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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병필 Jul 14. 2018

빅데이터와 법의 미래: 개인화된 법

개인화된 법(personalized law)의 도입 가능성에 대한 소고

가끔 운 좋게도 차가 거의 없는 뻥 뚫린 고속도로를 달리게 되면, "이렇게 차가 없는데도 최고속도 제한 규정을 지켜야 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걸음 더 나아 가면, 교통량에 따라 그때그때 최고 속도 제한을 다르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혹은 보험회사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운전 경험이 많고 사고 경력도 없는 능숙한 운전자는 조금 더 빨리 모는 것을 허용하고, 아직 미숙한 운전자에게는 더 천천히 운전하도록 요구하는 것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또는 비가 오거나 안개가 심하게 낀 날은 더 낮은 속도로 운전하도록 하고, 화창한 날에는 최고 속도를 조금 더 높여도 좋을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법은 그렇지 않습니다. 법은 모든 사람에게 모든 상황에서 동일한 최고 속도를 유지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렇게 해야 사람들이 무엇이 법인지 인지하고 이를 준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러한 전통적인 법에 대한 관념에 도전하는 학자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러한 학자들의 이야기를 풀어 보고자 합니다.


1. 법이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한 규정의 준수를 요구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가?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모든 상황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한 규제를 적용하는 것은 비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앞서 본 고속도로의 최고 속도 규제를 예로 들어 봅시다. 최고 속도 규제의 목적은 사람들의 안전을 보장하면서도 더 많은 사람이 짧은 시간에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교통량이 적은 날 능숙한 운전자에게도 시속 100km를 적용하는 것은 불필요한 과잉 규제가 될 수 있고, 이에 비해 폭우가 쏟아지는 날에 시속 100km를 적용하는 것은 안전을 보장하는데 미흡한 과소 규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규제를 적용하는 이유는, 만약 개별 상황에 맞춰서 다른 규제가 적용이 될 경우 규제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기 위한 비용이 추가로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제 과잉규제/과소규제의 문제를 해결하고, 공중이 규제를 파악하는 비용을 낮추기에 충분한 기술을 갖게 되었습니다. 도로공사는 통행량과 도로 여건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있으니, 상황에 맞추어 구간 별로 최적의 제한속도를 정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모든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으니 상황에 맞춘 제한 속도를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도 간단합니다. 학자들은 이처럼 상황에 맞춘 규제를 동태적 규칙(dynamic rule) 또는 맥락 맞춤형 지시(context-specific directive)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새로운 분야이다 보니 용어가 아직 확립된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주장의 요체는 수범자가 규제의 내용을 파악하는 비용이 거의 0에 가깝게 되었기 때문에, 굳이 일관된 규제를 적용할 이유가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최근에는 내비게이션 장치를 통하여 개개인의 운전 습관을 측정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국내 보험회사는 운전자가 자신의 운전습관 정보를 제공해 주면 보험료를 낮춰주는 상품을 출시할 계획이 있습니다). 그러면 개개인의 운전 습관이나 경력 등의 정보를 바탕으로 해서, 사람들마다 서로 다른 수준의 최고 속도 규제를 두는 것도 가능할 것입니다(물론 이처럼 차량마다 최고 속도 규제를 달리 적용함으로써 차량 흐름에 있어서의 비효율성이 초래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적절한 알고리즘을 통하여 이러한 비효율성은 최소화하고 안전과 통행량을 최대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개인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하여 개별화된 규제 수준을 정하는 것을 개인화된 법(personalized law)라고 부릅니다. 


이처럼 빅데이터의 처리 기술이 발달하고 정보를 전송하는 비용이 낮아짐에 따라서, 빅데이터를 활용하여 개별적 상황에 맞춘 최적화된 규제 수준을 찾아낸 다음, 개개인마다 서로 다른 규제를 적용하자는 것이 동태적 규칙 또는 개인화된 법을 주창하는 법학자들의 주장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각종 규제의 비효율성을 줄일 수 있게 된다는 것이지요.


