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펌 변호사가 리뷰하는 드라마, '하이에나'
전편 koreanlawyer-americanlawyer.tistory.com/33 에서 설명한 것처럼, 전관예우가 있기는 하다. 그래서 송&김의 전관 변호사도 굳이 이 사건에 출정한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게 재판정에서 대놓고 서로 눈인사를 할 정도로 노골적이진 않다.
만약 드라마에서처럼 재판장이 한쪽 편 변호사에게만 아는 체를 한다면, 이건 민원감이다. 다른 편 변호사가 가만히 있을리 없다. 민원이 들어와도 그 재판장은 할 말 없다.
전편에서 말한 것처럼, 원고(하찬호 대표)가 이혼소송에서 이기려면 피고(와이프)에게 외도와 같은 잘못이 있어야 한다. 피고는 외도를 한 전력이 있고, 피고 스스로도 외도 사실을 자인하고 있다. 그래서 둘이 이혼하게 되는 건 명약관화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혼 외에도 누가 친권자가 될지를 다투고 있다. 김혜수가 말한 것처럼 이혼과 친권은 다른 문제다. 외도한 사실이 인정되기만 한다면 이혼은 자동으로 되지만, 누가 친권자가 될지는 외도 여부가 아니라 어떤 편이 자녀의 복리에 더 좋을지에 달려 있다.
외도를 했다면 자녀의 복리가 해쳐지는 게 일반적이므로 보통은 외도한 쪽이 친권을 잃는다. 하지만 드라마에서처럼 남편이 약쟁이라면, 아무리 와이프가 8명과 외도를 했어도 이건 게임 끝이다. 하찬호는 약쟁이라는 사실만으로 자녀의 복리를 너무나 해칠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에, 그는 친권 부분에서 이미 졌다.
윤희재 말은 맞다. 문제의 소견서처럼 원고가 약쟁이라는 걸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는, 재판 전에 미리 제출하는 게 매너다. 미리 제출해서 재판부도 검토할 수 있게 하고, 원고 (송&김) 쪽도 새로운 증거에 대비할 수 있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
지금 김혜수가 하는 것처럼 재판기일 당일에 기습적으로 중요한 증거를 제시하는 건, 뭐 불법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재판 매너에서는 좀 벗어난다. 쉽게 말하면 페어 플레이는 아니다.
사실 여기선 윤희재가 억울하겠지만 정금자 말이 맞다.
형사소송, 그러니까 누가 범죄자고 아니고를 판단하는 형사재판에서는 증거를 엄격하게 따진다. 경찰이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는 아예 형사재판에서 증거로 쓸 수 없다. 만약 경찰이 법을 어겨가며 수집한 증거를 재판에서 유죄의 증거로 쓴다면, 경찰은 앞으로도 계속 법을 어기면서 증거를 수집할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피고인을 고문해서 받아낸 자백을 재판에서 유죄의 증거로 인정한다면, 경찰은 앞으로 다른 피고인들로부터도 고문으로 자백을 받아내려 하게 된다.
이걸 방지하기 위해 아예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는 처음부터 재판정에 발을 들이지도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걸 "위법수집증거 배제원칙"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위법수집증거 배제원칙은, 공권력이 남용되어 시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걸 막기 위해서 생긴 원칙이다. 형사사건에서는 누가 증거를 수집하죠? 공권력(경찰력)이 하죠? 그러니까 이 원칙은 형사소송에서만 쓰인다. 민사소송, 가사소송과 같이 공권력이 개입하지 않는 소송에서는 안쓰인다.
윤희재는 정금자가 자기로부터 소견서를 빼갔다는 걸 알아챘다. 이 소견서는 재판의 승패를 가를 결정적인 증거다. 윤희재로서는 저 증거가 재판에 쓰이는 걸 막아야 한다. 그래서 재판부에게 "저 증거는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임을 어필하고 있다.
하지만 윤희재도 알고 있다.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는 형사재판에서나 증거로 못 쓰이지, 이혼/친권과 같은 가사소송에서는 증거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을. 정금자가 그걸 지적한 것이다. 다만 윤희재는 이런 식으로 도둑맞은 증거가 기습적으로 본인을 엿먹이는 게 억울해서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이다. 내가 윤희재라도 같은 주장을 할 듯.
'하이에나'가 2020년 2월 드라마인 걸 고려하면, 김혜수가 직접 소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는 건 현실과는 동떨어진 설정이다. 한국 법원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전자소송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젠 형사사건을 제외한 모든 사건, 그러니까 민사, 행정, 가사, 신청사건에서는 종이 기록을 취급하지 않는다.
지금 이 사건은 가사소송이므로 모든 소장, 답변서, 준비서면, 증거들은 전자소송 시스템으로만 업로드해야 한다. 종이 문서를 제출하려고 가정법원에 가져가면, 법원 창구에서 아예 받아주질 않는다. 정금자님처럼 재판 중에 종이를 내려고 해도 아예 재판부가 전자소송으로 업로드 하세요, 하면서 거절한다.
사실 내막은 이러하다. 아래부터는 과거 장면.
이건 제대로 변호사법 위반이다. 대한변호사협회 징계를 받아도 할 말 없다. 가사소송에서 증거를 훔쳤다고 해서 그 증거가 날아가는 건 아니지만 (그래서 피고가 이겼지만), 정금자는 변호사 윤리도 위반했다. 정금자는 돈이면 뭐든지 하는 변호사 캐릭터로 나온다.
윤희재 입장에서는 굉장히 억울하다. 하지만 엄격하게 보면 윤희재도 잘한 건 없다. 변호사에게는 비밀유지 의무가 있다. 일하면서 알게 된 의뢰인에 관한 모든 정보는 전부 비밀에 부쳐야 한다. 퇴근하고 집에 가서 가족에게 오늘 의뢰인과 있었던 일을 말하면 안된다. 기록 같은 것도 남이 볼 수 있게 놔두면 안된다. 식당같이 공개적인 곳에서 동료 변호사들과 사건 얘기를 해서도 안된다.
윤희재는 여자친구를 믿었으니까 집에서 기록을 다 펼쳐둔 채 일을 한 것이다. 사실은 변호사들 대부분이 집에서 일할 때 가족이나 애인 앞에서 이렇게 할 것이다. 대체 누가 남의 사건 증거에 관심을 갖겠냐구요~
드디어 1회 리뷰가 끝났다. 2회부터는 윤희재와 정금자의 티키타카가 시작된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