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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뭄씨 Jun 16. 2023

수국천국 혼인지와 6세딸 시집보내기

기가차지만 귀엽습니다


 “짝꿍이 이렇게 무릎 꿇고 반지를 줬어.”

 세상에, 우리집 맹랑한 6세 딸내미가 외간 짝꿍이랑 덜컥 결혼식을 올리고 왔습니다. 아직 상견례도 안했고 예복예단도 교환하지 않았는데 거참 성미 급한 꼬마신랑신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초여름 수국이 흐드러진 유서 깊은 백년가약의 메카! 제주 ‘혼인지’에서 야외 혼례 장면을 보고난 이후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만 한 것이 혼인지는 지금 로맨틱 그 자체 입니다.       





 저만 몰랐지 서귀포 성산읍에 위치한 이곳 ‘혼인지’는 수국의 성지로 도민들에겐 꽤나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카멜리아힐, 휴애리와 함께 BTS급 수국 간판스타랍니다. 남편회사의 찐 제주도민 동료들이 ‘강추’하며 수국의 개화정도도 중계해준 덕분에 우리가족은 시기를 잘 맞추어 혼인지를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꼬부랑길을 굽이굽이 들어가 도착. 주차장부터 팡팡 하늘색, 보라색 팝콘이 폈습니다. 팡팡! 어깨춤이 절로 나네요. 올해는 입덧 때문에 벚꽃구경도 못했었거든요. 서운함을 사르르 녹여주는 여름꽃놀이 축제현장에 오자고 한 남편 칭찬해~!     


 사실, 이맘쯤 제주는 온통 수국축제 현장입니다. 마을회관 앞, 가로수 아래, 공중화장실 옆으로 하루가 달리 수국꽃잎이 부풀어 오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인지는 다른 곳과는 다른 뭔가 색다른 느낌이 있습니다.      

 먼저, 전통적 분위기가 더해져 색다른 느낌을 냅니다. 다른 곳이 방실방실 피어나는 어린 소녀 같다면, 이곳은 청초한 새색시의 느낌에 가깝습니다. 연못 나무다리 옆으로, 삼공주추원사의 처마 아래로 예스러운 풍광과 방실방실 화려한 꽃봉오리가 절묘하게 어울립니다. 하늘 색 풍성한 꽃잎을 구름삼아 선녀가 금방이라도 내려올 것 같습니다.      





 또, 혼인지의 수국은 성인 키만큼 훌쩍 높은 곳까지 꽃봉오리가 올라와 있습니다. 꼿꼿하게 서서도 수국 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엄청난 장점이 있더라구요. 그간 수국 보러오면 꽃이랑 사진 찍으려고 앉아야만 했는데, 쪼그려 앉기 힘든 나 같은 임산부에겐 큰 장점입니다. 무엇보다 부지 전체에 고르게 탐스럽게 열린 탓에 포토존 쟁탈전이 따로 필요 없습니다. “표정이 좀 맘에 안들게 나왔어. 다시 다시” 우리 가족도 눈치 보지 않고 수국 벽을 전세내고 인생 샷을 건져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이곳은 로맨틱한 전설이 있는 곳입니다. 제주 탐라국을 세운 ‘고’씨, ‘부’씨, ‘양’씨 세명의 삼신인이 바다 저편에서 온 삼처녀와 합동 혼례를 올렸던 곳이랍니다. 이런 전설에 기반하여 혼인지 야외마당에선 시간이 맞으면 제주도의 전통혼례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사전에 신청을 받아 실제 커플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듯 했습니다.      



 “엄마! 신랑이랑 신부랑 절을 해!” 

 우리도 때를 잘 맞춰 전통혼례를 볼 수 있었습니다. 많은 관광객들의 축하를 받으며 수국 버진로드에 둘러 쌓여 올리는 혼례는 의미가 남달라보였습니다. 딸아이는 이 결혼장면에 온통 정신이 빼앗겼나 봅니다. 고운 한목치마를 휘날리며 연지 곤지를 찍은 신부가 퍽 예뻐보였는지, 자기도 결혼을 하겠다며 냅다 선언합니다. 급기야 혼인지 출구 신랑신부 입간판 포토존에서 신부에게 얼굴을 쏙 내밀고 사진을 찍어주기 전까진 안 간다고 으름장입니다. 


    




 ‘어린이집에서 만난 작은 인연으로 저희가 결혼식을 올립니다.’ 

 하원한 딸아이가 청첩장을 무심하게 척! 건냈습니다. 혼인지에서 부터 결혼한다고 그렇게 노래를 부르더니, 누구를 닮았는지 참으로 대단한 추진력입니다.

 (실제로는 어린이집에서 계획된 일정이었겠지만서도 상황이 참 재밌습니다)


 꽤나 그럴싸한 모양의 청첩장. ‘신부’ 옆엔 연필로 삐뚤빼뚤 쓴 딸내미의 이름이 버젓이 적혀있습니다. ‘신랑’ 이름은 자음과 모음이 자유분방하여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헛웃음 나는 상황이지만 그렇게 저는 이름도 모를 남정네에게 우리 딸아이를 시집보내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아침부터 분주하게 헤어 메이크업을하고 그럴싸한 드레스를 입히고, 왕관을 씌워 어린이집으로 등원 준비를 합니다. 샤랄라 공주병 말기 환자로서 본인의 로망을 잔뜩 펼쳐낸 복장에 뿌듯했던 탓인지, 혼인가약을 맺고 버진로드를 걸을 생각에 들떴던 탓인지 등원 길 발걸음이 신이 났습니다. ‘엄마, 안녕!’ 문워크가 따로 없습니다.


 그 곱던 신부는 어디가고 하원한 딸내미는 망나니가 되어있네요. 바람개비에 정신이 팔려서 아파트 앞을 정신없이 뛰어다니기 바빴습니다. 불과 몇 시간만에 여리한 공주님 왕관은 풀어헤쳐진 머리칼 사이에 흡사 홍건적 두건이 연상됩니다. 이쯤 되니 슬슬 걱정이 됩니다. 

 ‘결혼식을 잘 하긴 한걸까?’     


 ‘띠링!’ 

 기다리던 ‘키즈노트’ 앨범에 사진이 올라왔습니다. 

 ‘꺄!! 못산다!’


 

 앨범 속 본식사진은 그야말로 기대이상이었습니다. 찬슬기반의 결혼식은 어린이집 4층에 차려진 웨딩홀에서 동생들과 언니오빠들의 축하 속에서 성대하게 치러 졌더라구요. 버진로드도 제대로 갖춰져 있고 결혼식 케이크며 부케며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이 결혼식에 얼마나 ‘진심’이셨는지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딸내미는 신랑신부입장을 한 뒤 반지를 교환하고 결혼식 스냅사진도 야무지게 찍었습니다. 부케를 들고있는 행복한 표정의 우리 딸내미. 베시시 저도 웃음납니다. 딸아이가 제주도에서 맞이하는 첫 6월의 초여름. 이 기억을 로맨틱함으로 오래오래 간직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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