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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뭄씨 Jun 13. 2023

18주차. 고령산모라 억울한 그녀의 사정

동안인 줄 알았는데 노산이라니(양수검사와 니프티검사)


  병원에서 생물학적으로 ‘고령’이라 공식 판정받았습니다.

  부끄럽지만 스스로 ‘동안’이라 생각해 왔고, 사회성 좋은 후배들에게 ‘애 엄마인지 몰랐다’, ‘아가씨 같다’라는 아첨 섞인 말도 종종 들어왔었단 말입니다. 모임에 따라서는 아직 언니들 수발러 역할은 제 몫입니다. 믿을 수 없습니다. 고령산모라니, ‘고령’이라는 딱지가 찍히고 보니 이제 눈가의 주름이 보이는 듯도 합니다.  

    

  임신 12주 차가 되면 ‘대략적인’ 기형아검사를 두 차례 시작합니다. 초음파 목투명대 두께검사(목투명대가 3mm 미만이어야 정상), 피검사 등을 통해 태아가 다운증후군이나 파타우증후군 위험이 있는지를 파악해 보는 절차입니다. 전부터 걱정 많이 했는데 동네 산부인과에서 진행했던 이 1,2차 기형아 검사를 위풍당당하게 ‘저위험군’으로 판정받았습니다.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출산병원으로 전원을 준비하던 중이었습니다. 출산병원과 담당교수님을 정하고, 마지막으로 병원에 가기 전에 ‘검사지’를 챙겨 받기 위해 동네병원에 들렀을 때 사달이 났습니다. 검사지 파일을 넘겨받고 무심하게 훑어보는 중 다음과 같은 문구가 싸늘하게, 비수가 되어 날아와 동공에 박혔습니다.     


  ‘고령산모로서, 양수검사 등 추가검사가 필요할 수 있음’     


  첫째를 낳고 5년. 임신이라는 리그에 좀 느지막이 다시 출사표를 던진 죄밖에 없는데, (그것도 30대 중반에 가까운 후반) 병원에서 아주 ‘공식적’으로 ‘생물학적‘으로 퇴역군인, 노땅 취급을 받다니.     




 

 세계보건기구(WTO)에서 규정하는 고령 임신의 기준은 35세 이상입니다.

  이때부터 자궁의 노화가 시작되고, 호르몬의 변화로 기형아 출산의 위험이나, 합병증, 유산위험이 높아진다고 합니다. 때문에, 병원에서는 35세 이상이 되면 위험 노출비율이 높다고 보아, 임신 전&후에 추가적인 검사 및 특별한 관리법 등을 권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다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예외’이지 않을까 방심했습니다. 혹시나 내 ‘신체상태‘는 ‘젊음’의 범주에 있지는 않을까 하고요, 워낙 그간 수치가 좋은 ‘모범 산모’라 자부했었거든요.    

  

  출산병원 교수님과 대면 자리.

  허겁지겁 고령산모에 대한 건을 안건으로 상정했습니다.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교수님은 “기형아검사에서 저위험군으로 나오긴 했지만, 추가적인 검사가 불필요하다고 단정을 할 순 없습니다.”라며 굳이 이중부정법을 써가며 애매모호하게 답변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윽고 이어지는 첨언에 불안감이 증폭되었습니다.  

  “이 병원에서도 산모가 저위험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운증후군’ 아이를 출산한 케이스가 올해만 2건이나 있어서요”

  추가검사 ‘땡땡이’를 노렸던 내게 의사 선생님은 ‘니 정신상태가 어려빠졌구나’하는 철퇴를 안겨주는 것 같았습니다. 정신이 번뜩 들었거든요. 양수검사든 니프티검사든 추가검사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정말 현실적으로 기형아 출산위험이 높다는 살벌한 경고였습니다. 내가 나이가 많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말입니다.     


  귀부터 볼까지 피가 식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두 분이나 되는 산모가 검사 없이, 예고 없이, 세상 가장 축복받은 날 지옥을 경험했겠구나. 순식간에 머릿속 온도가 극단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주사 맞기 싫어하는 ‘어린아이의 심경’에서, 1분 1초도 더 빨리 수술을 원하는 ‘급성맹장염 환자’로.


