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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an Apr 15. 2020

나의 문자는 누군가의 마음에 가닿을 수 있을까

코로나 시대의 부고


부고 한 통이 도착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코로나로 인해 빈소는 차리지 않고 장례 미사도 없다고, 기도를 부탁한다고 쓰인 짧은 부고.


어쩌지? 코로나 전이었다면 당연히 빈소를 찾아갔을 테지만 부고에 쓰여있는 것처럼 지금은 특수한 시기가 아닌가. 바이러스는 이렇게 슬픔마저 손 잡고 나누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나는 문자 메시지 창을 열었다. 정신없을 상황에 전화는 부담일 테고 그렇다고 아무 말도 없이 지나갈 수는 없다. 상심해 있을 그분께 뭔가 말 한마디라도 전해야 할 것 같은데 이상하게 문자가 써지지 않았다.


뭐라고 보내야 할까. 어떤 말이 그분의 슬픔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을까. 인사치레가 아닌 진심이 담긴 몇 문장. 그걸 찾고 싶었다.


카피라이터로 때로는 여행작가로 이런저런 글들을 썼다. 상품을 팔고 브랜드를 각인시키기 위해, 나의 여행을 기록하고 나누기 위해 글을 써온 짧지만은 않은 경험, 따위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특정 다수가 아닌 한 사람, 텅 빈 마음이 되어 울고 있을지 모를 한 사람에게 나는 어떤 말을 해야 하나. 눈과 귀가 아닌 마음에 닿을 수 있는 말은 쉽게 찾아지지 않았다.


살면서 가장 어려운 일은 누군가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가 결국은 내 마음을 전해서 누군가와 진정으로 공감하기 위함이라면 나는 어떻게든 이 문자로 조금이나마 그분이 덜 쓸쓸하도록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한다.


지웠다 다시 쓰고 또 지우고 다시 고쳐 썼다. 


종교가 없는 나지만(그분은 신부였다), 내가 생각하는 방식으로 진심을 다해 어머님과 그분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썼다. 언젠가 만나서 나눴던 천국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떠올라 한 줄을 덧붙였다. 오늘은 천국이 존재한다는 신비한 이야기들이 감사하다고, 그 이야기들에 기댈 수 있어서 감사하고 안심된다고 쓰고는 전송 버튼을 눌렀다.


나의 문자는 그분의 마음 가까이 무사히 도착했을까. 연약한 몇 줄의 말이 힘을 내서 멀리멀리 날아가 조심스럽게 마음의 문을 두드려 열고 마음 가운데를 잠시 어루만져 드렸기를. 그분께 당도한 글자들이 따뜻한 손으로 변신해 그분의 손을 잡아주었기를. 


며칠 뒤 장례가 끝날 때쯤 다시 그분께 안부 문자라도 드려야겠다. 그때는 내 마음을 대신해 줄 시를 한 편 보내고 싶다. 


무덤에 잠드신 어머니는
선산 뒤에 큰 여백을 걸어 두셨다
말씀보다 큰 여백을 걸어 두셨다
석양 무렵 동산에 올라가
적송 밭 그 여백 아래 앉아 있으면
서울에서 묻혀 온 온갖 잔소리들이
방생의 시냇물 따라
들 가운데 흘러 흘러 바다로 들어가고
바다로 들어가 보이지 않는 것은 뒤에서
팽팽한 바람이 멧새의 발목을 툭, 치며
다시 더 큰 여백을 일으켜
막막궁산 오솔길로 사라진다

오 모든 사라지는 것들 뒤에 남아 있는
둥근 여백이여 뒤안길이여
모든 부재 뒤에 떠오르는 존재여
여백이란 쓸쓸함이구나
쓸쓸함 또한 여백이구나
그리하여 여백이란 탄생이구나


(고정희_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 중에서)


어머니가 걸어 두신 큰 ‘여백’ 아래에서 그분이 잠시 까무룩 잠드셨으면 좋겠다. 그 평온한 잠에서 깨어나 기운을 조금 내셨으면 좋겠다.


코로나 시대, 우리는 이렇게 잠시 떨어져 지내고 있다. 문자나 톡으로 안부를 묻는 요즘 모두들 어떻게 마음을 전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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