 맞는다. 일례가 가족 모임. 일년에 한두 번, 시부모님 댁에서 온 가족이 모이는데, 이때 접시 나르기, 식탁 차리기, 설거지, 뒷정리는 시아버지의 몫이다. 요리 부문도 넘보고 계신데, 시어머니 요리 솜씨가 워낙 뛰어난 탓에 메인 셰프인 시어머니의 아성은 아직 무너뜨리지 못하는 대신 전채요리나 샐러드를 만들거나 시어머니 보조를 담당하며 무시할 수 없는 활약을 펼친다. 자신의 요리 솜씨가 부족하다는 자성 아래, 10년 전부터 규칙적으로 '남성 요리 교실'에 나가 차곡차곡 실력을 쌓고 배운 내용을 가족들 앞에서 실천하려 열심히 노력한 결과 이제 그럴듯한 요리를 척척 만들어내어 가족 모두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다. 

시어머니께선 자녀들과 배우자, 손주들 모두 자기 집을 방문한 이상 '손님'이고, 손님에게 절대 일을 시켜선 안된다 강조하시며 우리를 끝까지 손님처럼 최선을 다해 대접해 주신다. 결혼 초기, 한국에서 자라 어쩔 수 없이 '착한 며느리' 병에 걸린 나는 시부모님으로부터 손님 대접 받는게 영 어색해서 설거지라도 하려고 기웃기웃 나섰는데, 시어머니는 그런 내 손을 잡고 '일단 이 집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너는 내 손님이야. 손님이 왜 설거지를 하니?'라며 신선한 문화충격을 선사해 주셨더랬다.

아시아 국가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는 스위스 사람들이기에, 한국인 며느리를 맞았을 때 한국에 대한 잘못된 지식이나 편견을 갖고 무례한 질문을 던지는(예: '한국에도 전자렌지 있니?'--->농담인가 싶겠지만 내 친구 시부모님이 실제로 물어본 질문이다... 당신들 쓰시는 핸드폰이 어느나라서 만든건지 생각 좀 해보시지...) 경우도 많지만, 우리 시부모님께선 아들이 한국인과 결혼한다는 사실을 안 순간부터 한국에 대한 방송과 책을 부지런히 찾아보시며 지식을 쌓았고, 2019년에는 직접 한국에 오셔서 한국 사회에 대해 더 많은 걸 경험하셨다. 내가 가이드를 맡아 부족함이 많았던 일정이었음에도, 지금도 여전히 그 때의 기억을 즐겁게 추억하고 한국의 아름다움을 칭송하면서 며느리의 자긍심을 세워주고 계신다.  

물론 이렇게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는 사이가 되기까지 우여곡절도 있었다. 특히 서로의 성향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결혼 초기에 그랬다. 나를 너무 친자식처럼 사랑하신 나머지 정말 친자식처럼 스스럼없이 대하셨던 게 문제였다. 서프라이즈!를 좋아하시는 시어머니는 남편 출근 후 나 혼자 있는 우리집에 연락도 없이 꽃다발을 들고 뿅! 나타나 커피를 마시며 수다 떠는 걸 즐기셨는데, 집에서 일하는 프리랜서 번역가인 내게 시어머니의 이 '소소한' 서프라이즈 방문은 하루 스케줄을 뒤죽박죽으로 만드는 '거대한' 사건이었다. 특히 원고 마감을 앞두고 한참 바쁘게 일하느라 대충 라면에 김치로 점심을 때운 날, 떡진 머리에 김치국물 튄 티셔츠 차림으로 갑자기 찾아온 시어머니를 맞는 건 며느리인 내겐 너무나도 부담스러운 이벤트였다. 다행히 이런 나의 고충을 이해한 남편이 오해가 없도록 내 입장을 잘 전달해 줬고, 그 일로 깨달음을 얻으신 시어머니가 언제나 내 의중을 먼저 묻고 방문하시면서 서프라이즈!는 사라지게 됐다. 그 이후 시어머니는 혹시 자기가 실수하거나 불편하게 하는 일이 있으면 먼저 말해달라고 정중히 부탁하셨고,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입장 차이를 헤아리고 배려하면서 더 끈끈한 고부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이번에 딸을 낳으면서, 나는 손자만 다섯을 둔 두 분께 처음으로 손녀를 안겨드린 며느리가 됐다. 며칠 전 딸의 백일 축하 겸 두 분을 집에 초대해 다과를 함께 했는데, 시어머니께서 나를 안아주시며 아가가 너무 사랑스럽다고, 예쁜 손녀를 낳아주어 고맙다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셨다.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어머니를 보내셨다'는 말이 있다. 내 경우에는 스위스로 또 하나의 부모님을 보내주신 것 같다. 서로 언어도, 문화도, 생김새도 다른, 저 멀리 동북아시아에서 온 며느리를 가족으로 보듬어주시는 두 분이 너무나 감사하다. 시부모님 좋아하시는 한국음식으로 두 분에 대한 내 애정을 자주 보여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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