이제까지 설명한 최고 속도 규제는 한 가지 예시일 뿐이고, 이러한 아이디어는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형태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상거래에 널리 사용되는 표준 약관은 모든 경우에 있어 모든 거래 상대방에게 동일한 규정을 적용하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개인화된 법의 개념을 적용하면 약관규제법의 종래의 틀을 뛰어넘어 개별 거래 상대방의 상황에 맞춘 맞춤형 계약을 낮은 비용으로 체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른 예로는 (다소 과격한 주장일 수 있습니다만) 민법에 따른 상속 비율을 개인별로 달리 적용하는 것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현재 민법은 피상속자의 나이, 자산, 소득, 자녀의 수, 선행 결혼의 여부, 자녀와의 관계와는 무관하게 동일한 상속비율을 적용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경직된 상속비율은 상속재산에 대한 분쟁을 더 심각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법률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보험 분야는 이미 개인화(personalization)가 상당히 진행된 영역입니다. 우리는 자동차 보험료가 운전자의 사고 이력 등에 따라서 달리 매겨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생명 보험에 있어서도 개인의 건강상태에 따라서 보험료는 차등화되어 있습니다. 보험회사가 보험료를 개인의 상황에 따라 차등화하여 산정하는 것이 가능하듯이, 법적 규제도 개개인별로 차등화하여 적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법의 개인화 주장에 대해, 이는 기존의 사회 부정의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동작할 것이고, 정의의 추구라는 법의 이념과는 맞지 않으며, 개인정보의 침해를 낳게 될 것이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Devins et al., 2017). 하지만 이 글에서는 이러한 비판은 잠시 접어 두고 만약 "개인화된 법" 개념이 어떠한 사회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 법 형태의 변화 - 성문법에서 알고리즘 법으로


법을 이해하는 유용한 방법 중 하나는, 법은 우리가 행동할 수 있는 자유의 경계를 정해 준다고 보는 것입니다. 법은 자동차가 고속도로에서 낼 수 있는 최고 속도를 정하는 것이 좋은 예입니다. 우리는 대부분의 경우 계약의 내용을 마음대로 정할 권리가 있습니다만, 근로기준법은 최저임금을 규정하고, 전자상거래법은 소비자들이 일정한 기간 내에서 자유롭게 철회권을 행사하여 반품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합니다. 이처럼 꽤나 많은 경우 법은 자유의 한계를 정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법학자들은 법이 경계를 정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1) 하나는 법이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그 한계를 명확히 정하는 것입니다. 이를 "룰(Rule)"이라고 부릅니다. 최고속도를 100km로 정하고, 최저임금을 7,530원으로 정하는 것은 자유의 한계를 구체적으로 정하는 "룰"입니다. (2) 이에 비해서 법이 행동의 한계를 명확히 정하지 않고 추상적인 원칙만 규정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컨대 회사의 이사는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할 임무가 있고, 이러한 임무를 위반할 경우 손해배상 책임을 지거나 업무상 배임죄로 형사 처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떠한 경우가 회사를 위한 행위이고, 어떠한 경우가 개인의 이익을 위한 행위인지를 세세히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러한 경우에 법이 추상적인 원칙만 규정하는 것을 "스탠다드(Standard)"라고 부릅니다. "룰"은 명확하기 때문에 수범자들이 준수하기에 편리하지만 유연성이 부족합니다. 만약 "룰"에서 정한 규제 수준이 적절하지 못할 경우 사회적 비용이 초래될 수 있고(error cost),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전(ex ante)에 적정한 규제 수준을 정하려고 하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decision cost)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에 비해 "스탠다드"는 decision cost와 error cost는 낮지만, 수범자들이 그 규제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uncertainty cost)는 문제가 있습니다(Louis Kaplow, 1992).


그런데 개인화된 법은 이러한 룰과 스탠다드라는 종래의 이분법적인 구분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법 형태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상상해 보면, 미래의 도로교통법은 "운전자는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속도 이내에서 운전하여야 한다"라고 원칙만을 규정하고,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속도"는 컴퓨터 알고리즘이 계산을 해서 운전자들마다 그때 그때 알려주는 법체계도 가능할 것입니다. 이러한 체계는 종래의 룰과 스탠다드를 뛰어넘는 법의 존재 양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른 예로, 전자상거래법에 보호되는 소비자의 철회권을 생각해 봅시다. 지금은 모든 소비자들이 동일한 기간의 철회권 행사할 수 있습니다. 대신 미래의 전자상거래법은 "소비자가 자신의 구매 결정에 대해서 충분히 숙고하여 반품 여부를 결정하기에 충분한 기간을 보장하여야 한다"라는 원칙만 규정하고, 알고리즘이 제품의 유형, 소비자의 학력, 구매 이력 등을 고려하여 개별화된 철회권 행사 기간을 정하도록 할 수 있습니다. 잘 짜인 알고리즘은, 이제까지 한 번도 보험 상품을 구매한 적이 없는 사회 초년생이 보험 상품을 가입한 경우에는 1년 정도 되는 장기간의 철회 기간을 부여하고, 이미 여러 보험 상품에 가입하였거나 보험금 청구를 한 경험이 있는 소비자는 1주일 내에서만 계약을 철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어 놓을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개인화된 법"은 법의 규율 형태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인간의 언어로 쉽게 표현될 수 없거나, 표현하기에 너무 복잡한 사항들이 컴퓨터 알고리즘을 통하여 규정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제기되는 문제는 누가 알고리즘을 작성할 권한을 갖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개인화된 법을 주창하는 학자들은 국회가 알고리즘의 형태로 법을 제정하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상하지는 않습니다. 국회는 사회적 가치와 정책 목적을 반영하여 언어적 형태로 "스탠다드"를 제정하고, 행정부가 기준을 실현하는 알고리즘을 정하거나, 기업들이 알고리즘을 정하고 정부가 이를 감독할 권한을 갖도록 하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흥미로운 예측입니다.


