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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lleehan Jun 27. 2018

민물고기는 바다에 돌아가는 것이 싫다

summer  




머리를 감고 자는 날에는 똑바로 누워 잘 수 가 없다 베갯잇이 젖는 느낌

이 불쾌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어쩐지 계속 해서 공허 하고 불쾌 한 상태로 잠을 자거나

잠에서 깨는 것이 두려워 되려 악몽을 꾸거나 억지로 밥을 먹거나 

물을 적게 넣어 짜게 끓인 라면에 고추를 다섯개쯤 썰어 넣어도 혀에 느껴지는 매운 맛이

성에 안차서 땀 한 방울 개운하게 흘리지 못하고 

먹고 나서도 포만감에 불쾌해 하거나 되려 고독해 지거나 어쩌면 내 호르몬이 뇌를 잠식해서 

감기에 걸린 것처럼 우울해 하거나 원리를 알게 되면 그만큼 또 허무하고 명쾌한 일이 없으니

월급을 받은 날에는 퇴근길에 꼭 광화문 교보문고에 들러서 종이책에 돈을 쓰기로 다짐하고 

와르르 옷가지들을 장바구니 안에 쏟아넣었다가 훌쩍 40만원이 넘어버리면 딸깍 딸깍 마우스를 

돌려가면서 하나씩 걷어내곤 한다. 집에 있는 것과 같은 색의 바지도 한 장 빼고 

자주 입지 못할 것 같은 흰색 원피스도 한 장 빼고 다리가 뚱뚱해보일 것 같은 스커트도 한 장 빼고 나면

그나마 월급으로 감당 할 수 있을 법한 금액이 맞춰진다. 그래도

덜컥 사지 않고 기다려 본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다만 퇴근 후에 

불편하게 삐걱거리던 손목을 살피러 정형외과에 들러야 하고 잦은 폭식으로 불어난 내 몸도 가꾸어야 하니까 유기농 양배추나 아보카도, 고구마 같은 것을 사서 삶아 먹어야 한다. 나에게 여름은 언제나 

둥글게 뭉친 살집들을 가려야 하는 얇고 긴 옷들을 걸치면서 우울해 하고 습한 공기와 땡볕에 아스팔트가 

타서 녹아 내려가면 나도 따라 녹아내릴 것 같은 정신적 고통이 꼭 뒤따라 오기 때문이다. 과거에 힘들었던

계절이 여름이었고 그래서 이맘 때가 되면 한국의 여름을 미워하고 탓하게 된다. 


한 여름 실내에서 기계가 뿜어주는 차가운 공기가 있는 곳 말고 바깥

으로 나가면 죄다 문을 열어 제끼는 순간 첨벙 .

하고 순식간에 코로 역류하는 물방울을 막아내지 못하고 머리 끝까지 잠수를 하는 무방비 무호흡

의 상태로 우리는 육지에 내놓은 물고기처럼 괴로워 하면서 


폐를 턱 하고 가로막는 습도에 우리는 공기로 숨을 쉬는 동물인데 공기 중에 이렇게 물이 많아서야 되겠냐

우스갯소리로 누가 그랬는데 이쯤되면 아가미가 하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아무튼 숨 쉬지 못할 공기로 숨을 쉬는 것은 이쯤되면 계절 탓 뿐이 아닌게 습도는 그렇다 쳐도 또 폐가

걸러내지 못하는 작은 먼지들이 말썽을 피운다고 하는 걸 보니까 아무리 살기 힘든 세상이라지만 

진짜 말그대로 사는게 숨을 쉬는 것인데 숨만 쉬는 것 조차도 힘든 

세상이 되어버린다는게 유독 

다른 것들보다도 공기가 더러워지거나 습해지는 것이 기분이 나쁘다. 

다른 건 이미 포기 했다 치더라도 숨이라도 평화롭게 내뱉고 싶다.


이따금씩 오래된 친구들이 그립고 또 보고싶고 그래도 지나간 인연은 지나간 대로 그리움을 감내 해야 하고

내 존재가 그들의 삶에서 어떤 농도로 짙게 배어 있는 인격체 일지에 대해 생각을 해봤자

생각을 해도 해도 소용이 없는 일이다. 어쩌면 서로가 서로에게 걸러내지 못한 작은 먼지 같은 존재 라서 

혹은 공기 속에서 첨벙거리고 허덕이는 눅눅한 습기 같은 존재 라서 일지도 모른다.

타인에 얽힌 상처는 매듭이 지멋대로 엉킨채로 딱지지어 굳기 때문에 여간 응어리가 아니다.

만만하게 생각했다가는 팍 하고 곪아 터질 수가 있기 때문에 단단해 질때까지 무뎌지게 구르고 또 굴러 보내는 것이 현명하고 어른스러운 처세일 것이다. 그래서 인지 나는 상처를 굴리는 일에도 시간이 모자르기 때문에 

학교로 돌아가는 것이 싫다 .


사는 게 정말 사는 것 같았을때 늦은 오후에 부스스한 머리 질끈 올려묶고 뒷산에 걸어 올라갔을때 

젖은 흙이 그리고 잎 사이를 뚫는 보드라운 햇살 한줄기가 매일이 다채롭고 벅찼을때 나는

학교로 돌아가는 것이 싫다. 학교로 돌아가는 것이 싫다. 돌아가는 것이 싫다. 죽기보다 나는 

민물고기는 바다로 돌아가기 싫다. 

삶이라는 것이 여기에 내 눈 앞에 버젓이 살아 숨쉬고 있는데 내 축축한 핏덩이 같은 시간들이 벌름거리며 

하루 하루를 연명할때 나는 그것이 너무 가여워서 매일 매일을 넘치지 않게 두손으로 품안에 꼬옥 안고 걸었다.

아마 나를 칼로 푹 찌르면 와르르 내장처럼 쏟아져 나오는건 그 시간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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