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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뭄씨 Jun 30. 2023

결혼8년차, 권태기를 판별하는 법

특산물 디저트의 또다른 쓰임

 우리 부부는 8년, 연애까지 합치면 15년을 함께 했습니다. 열애의 격정적 불꽃놀이가 사라지고,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가 익숙해진 풍경 속에 결혼생활은 터를 잡았습니다. 습관이고 일상이 되어버린 우리관계는 사실 시작부터 설렘보다는 의리로 시작했다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오빠 우리 이제 슬슬 결혼해야 안 되겠나” 

 제가 했던 로맨틱 제로의 프로포즈입니다. 그것도 경상도 여자라 부대찌개 따위를 먹으며 이토록 멋대가리 없이 했습니다. 지금은 퇴근하여 각자 철저히 분업화 된 가사노동을 하고. 둘이서 달콤한 귓속말을 속삭이기보다 각자 휴대폰과 오붓한 시간을 지켜주는 것으로 서로를 배려합니다. TV 예능프로를 함께 낄낄거리며 보는 것만으로 가족의 의미를 다지는 데 충분합니다. 스킨십은 ‘딸아이’라는 중간매체를 통해 이뤄진지 오래입니다. 

 이런 습도 높은 제주도에서 잠자리는 침대 양끝에 대롱대롱, 그것마저 이제는 열 많은 남편이 바닥에 내려가서 자는 것이 우리 집에서의 ‘국룰’로 굳어졌습니다.   




 그러나, 결혼 8년차도 사랑놀음을 할 때가 있습니다. 

 ‘밀당’이나 ‘사랑시험’은 연애초반의 연인들의 전유물이라지만, 까짓 거 저도 해봅니다. 이른바 ‘권태기판별.’ 타이밍은 바로 남편이 출장을 다녀올 때입니다. 사실, 이 아이디어는 개그우먼 이영자님의 심금을 울리는 어록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애인이 있는 데 성심당 튀소(튀김소보로)를 안사면 권태기야.”

 순간 무릎을 탁! 쳤습니다. 그렇습니다, 대전에 와서 성심당 튀소를 안 사오는 건 반칙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친밀가루 DNA를 보유한, 알아주는 빵순이로서 이를 살짝 응용하여 남편의 사랑을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확인해보는 방법을 떠올리게 됐습니다. 출장 갈 때 지역 유명특산물 디저트를 사오느냐, 아니 사오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마치 찌를 넣어놓고 입질을 기다리는 것처럼, ‘권태기 판별’은 지루한 독박육아를 견디는 나만의 유희가 되었습니다. 마침 우리나라의 팔도 곳곳에는 다채로운 특산물 디저트가 포진해 있습니다.      


 군산에는 만두에 비견할 만큼 얇고 촉촉한 빵 안에 팥소 가득품은 ‘이성당 단팥빵’이. 공주에는 겹겹이 버터 공기층을 둔 바삭한 페이스트리 속 묵직한 밤 앙금을 폭삭 안은 ‘공주 밤파이’. 대구에는 옥수수 알알이 터지는 식감과 부드러운 크림의 조화가 흡사 향정신성 약물 복용 시의 중독성과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의 ‘마약 옥수수빵’. 당진엔 투박한 상호명과 시장표 담음새와는 달리, ‘고급진 풍미, 니가 왜 거기서 나와?’할 정도로 버터향과 식감이 반전의 매력을 더하는 ‘독일 꽈배기빵’이. 이외에도 두 말하면 입 아픈 전통의 강자 ‘천안 호두과자’, ‘대전 성심당 튀김소보로’에서부터, 최근 출사표를 낸 신예 ‘안동 사과빵’, ‘성주 참외빵’까지. 권태기 판별을 위한 사랑노름판은 이토록 잘 갖춰져 있습니다.      


 물론, 꼭 이다지 유명한 ‘네임드(named)’ 디저트를 사올 필요는 없습니다. 줄 설 필요도, 비쌀 필요도 없습니다. 이런 호사스러운 기대를 할 정도로 우리 관계가 아마추어가 아니거든요. 다시 말하지만 결혼 8년차, 연애까지 15년차, 우린 프로입니다. 그저 출장지에서 홀로 집안일을 도맡아 할 와이프를 한번 떠올리고, 발길 닿는 길목에서 내가 좋아할 만한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는 시간을 들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띵동’ 

 남편이 구례출장을 다녀온 참입니다. 제주도에서 육지로 간만에 다녀오는 출장입니다. 내심 구례엔 특별한 것이 없어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또, 이번출장은 남편이 막내로서 선배들을 모시고 기사노릇을 해야 했기에 특산물 디저트를 살 시간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현관문을 열고 들어 온 남편의 가방이 두둑합니다. 일부러 광주공항 가는 길을 돌아 사온 디저트들을 풀어놓습니다. 

 ‘구슬모양의 양갱’과, 인근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초코파이 선물세트’

 소박하지만, 이토록 로맨틱 할 수 없습니다.   

  

 ‘빨강’, ‘노랑’, ‘연두’, ‘상아’. 형형색색 탱탱볼 같은 양갱은 종류별로 은은한 단맛이 올라옵니다. 센스 있게도 인터넷에서 나름 유명세를 갖춘 곳을 용케도 찾아 냈더라구요. 다음은, 초코파이. 흡사 전주 풍년제과를 오마주한 듯한 이 초코파이는, 전주의 그것보다 생크림이 더 몽실몽실하고 빵에서 쑥, 인절미 등 특산물의 향과 맛이 더 강하게 느껴지는 것이 특징입니다. 빵과 초코코팅이 오도독 딱딱하게 씹혀 부드러운 생크림과의 콤비가 환상입니다. 근데 뭐, 사실 맛이 문제는 아닙니다. 밤샘 독박육아의 힘듦이 디저트의 단 맛에 사르르 녹아듭니다. 힘들게 공수한 거라 더 맛있게 느껴집니다.    

  


 뒤늦게 어찌 살 수 있었냐고 추궁해 보았습니다. 괜히 이거 산다고 무리한건 아닌가 걱정도 됐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함께 간 95, 07, 08사번의 회사선배들이 먼저 와이프 선물을 사야한다며 공항 가는 길에 굳이 차를 돌리자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마흔 중반의 배불뚝이 아저씨들이 지켜내는 의리와 사랑을 생각하니 웃음이 베시시 났습니다. 이 ‘권태기판별법’은 비단, 나만의 전유물은 아닌 듯 보였습니다.    

  

 결혼 8년차 혹은 그 이상의 부부의 사랑도 이토록 뜨겁고 헌신적입니다. 생각해보면 현실적 부부생활이 퍽퍽한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있지만 ‘두근두근’의 연속입니다. 오늘 남편이 행여 육아를 내팽겨치고 급하게 회식하지 않을까 ‘두근두근’, 오늘 설거지 담당은 오늘 누가 될까 ‘두근두근’. 쌓여있는 택배상자를 발견하고 잔소리를 하지 않을까 ‘두근구근.’ 연애할 때도 밤새 통화한 적 없었지만 이제 부동산 얘기라면 사흘 밤낮 남편과 대화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연애 15년차의 바이브 아니겠습니까.     



 ‘스낵을 먹듯 야금야금 느끼는 것이 행복’이며,

 ‘설렁탕처럼 든든해지는 것이 로맨틱이다’가 우리 부부의 지론입니다. 

 지금 나름의 방식으로 행복하고 로맨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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