3. 더 유연화된 디폴트 룰(Default Rule) - 넛지(Nudge)의 개인화


법은 개인이 어느 범위 내에서 행동할 수 취할 수 있는지 범위를 정할 뿐만 아니라, 개인이 아무런 선택도 내리지 않았을 때 어떠한 규정이 적용될 것인지를 정하는 역할도 합니다. 앞서 언급한 법정 상속비율이 좋은 예입니다. 사람들은 유언장을 통해서 상속비율을 미리 정해 놓을 수도 있지만, 만약 유언장을 작성하지 않은 경우에는 법정 상속비율이 디폴트(default)로 적용됩니다. 이러한 규정을 디폴트 룰(default rule)이라고 부릅니다. 


디폴트 룰을 잘 이용하면 사람들의 행동을 특정한 정책 목적에 맞도록 유도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오스트리아는 여느 국가에 비하여 장기 기증률이 특히 높은데, 그 이유는 사람들이 특별히 선택을 하지 않으면 장기 기증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유롭게 장기 기증을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명할 수 있으니,  자유를 제한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러한 개념은 2017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리처드 탈러 교수가 쓴 "넛지(Nudge)"라는 책을 통해서 널리 알려졌습니다.


글의 주제로 돌아와서, 디폴트 룰에 있어서도 개인화가 가능합니다. 한 가지 예로 상상해 볼 수 있는 것은 개인정보 사용에 대한 규제입니다. 한국은 비교적 엄격한 개인정보의 사용 규제를 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소비자에게 도움이 되는 빅데이터 처리 기술의 발달은 가로막고 있다는 비판이 많습니다. 그런데, 사람들마다 개인정보의 중요성에 대한 선호(preference)가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개인정보를 매우 중시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기업이 개인정보를 잘 처리해서 맞춤형의 서비스를 제공받는 것을 더 선호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의 선호가 다른데도 동일한 디폴트 룰을 적용하는 것은 비효율적입니다. 물론 스팸 전화를 하거나 광고 메시지를 보내는 것과 같이 대부분의 소비자가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개인정보를 사용하는 것은 당연히 사전 동의가 필요하겠지만,  소비자에게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하게 하기 위한 빅데이터 분석 처리를 위해서는 디폴트 룰을 개인별로 차등화하여 적용하는 규제도 가능할 것입니다.


4. 결론 - 민간에 의한 자율적 규제의 확산


마지막으로, 법의 개인화는 정부에 의한 직접적 규제보다는 민간에 의한 자율적 규제가 확산되는 방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한국의 택시와 우버(Uber)를 비교해 봅시다. 서울 택시 요금은 서울시가 일률적으로 정합니다. 그래서 비나 눈이 오더라도, 연말연시 송년회 기간이더라도 요금이 그대로입니다. 이에 비해 우버의 경우는 수요가 많으면 가격이 올라갑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공급도 많아지게 되니, 자원이 더 효율적인 분배되느 효과를 가져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택시를 타고 싶어 하는 상황에서 돈이 많은 사람이 우선권을 갖게 된다는 점에서 정의롭지 못하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법의 개인화의 근본 아이디어는 이러한 민간에 의한 자율적 규제와 맞닿아 있습니다. 법의 개인화가 확산되면, 법은 추상적인 행동 원칙만을 정해주고 개별 기업들이 빅데이터를 이용해서 적절한 행동 기준을 정할 수 있도록 허용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가 바람직한 것일까요? 깊이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다만 이 글은 법의 다양한 발전 경로 중의 하나로서 법의 개인화가 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 것이지, 법의 개인화가 바람직하다거나, 법이 개인화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언급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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