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당신이 일하고 싶은 곳은? 종로 vs. 강남 vs. 여의도?
매일매일 마음이 바뀌었다.
출근하자마자 100여 곳이 넘는 후보지를 검토하면 금세 점심시간이 다가온다. 구내식당에서 밀어 넣듯 밥을 먹고 회사 주변을 산책하다 보면 지금 있는 이태원이 가장 이상적인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강도 보이고 남산 타워도 보이는 곳. 너무 번잡하지도 않으면서 내가 좋아하는 서울의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그런 곳이었다.
우습게도 오후가 되면 또 마음이 홀랑 뒤집어져 운명인 듯 마음을 비집고 들어오는 곳도 있었다. 재미있는 건 내 눈에 좋아 보이면 다른 회사도 마찬가지였는지, 금방 다른 회사에서 계약을 진행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내 집 계약이라면 당장 도장을 들고 달려갔겠지만 외국계 회사의 특성상 본사의 최종 승인을 받기까지는 너무 멀고 험난했다.
오피스 임대는 주택보다 훨씬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많다.
아파트처럼 규격화되어 있지도 않고 조건들도 제각각이었다. 서울은 넓고 건물은 많은데도 선택하기 쉽지 않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100이면 100 모두 다른 조건이어서 절대 비교라는 것이 없었다.
에이전시에서 보통 제공하는 정보는 아래와 같다.
주소, 지하철 근접성, 전용률, 주차조건, 입주가능 층과 면적, 보증금과 임대료, 관리비, 렌트프리, 핏아웃부터 세부적으로는 구내식당 운영 여부, 야간/주말 냉난방 가동 여부, 회사 간판 설치 조건 등.
이후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이렇게 검토했던 임대 조건들이 추후 본사 승인 시 IR(우리 회사 내에서는 Investment Request의 약어로 사용한다.) 기초 증빙 자료로 쓰인다. 제안서가 누가 보아도 타당함을 입증해야 하는 것이다. 승인 자료에 종로 1번지의 터와 기운이 좋아요,라고 쓸 수는 없지 않은가. 워낙 큰 금액이 오가기 때문에 A-Z까지 주의 또 주의를 기울여 검토할 수밖에 없다.
임대인의 유혹
앞 서 설명한 상가 임대차의 경우 재미있는 특징들이 많은데,
1. 렌트프리 (RF, Rent Free)
첫 번째는 렌트프리. 임차료 시장가를 유지하기 위한 꼼수 아닌 꼼수이다 (철저하게 내 관점이다.)
월 1천만 원인 임차지가 있다고 가정하자. 공실률(사무실이 비어있는 비율)이 늘어날 때 가장 빠른 해소법은 임차료를 내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단순하게 접근하면 제일 큰 문제는? 다른 임차인들의 반발, 다른 건물 임대인들의 반발, 마지막으로 이렇게 임차료를 못 박으면 단 기간 내 올리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그렇게 나타난 것이 바로 rent free인데 예를 들어 월 임차료는 1000만 원을 그대로 고정시키되, 2개월을 무상으로 살게 해주는 것. 임대인은 1년 1억 2천을 대외적으로 공표하고 임차인은 1년에 1억만 내면 되는 것이다. 초기 1회만 제공하는지 매년 쌍방이 협의하여 반복적으로 제공하는지 잘 체크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관리비가 아닌 임대료에 대해서만 적용한다.
2. 핏아웃 (FO, Fit Out)
두 번째 , 핏아웃. 인테리어를 진행하는 동안 실제 들어와서 살 수는 없으니 공사 기간 동안 임차료를 제해주는 것. 임대 면적이 큰 회사의 경우 2개월 전후의 fit out을 제공해주기도 한다. 이 경우도 역시 관리비가 아닌 임대료에 대해서만 적용한다.
후보지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굳건하게 약속했던 조건이 사라지기도 했고, 어느 날은 운 좋게도 우리가 추가로 내걸었던 조건이 수용되기도 했다. 돌이켜보아도 도장을 찍는 그 순간까지 검토에 검토를 반복하며 열일했던 우리 팀에게 고마울 뿐이다.
당신이라면 CBD(종로권역), GBD(강남권역), YBD(여의도권역) 중
어디에서 일하고 싶은지가 궁금하다.
그리고 나는 이태원에 남는 것을 선택했을까, 아니면 새로운 곳을 제안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