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마고 Jun 07. 2021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집

부산시 남구 대연동

가끔은 그런 책을 만나기도 합니다. 꼭 같은 주제로 내 이야기를 쓰고 싶게 만드는 책, 작가가 경험한 이야기와 나의 것이 이루는 교집합이 작은데도 책 한 권을 아우르는 주제에 홀라당 마음이 빼앗기는 그런 책을요. [책 한 권에서 시작된 이야기들]에는 저에게 영감이 되어준 책의 주제를 차용하여 쓴 이야기를 담습니다.




집에 대해 쓰기 위해 나는 최초로 기억하는 집을 떠올리려고 애쓰며 수십 년도 더 된 과거로 날아가야 했다. 살았던 집들을 죽 써두고 보니 내가 기억하는 첫 보금자리인 대연동 집만이 유일하게 우리 가족이 살았던 주택이었고, 지금은 그 터가 아예 없어져 버린 곳이었다. 동네 재개발로 고층의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대연동 주변 일대의 풍경은 모두 바뀌어버렸다. 나는 이 글을 쓰기 위해 엄마의 기억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기억하는 것보다 기억나지 않는 게 더 많은 집. 그래서 대연동 집은 생김새나 디테일보다 개구지고 아이다운 장난을 치던 나의 유년기 배경으로서만 기억되고 있었다.


지금 그 동네에는 오랜 기간의 재개발 공사를 마치고(요즘 부산은 온 동네가 다 재개발로 아파트를 쌓아올리고 있지만) 고층의 브랜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다.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온 나는 이사를 마친 할머니 댁을 찾아갔는데 ‘여기가 예전에 살던 대연동 그곳’이라는 엄마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살펴봐도 기억 속 옛 동네의 모습과 지금의 풍경이 겹쳐지지 않아 그리움은커녕 추억을 그려볼 수조차 없었던 것이다. 평생을 부산에서 살고 있는 엄마는 그래도 옛 풍경이 기억나는지 차를 타고 가는 동안 ‘여기가 거기고 저기가 거기야’ 하며 내게 예전의 기억을 상기시켜주려 애썼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대연동 집은 이렇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2층 주택, 커다란 원형의 손잡이가 달린 은색 철문. 작은 마당을 지나 계단을 올라(올랐나?) 가면 현관문이 있었다. 문을 열면 곧장 보이던 거실 겸 부엌 공간. 집에는 총 세 개의 방이 있었는데 큰 방을 부모님이 쓰시고 작은방은 동생과 내가 주로 놀던 공간이나 그랬다. 가장 구석진 곳에 모니터가 뚱뚱한 옛날 컴퓨터를 둔 창고 같은 방이 있었는데 엄마가 이곳엔 보일러를 넣지 않아서 늘 바닥이 차가웠던 걸로 기억한다.

 

어렴풋이 기억하는 대연동 집 구조



나는 집의 구조가 떠오르는 대로 타이프를 치다 말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기억이 맞는지 확인했다. 엄마는 나의 묘사를 들으며 기억의 오류를 하나씩 짚어주었다. 우선 바닥이 차가운 컴퓨터방은 창고가 아니라 아빠의 서재였다는데 나는 페르시아 프린스 같은 게임기억이 워낙 강렬해서인지 컴퓨터가 놓여있던 위치 빼고는  구조도 떠오르지 않았다.  방에 책상과 책이 있었다는 말은 처음 듣는 것처럼 생소했다.


그러다 엄마는  앞에서 나와 동생이 나란히 분홍색 민소매 원피스 입고 찍은 사진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기억의 바다에 ‘분홍색 원피스라는 미끼를 던졌고 순식간에 잊고 있던 기억 한 장면을 낚아챌 수 있었다. 대문을 등지고 서있던 우리,   무렵 길게 누운 햇빛이 오른쪽 뺨을 강렬히 비추었던 , 아스팔트 바닥을 딛고 섰던 작은 . 소녀의 발그레한 볼처럼 옅은 분홍색 원피스 끝자락에는 아일릿 펀칭 장식이 있었다. 내가  이미지를 소중히 여기며 살아온  아님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던져준 미끼 만으로  27 전의 풍경이 순식간에 소환되자 나는 잃어버렸던 물건을 되찾은 아이처럼 뻤다. 내가 엄마에게 대연동 집에 대해 물었을  엄마도 이제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는다고 했지만 집에 대한 추억 흐려져도 사랑하는 자식에 대한 기억만큼은 선명하구나 싶었다. 엄마가 끄집어내준 기억 덕분에 나에게 대연동 집 하면 떠오를 풍경이 하나  생긴 셈이었다. 이런 기억은 월척이다.


모녀는 시간을 더듬어 기억의 퍼즐을 맞춰나갔다. 나는 엄마의 기억을 참고삼아 대연동 집을 상상해  뿐이었다.  상상을 배경으로 깔아둔  내가 기억하는 자잘한 사건들을 덧입혀본다. 동네 친구 혜리와 동생을 괴롭혔던 , 소풍 가던  헐레벌떡 뛰어가 봉고차를 탔는데   신발은 동생 것을 신어 하루 종일 주눅이 들어있었던 , 냉장고에서 몰래 꺼낸 외국산 치즈를 맛보고 콤콤한 맛에 퉤퉤 뱉어냈던  같이 아주 사소한 것들을.


우리 가족은 대연동 집에서 1년도  거주하지 않았다고 한다.  집에서 사는 동안 쌓은 추억이 많을지라도 이제는  기억나지 않아서 돌아가고 싶을 만큼 그립진 않지만 내면에 잔재된 기억의 파편을 따라가   없다는 사실만큼은  아쉽긴 하다. 이제 그곳은 허물어져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니까 로드맵으로도 염탐해   없고 찾아가  수도 없게 되었다.  그저 나와 우리 가족의 기억 속에 자리할 뿐이다. 3, 6  딸을  삼십  중반의 부부가 얼마간 가정의 모습을 꾸렸던 곳으로, 어린이였던 내가 명랑하게 뛰어놀던 따뜻한 여름날 같은 이미지로  마음속에 남은 집이 되었다. 하지만  모를 일이다.  집에서 찍은 사진을 보다가 문득 어떤 날의 기억이 불쑥 튀어나올지도 모르니까. 그러면 우리는 과거로 돌아가  시절을 이야기하고 잠시나마  집에 머물러볼 수도 있는 것이다. 기억 속에서.


매거진의 이전글 방과 집을 숱하게 옮겨 다닌 내 삶을 반추해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