  당장 ‘양수검사’를 진행하기로 하고 다음날 오전 첫 타임으로 예약을 잡아놓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양수검사는 직접 자궁에 침이 침투하여 양수를 빼내서 이를 통해 기형아검사를 하는 ‘특단의 조치’입니다. 물론, 니프티(NIPT) 검사라는 보다 안전한 방법도 안내를 받았으나,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2주가 걸린다는 얘기를 듣고 거절했습니다. 불안 속에 하루를 더 피 말리느니 빨리 ’확실한 ‘ 결과를 알고 싶다는 생각이었던 거예요. 당시에는.

  물론, 집에 도착하자마자 머릿속에서 ’ 양수검사‘에 대한 후회와 결심이 흔들렸습니다.

  ‘양수검사냐, 니프티냐.’

  우리나라의 고령 임신의 비율이 2002년 8.2%였던 것에서 2022년 35.7%로 급등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35% 이상이나 되는 임신동지들이 지금 나와 같은 고민을 통과의례처럼 치르고 넘어갔다니, 다들 새삼 존경스럽습니다.     





  “아.. 태아 위치가 안 좋아서 양수검사는 힘들 것 같은데요”

  불행인지 다행인지, 결론적으로 다소 위험한 양수검사는 피하게 되었습니다. 초음파로 위치를 확인해 보니 뱃속에 있는 우리 ‘땡귤’이가 내 자궁을 꽉 채우고 있어서 바늘이 들어갈 여유 공간이 넉넉지 않았던 겁니다. 무리해서 양수를 채취하다간 감염의 위험성과 유산의 위험까지 있기에 바로 포기했습니다. 또 수술대도 아니고 배초음파를 보는 곳에서 진행되며 마취도 없이 진행되는데 조금이라도 위험하면 안 되겠다 싶더라고요. 피검사인 니프티 검사를 진행하기로 하고, 제발 땡귤이가 ‘저위험군’이길, 나의 ‘나이 듦’이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지 않길 바라며 2주간을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산모님, 정상으로 나왔습니다.”

  결과는 1주 만에 결과 통보를 받았습니다. 세상 다행이다 싶고, 또 너무 호들갑 떨었나 싶고. 남편과 이 좋은 소식을 바로 공유했습니다. 김 빠지게 남편은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퉁명스럽게 한마디 덧붙입니다.

  “그럴 줄 알았지 뭐. 그러니까 애는 어릴 때 나아야 한다니까”

  저위험군 최종판정 소식에 당시엔 기분 좋은 마음에 그냥 넘어갔는데 남편의 말을 곱씹을수록 애매한 수치심이 듭니다. 사실, 조금 늦게 둘째를 가졌을 뿐인데 며칠 잠 못 자면서 아이 걱정했지, 70만 원 추가비용도 들지, 나이 많다고 자존심도 상하지. 뒤늦게라도 둘째 낳는 건 애국 아닙니까? 고령산모를 위한 배려가 필요합니다. 가령, 호칭을 ‘소중산모’나, ‘골드산모’로 해준다거나...!!     


  내친김에 우리 ‘소중산모’ 동지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하고 남편에게 반박할 목적으로 30대 중반 이후 임신을 하면 좋은 점을 한번 찾아봤습니다.


  1. 늦은 나이 임신은 책임에 충실하고 아이 키우는 일을 즐긴다.

  2. 산후우울증을 적게 겪는다.

  3. 아이 양육을 위한 재정상태가 여유롭다.

  4. 아이들의 IQ가 높다.


  등등 전문가들이 꼽은 장점입니다. 정신승리로 마음의 위안이 좀 되는 느낌입니다. 특히, 40대 이상 출산한 산모들은 임신과 관련한 호르몬 중 프로게스테론, 에스트로겐 등이 뇌 조직을 발달시키면서 뇌구조학적으로도 긍정적인 영향을 받는다는 결과도 있다고 하네요. 아이도, 산모도 똑똑해진다니요! 40대는 아직 아니지만, 어쩐지 임신하니 글도 더 잘 써지더라니 이유가 있습니다.      


  이 땅의 고령산모(소중산모, 골드산모) 모두 파이팅입니다!! 순산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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