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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뭄씨 Jul 11. 2023

20주차. 임산부 배를 함부로 차면 어떻게 해

지금, 우리, 교감하는 시간

 ENA의 드라마 <마당이 있는 집>을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주인공 상은(임지연 분)은 극 중 저와 같은 5개월 차의 임산부입니다. 배우 임지연 님이 연기를 기가 막히게 하는 바람에 걷는 모습, 배의 크기며 공감이 절로 됩니다. 특히, 5회차에서는 뜻밖에 장면에서 먹먹함을 느꼈습니다. 상은이 고통스럽고, 참담한 상황에 휩쓸리는 가운데 임신성 빈혈로 쓰러집니다. 병원에 실려 가 초음파를 확인하는데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십니다.

 “태아가 이제 엄마의 마음을 똑같이 느껴요, 신기하죠?”

 묘한 표정의 상은이 읊조립니다.

 “일종의 목격자 같은 거네요”     






 그렇습니다. 임신 20주 차, 바야흐로 교감의 시기를 건너가고 있습니다.

 태아는 저와 감정을 공유할 뿐만이 아니라, 제 삶의 ‘목격자’로써 시간을 함께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태교의 존재 이유가 드러나는 것이지요. 사전적으로 ‘태교’는 아이를 밴 여자가 태아에게 좋은 영향을 주기 위하여 마음을 바르게 하고 언행을 삼가는 일이라 정의하고 있습니다. 산모는 이제 양분의 공여자이자, 정서 함양에도 제1영향력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행복해야 한다지요. 이를 위해 태교를 위한 수단도 진화했습니다. 다양해지고 세분되었습니다.


 임신초기엔 생활 습관 개선을 위한 음식태교

 임신중기엔 청각과 감성 자극을 위해 태교음악, 미술이나 태교동화, 태담, 태교여행

 임신후기엔 본격적 출산을 위해 태교운동, 태교DIY(손이나 발싸개 등 출산용품)

 풍문에 따르면, 시중에는 아이의 소리를 듣고 아빠의 목소리를 들려 줄 수 있는 ‘태담기’라는 것도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 태교는 세상 담백한 것입니다. 즉, 별다르게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지요.

 굳이 뭔가 하는 것을 꼽자면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시간이 태교입니다. 타자기를 ‘타닥타닥’ 치는 소리가 좋고, 즐거운 과거의 기억을 더듬자면 다시 젊어지는 것 같습니다. 괴로운 순간, 힘겨운 순간도 글감이 될 때가 있는데, 상처를 들여다보고 글로써 승화하면 이것 자체로 치유가 됩니다.

 또, 부쩍 90년대 음악을 물씬 많이 듣고 있습니다. 주말에 차로 1시간 30분 남짓 걸리는 한림수목원에 갔습니다. 드라이브하는 동안 유피 ‘바다’, NRG ‘할수 있어’, 김현정 ‘그녀와의 이별’를 메들리로 들었습니다. 흥이 오르면 남편이랑 신나게 노래를 불러 재꼈습니다.

 최대한 순간, 순간 즐겁고 행복해지려고 나름 노력합니다만 사실 클래식도 듣고, 미술관도 가고, 태교동화를 읽는 여타 다른 산모들을 보면 미안함이 번집니다. 벌써 책임감 없이 둘째를 가진 건가 의구심이 꼬물꼬물 솟아오릅니다.      





 하루는 산책하면서 남편이 “첫째 때랑 달리 우리, 둘째 때는 초음파도 덜 보는 거 알아?”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태교는 차치하고 태아에게 좀 무심했던 건 아닐까 반성 됐습니다. 일단, 산부인과를 들락거리는 빈도도 다릅니다. 첫째 때는 회사에서 점심도 스킵하고 종로에서 명동까지 걸어가 초음파 속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확인했습니다. 신기했거든요. 끊임없이 이상은 없는지 점검했습니다. 지금은? 피가 살짝 비쳐도 이쯤 웃으며 괜찮다고 넘어갑니다. 사실상, 정기검진이 있지 않고서는 초음파를 잘 보지 않습니다.

 종종 했었던 태담도 뜸해졌습니다. 첫째 때는 매일 문득문득 임산부임을 의식하며 배를 쓰다듬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생활에 치여 불편함을 느낄 때만 ‘아, 나 임산부였지?’ 합니다.      


 이 때문에 우리 둘째는 뱃속에서부터 관심병이 든 것 같습니다. 일찍부터 태동, 이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16주를 지나서부터 “나 여기 있어요!” 를 끊임없이 어필합니다.

 “야야, 임산부 배를 이렇게 함부로 차면 어떡하냐?”

 첫째 때는 20주가 지나 가볍게 딸꾹질로 시작했습니다. 배에 보골보골 하더니 시간이 차자 물고기 기어가는 느낌이 스멀스멀했습니다. 하지만, 둘째는 초음파를 볼 때부터 남달랐다. ‘파르르 펄쩍!’ 양수에서 수중발레를 하는 건지 퍽퍽, 임산부 배를 아주 함부로 찹니다. 낮에는 좀 덜한데 밤에 TV를 보고 있자면 ‘와르르 동동!’ 난리입니다. 집중을 할 수 없습니다. 깜짝 놀라게 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지금 첫째도 어린이집 공인 ‘핵인싸’, 파워E 성향을 뽐내는 아이로 자라나는 중인데 얘보다 더 활발한 아이가 태어나면 아주 곤란스러울 것 같아서 걱정이었습니다.     



 



“둘째 태교는, 첫째로 하는 겁니다!”


 최근 블로그 속 누군가의 글이 가슴속에 확 박혔습니다. 무릎을 ‘탁’ 치고, 가슴 속 턱 막힌 속이 활명수 한 병 들이마신 듯 ‘뻥’ 트였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진짜거든요.      


 딸내미 애교가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6살, 본능적으로 둘째가 태어나면 가만히만 있어도 사랑받는 시기가 지났다는 판단이었던 걸까요. 오리처럼 앙증맞은 입에서 쏟아내는 앙큼한 말이 그렇게 일상을 간지럽힙니다. 우리 부부는 웃지 않을 재간이 없습니다.

 “채를 들어 별을 걸고, 소고 들어 달을 걸자♪”

 산책 무렵 난데없이 판소리 장인에 빙의가 되어, 미간 사이 인내 천(川)자를 척 걸치고 ‘소고도령’의 구성진 가락을 뽑아냅니다. 부채 두 개를 척 펼쳐 들고는 어깨춤을 덩실덩실 쿵덕거리더니, 별안간 어깨 웨이브를 시전합니다. 엄마, 아빠의 웃음소리에 동작은 더 커지고 표정은 더 메소드의 세계로 빠져듭니다.


 이뿐일까요, 저녁 무렵 우리 부부의 만보산책 챌린지에 자전거로 동참하고 있는 우리 딸내미.

 “안녕”, “강아지 만져봐도 돼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온갖 오지랖과, 친화력을 마구 보여줍니다. 맹랑한 말투에 어이없어 웃음이 터집니다. 저만큼 앞서가는 딸아이의 뒤뚱뒤뚱 뒷모습에서 ‘언제 저 만큼 컸나?’ 하며 뱃속에서 뜨거운 것이 손끝까지 번져듭니다. 둘째도 미소 짓는 걸까요.

 내겐 이것이 충분한 태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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